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그럴지도
넘어져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
두 개의 문장을 하나로 사용하는 시도는
넘어지는 것을 실패로 어물쩍 묶어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아닙니다.
넘어지면 넘어진 현장의 시야가
새롭게 열립니다.
넘어지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바닥의 시야가 열립니다.
넘어짐의 시야를 확인하지 않고
다시 달린다는 목표만을 가지고서
다시 일어난다면, 그것은 곧 다시 넘어지겠다는
각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실패는 넘어진다는 것보다
당연하게도 더 큰 경험입니다.
실패했을 때 실패의 시야가 열립니다.
실패의 시야는 성공만 해온 사람에겐
낯선 현장입니다.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애초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위로하기 위해 두 문장을 쓰는 것은
성장하고 발전하고 혁신하려는 인간에겐
그다지 필요없는 말입니다.
넘어져서 뭘 발견했어?
실패해서 뭘 얻었어? 라며
얻음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것.
혹은 아무리 넘어져도 괜찮은 형태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른 바 '튜브형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음료 중에 착향을 가미하고
산소를 더 부과해서 만든
산소 음료수가 있습니다. 이름은 파워오투..?
장거리 운행을 할 때마다 그 친구와 함께 합니다.
옆으로 넘어지든 말든 컴홀더에서 쑥 뽑아
대충 짜 먹고는 대충 던져둡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건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시야를 발견하건 넘어짐도 실패도 없습니다.
주변 사물을 통해서도
무언가 배운다는 것-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을 발견하는 것.
우린 여기에 면역을 가지지 않기를
노력해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