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나의 진심
법조인이 되면 뭐가 좋은가?
사실 질문부터 잘못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꿈은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변호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그리고 '법조인'이라는 전문직에서 오는 삶에서의 안정감, 이 둘을 쟁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 동기로는 변호사가 되는 길을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2학년에 처음 마주한 법학적성시험 문제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남들은 공부를 하지 않고도 고득점이 나온다고들 했는데, 나는 그 경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융합전공과목에 포함되었던 법학에는 흥미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열정이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공부량은 그저 평소 하는 대로 수업을 듣고, 몇 번 복습하고, 그게 끝이었다. 교재 안에 담긴 어려운 용어, 복잡해 보이는 법적 논리, 판례와의 연결에 압도당했고, 그 길로 법학 공부의 열정이 식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아, 나와 법학은 맞지 않는구나. 더 똑똑한 사람들이 도전하는 분야구나.
그 길로 어학능력을 살려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남들처럼 학회에 지원해서 떨어져도 보고, 스펙을 채우려 오픽, 컴활 같은 스탠다드 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한 대기업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많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3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두 번의 중국 출장의 기회가 있었고, 회의 중 발생하는 한국어-중국어 언어 교차 상황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한국 본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각종 문서의 번역, 중국어 업무 매뉴얼 구성 등 다채로운 업무를 업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있었다. 나의 담당은 결국 '사무보조'였다. 화학산업의 DT팀에 들어갔고, 화학도, DT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었던 내가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통번역'이었다. 그러나 통번역 분야는 언제든 AI로 교체될 수 있으리란 불안감이 들었다. 나만의 전문분야 구축이 필요했다.
그때 다시 눈에 들어온 분야가 법률이었다. 합작법인의 업무를 담당하며, 양국의 협력을 주도, 연결할 수 있는 교량의 역할은 시대불문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현지 기업과의 합작이 반강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개인적으로 진행한 리서치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국제 기업 합작을 위해서는 한-중 양국의 법률전문가가 필요함을 느끼고, 내가 이 분야의 적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국제정세로 인해 한-중 협력 분위기가 위축되고 있지만, 아무리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한-중 협력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의 수요는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이 들었다.
한-중 법률전문가가 된다는 결심을 하며, 기업합작 외에도, 국제거래, 지적재산권 관련 분야에서도 한-중 법률전문가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제너럴리스트이자, 법적 분야에서의 스페셜리스트로 거듭나서 한국의 기업 및 개인이 중국 진출 시에 망설임을 줄여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다.
명확한 목표가 생기자, 마음가짐도 달라졌고, 법학을 공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기본 법적 개념을 사안에 적용, 사안에서의 쟁점을 법조문에 대응하는 연습을 계속하며 법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갔다. 법학적성시험 공부도 치열하게 하며, 결국 로스쿨을 쓸 수 있는 점수를 받아냈다.
로스쿨에 합격할지도 불명확하고, 내가 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이 분야에 종사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3년을 투자할 마음의 준비는 해놨고, '포릿'이라고 일컬어지는 로스쿨 입시 또한 철저하게 준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