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첫(처음)'
-살던 셋방 집: 바깥 부엌 1개, 방 2개
-방 두 개 중 하나: 이모방(이모는 공부 벌레라 책상 있음)
-7살인 나: 당시 용돈 50~100원(어쩌다 받는 돈)
-마당놀이: 쥐약 물병을 든 여인 한 명과 울고 있는 여아
아무도 없는 이른 오후.
책상이 있는 친절한 이모 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조용히 문을 연다. 어둡고 적막하다. 창호지 문으로 은은한 오후 햇살이 들어왔고, 귀하고 큰 철제 책상이 눈에 띈다. 위칸도 열어보고, 작은 칸도 열어보고, 무릎 꿇고 앉아 마지막 칸도 살며시 열어본다.
흥미로운 물건하나. 빵빵하니 지퍼가 터질 것 같다. 지퍼를 살짝 건드리면 ktx처럼 와~앙 소리를 내며 길을 지나갈 것 같다. 저 빵빵하고 큰 빨간 파우치.
궁금하다...
열고 싶다...
확인하고 싶다...
내적 갈등은 인간의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누가 들어올까 쭈뼛쭈뼛 공포바늘이 온몸을 찔렀다. 지퍼를 열기 시작했고 중간쯤 무언가에 걸렸지만 이미 열린 절반의 공간만으로도 내용물을 알 수 있었다. 흥부박이 이렇게 터졌겠다. 열린 공간으로 삐져나오는 수많은 동전들과 셀 수 없는 세종대왕님들. 만원, 오천 원, 천 원짜리들이 예쁘게 한데 뭉쳐져 파우치 안을 가득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은 한편으로 나를 안심하게 했다. 큰 거 한 장 가져가도 감쪽같겠다고. 세종대왕 한 분을 모시고 조용히 나왔다.
핫도그도 사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평소 먹고 싶었던 것들은 하나씩 사서 맛보았다. 늘 구경만 했던 뽑기 점빵에 갔다. 1등은 내가 좋아하는 대왕 오다리다. 한 번에 50원. 5,000원어치를 하면 1등 한 번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5,000원 6,000원... 7,000원... 벌을 받고 있다는 듯 신은 내게 1등을 주지 않는다. 큰돈에 의심을 산 것일까 주인이 오다리 한 마리를 주며 그만하라 하신다. 7,000원을 썼는데 고작 오다리 한 개라니... 순식간에 사라진 돈은 어느새 붉게 지고 있는 해님의 하루처럼 허무하고 빨랐다.
주산 가방에서 들려오는 짤랑거리는 동전소리. 언니가 열어서 보게 되고, 엄마가 알게 된다. 훔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계속했고, 엄마는 물로 되어있는 쥐약을 들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진짜 쥐약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쥐약과 큰 고함소리로 인해 옆집, 그 옆집에 옆집, 오른쪽, 왼쪽, 앞, 뒷집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우리 집 마당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마당놀이처럼 엄마와 나를 중앙에 놓고 원이 그려졌다. 엄마가 쥐약 뚜껑을 열고 입에 가져다 댈때, 난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리며 경기를 일으키며 울었다. 친구들과 어른들은 구경을 했고, 난 내 거짓말이 엄마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는 사람들, 학교친구들, 약을 들고 있는 엄마, 거짓말을 하는 나. 난 불량식품이 되어있었다. 관중석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잘못했다고 해라 그러면 끝난다."
엄마는 입을 벌렸고 물약이 들어가 가기 직전, 눈물범벅인 내가 두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네(꺽꺽) 훔쳤어요. 네(꺽꺽) 잘못했습니다."
엄마는 두세 번을 더 재차 확인했다. 사람들이 떠나간다. 엄마는 그제야 방에 들어가셨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주 많이 무서웠다. 나는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량식품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 일이 생긴 뒤로 땅에 떨어진 동전도 내 것이 아니면 줍지 않았다. 아닌가? 한 번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