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I Jan 06. 2023

자신의 컨텐츠를 만들어가는 교사

 ‘지난주에 뭐 했어요?’


라고 누군가가 물으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며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니 기억이 소진되는 느낌이다. ‘작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라고 물으면 금방 대답할 수 있을까? 1주 전 일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자료로 남기거나 기록해 놓은 것이 있으면 좀 쉬워지긴 하다. 생활 속에 자주 경험한다. 


작년에 벚꽃이 한창 피었을 때 퇴근하면서 만경강 둑길 따라 풍성하게 핀 벚꽃을 보았다. 장관이었다. 올해도 퇴근하면서 또 가보고 싶었다. 가려 하니 차 진입로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나서 운전대를 잡고 한참을 애먹었다. 다행히 휴대전화에 저장했던 사진을 꺼내 보고 진입로를 상기할 수 있었다. 관심 있게 모아놓은 자료는 언젠가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교직 생활에서 소소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고 꾸준히 모아갈 자료는 무엇이 있을까? 막상 떠올리려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것이라면 모를까. 교사는 수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특히 마음이 가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가지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그것이 가르치는 과목과 연결된다면 교과 전문성을 더 키울 수 있다. 거창하게 연구 과제를 떠올리면 부담스럽다. 그냥 편하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오랜 시간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간다는 생각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거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교사. 내가 지속해서 붙들고 계속 음미할 주제를 가지고 있는 교사. 성장하는 교사다. 행복한 교사다. 대한민국 최고령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는 ‘누구라도 뭔가 하나쯤은 인생에 남길 것이 있다’고 했다. 교직에서 남길 것이 있는 사람은 멋지다. 다른 교사들에게 귀감이 된다.


나는 종종 내 전공 분야에서 한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탐구하는 교사들을 본다. 한국수학교육학회 뉴스레터의 ‘수학산책’ 코너에서 자주 만나는 광신고 김흥규 교사가 생각난다. 사실 잘 알지 못하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 이름을 들으면 ‘수학과 예술, 일상 속 수학 찾기’라는 주제가 저절로 떠오른다. 꾸준히 발표하는 내용의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수학에 흥미를 키우는 법은 바로 일상에서 수학을 찾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저 보지만 말고 자세히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설파한다. 수학이 숨어있는 세상을 보게 한다. 수학과 세상을 연결해 보는 자세를 갖게 한다. 2022년 3월호 뉴스레터에 실린 수학산책의 제목도 매력적이다. ‘원주 뮤지엄 산(SAN)에서 수학적 상상 너머를 보다’ 명상관에서 원뿔 곡선을 상상하는 내용이다. 김 교사의 콘텐츠는 수학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작년 가을에 우리 학교 특강에 모셨던 최경식 교사도 생각난다.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실습그림자료로 볼 수 있는 지오지브라(Geogebra) 수학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교사다.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연을 맺고, 프로그램을 한글화했다. 해외 학회 참가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배운다. 수학 교사들을 위해 지오지브라 활용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자원해서 한다. 한국지오지브라연구소장이 되었고, 2013년엔 과학교사상(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수학 프로그램을 활용한 수학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탐구하는 교사다. 이것이 바로 최 교사의 콘텐츠다. 


교사들은 공부하는 것을 즐긴다. 학위 받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다. 학생 지도를 하다 보면 자기만의 공부 분야가 생길 수 있다. 관심과 필요에 따라. 우리 주위에는 그것을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계속 실천하는 교사들이 있다. 당장은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10년, 20년 뒤, 탄탄한 내용이 응축된 콘텐츠 자료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 교사는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가 있다. 그것을 자기만의 색깔이 담긴 콘텐츠로 가꾸어 나가는 교사. 성장하는 교사다. ‘꼭 해야 한다!’라는 집착으로 하는 게 아니다. 관심이 있어서, ‘하고 싶어서’ 그냥 하는 것이다. 속도를 내지도 않는다. 꾸준히 할 뿐이다.


교직 삶에서 뭔가 자신의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끼는 교사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색깔을 담은 콘텐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산다. 다들 바쁘게 열심히 사는데, 잡히는 것이 없으니 허망하고 무기력하다고들 한다. 그 이유가 뭘까? 내 관심 분야로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뭔가를 만들어가 보면 어떨까? 내 생각과 내 마음이 담긴 뭔가를 실행해 보자. 내 생각과 마음이 담기니 즐겁게 하게 된다. 교직에서 남길 것이 나온다.


내 마음이 담긴, 나만의 색깔이 빛나는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교사. 성장하는 교사다. 혼자 할 수도 있고, 함께 할 수도 있다. 교육을 위해 뭔가 남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을 때 교사인 우리는 존재감을 느낀다.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교사는 성장한다. 행복해진다. 표정이 달라진다. 뭔지 모를 환한 미소가 얼굴에 스며든다. 주변 교사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는 교사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관심 가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기에 평범해도, 내 콘텐츠는 내게 보물이다. 내 교육철학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내가 교육자로서 내 삶을 산 증거다. 학교에서 매일 해야 하는 일, 시키는 일에 바쁘게 쫓기기만 하면 허무하다. 내가 없어진다. 마음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자.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끼워 넣자. 여유를 갖고 꾸준히 실행해 보자. 마음이 충만해진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자신감도 생긴다. 평범하지만 내 생각과 마음이 담긴 교육자료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학생들이 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된다. 교사가 공부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꿔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제자들을 독려하는 것이 또 있을까?



설정하기: 꾸준히 만들어가고 싶은 나만의 교육 콘텐츠를 하나 정해보아요.


저서 '교사라서 행복하세요?' 190-198 쪽에서

(작가의 책은 여기서 확인해보세요 -> 클릭 )

(책을 쓴 계기를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학생 마음 치유하는 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