꽃에게 위로를 받으며 나는 절망한다
어제의 단상 #7
#7 꽃에게 위로를 받으며 나는 절망한다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채송화가 두 송이가 피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꽃을 한참 바라본다.
빨갛게 피어난 채송화 두 송이, 백 마디의 말보다 큰 위로가 된다.
이럴 때 '왜 살아야 하는가' 따위의 물음은 설 자리가 없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된다. 존재라는 말의 무게를 감당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꽃에게 위로를 받으며 나는 절망한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번민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