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뭐 어때

[4월호] 콤플렉스

by 하자윤



매주 ‘하자’에 대한 기록을 연재합니다. 보통은 한두 개의 에피소드가 일상의 허술한 틈으로 발현되곤 하는데, 이 부족한 인간의 고백기를 글로 포장하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애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그 포장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럼 뭐 어때' 하는 무대포적인 태도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 예고 없는 풍랑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파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때도 있습니다. 첫째 아이의 늦은 난청 판정, 둘째 아이의 심장 수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자책하며 주저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습니다. 당장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보청기를 알아봐야 하니까요. 불행이 왜 꼬리를 물고 나에게만 향하는지 따져 물을 감정의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사연 모르는 이들은 아이 둘에게 닥친 시련 앞에서도 덤덤한 저를 보며, 과하게 긍정적인 사람이라 오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 아이를 다섯 번이나 수술대에 눕히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담대해야 아이도 담대해진다는 것. 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해야 아이도 비로소 가볍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도, 평생 귀에 품고 살아야 할 보조장치도,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됩니다.


이로서 저의 역할은 명확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단단한 자존감의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의 체육시간, 웃통을 훌렁 벗어던졌을 때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봐도 “이건 나를 살린 훈장이야"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 귓속의 보청기로 좋은 말을 듣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


저의 소소한 '하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써 내려갈 찬란한 미래에 미리 뜨거운 박수를 보내둡니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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