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 '첫(처음)'
제 하루하루는 매일 리셋이 됩니다. 밤 12시만 되면 숫자 0으로 바뀌어요. 새벽에 눈을 뜬 저는 리셋이 되어 어둠 속에 몸을 일으킵니다. 살금살금 두 평 남짓의 옷방을 개조해서 만든 글쓰는 멍의 작업실에 있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집어 들어요. 그리고 살금살금 어둠 속에서 거실로 나오는 안방 문을 열어요.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옆으로 밀어서 열어야 하는 문의 '드르륵'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요. 그렇게 저의 비밀스러운 하루의 첫걸음이 시작이 됩니다.
걸음을 걸었는데도 제 앱에 있는 발걸음의 숫자는 여전히 0입니다. 어쩌면 집안에서는 제대로 걸음걸이가 인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걸음걸이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제가 사용하는 앱은 저에게 "제대로 걸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제대로 된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준비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블로그에 산지직송 글 새벽 배송을 해야 합니다. 어제의 제 걸음들이 밑거름이 되어 적어져요. 오늘의 저의 걸음걸이는 내일의 소재가 됩니다. 두 번째 미션은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과 등교 준비예요. 바쁘게 총총 거립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주부, 엄마로서 중요한 업무입니다. 무보수 고난도 업무예요. 남편과 아이들을 지각 시키지 않아야 하니까요.
식구들이 출근하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집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망설이는 순간 게으름이라는 마법이 저에게 다가올게 뻔하거든요. 계절에 맞는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갑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만보 걷기의 첫걸음을 저는 매일매일 맞이합니다
첫걸음을 걸으면 저는 왠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자연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한숨 크게 쉬면 맑은 공기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계절의 향기가 전해집니다.
첫 걸음은 오늘 하루를 1부터 차례대로 채워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소소한 일상이 찾아왔음에 감사하게 돼요. 첫걸음을 떼었을 때 계절이 가장 진하게 느껴집니다.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집 밖으로 나가면 저의 걸음걸이는 첫걸음0부터 시작이 되어 1,2,3,4... 숫자가 올라갑니다. 만보 걷기는 계절마다 다른 걸 선물해 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만보 걷기는 첫걸음의 기분이 다릅니다. 봄, 가을은 동화속 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하천물의 소리도 아주 아름답게 들려와요. 하늘도 저를 응원합니다. 햇살은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며 저에게 뽐냅니다. 그 여행을 시작하는 첫걸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하천의 오리들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리가 가족이 된 것처럼 친근하게 저를 바라봐 줍니다. 어떤 날은 아름다운 새들을 만나서 넋을 읽고 있다가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도 꿉니다. 하지만 여름, 겨울의 첫걸음은 무겁습니다. 운동화도 몸도 눈치 없이 무겁기만 해요. 더위, 벌레, 바람, 추위와 싸워야 합니다. 모기들은 저에게 친구 하자고 달려들어요. 그래서 저는 여름에도 만보를 걸을 때에는 긴팔, 긴 바지를 입어요. 그게 모기들에 대한 저의 자존심입니다.
제가 만보를 걷는 이유를 최근에 알았습니다. 만보 걷기의 시작은 거의 삼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해요. 이유도 없이 걸어야 마음이 가벼워져서 자연스럽게 이끌려 시작한 만보 걷기! 저는 제 스스로 마음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라고 말을 해요. 이유 없는 이끌림! 그 이유를 최근 독서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위해서 마음이 원했다는 것을요. '걸을 때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생각도 유연해진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감각적인 표현을 바로 메모하면 훨씬 자연스러운 글이 된다. [솔아북스 이서영 2026년 1월 P60]'
만보 걷기로 인해서 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실수를 해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잊어버려도 자책만 하던 저는 사라졌습니다. "매일매일이 처음인데, 어떻게 다 익숙하게, 완벽하게 할수 있겠어? 누구나 서툰 거잖아? 난 지금 막 방금 만보 걷기의 첫걸음을 걸었다고!"라고 말합니다. 실수는 반성해야 할 숙제가 아닌 그냥 해프닝이고 당연한 일이 되었어요. 매일매일 아기 같은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소중해져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다시 리셋이 되었어요. 숫자 0이 되었고 10,000이라는 숫자를 채워야 합니다. 매일매일이 처음인 저에게는 그 시작이 소중합니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니까요. 글쓰는 멍의 만보 걷기의 첫걸음 그 시작을 같이할 나무들과 하천, 오리들이 손짓해요. 바람은 귓가에서 속삭입니다. 오늘의 시작도 혼자가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