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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ug 29. 2023

수다 다음은 대화?

편한 혼잣말을 넘어서 이제 텐션 업

나: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난 지도 꽤 됐잖아. 수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금, 우리에 대해 생각해 봐도 될까.


너: 오, 너랑 나? 학창 시절 때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따로 만났고, 만나니 편했고, 그리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지.


나: 친하다는 건 뭘까? 다른 친구들보다 연락 횟수가 더 잦은가 생각해 보면 지금은 매주 만나다 보니 더 연락을 하긴 하지만 횟수로만 봤을 때 ‘얘네 친하네 친해’라고 할만한 주기는 아닌 것 같아. 다른 친구들보다 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나? 아마도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게 더 친함의 조건이 되는 것도 이상해. 음.. 아닌 것도 이상하지만.


너: 매주 2시간. 대단하다 그렇지? 한 주 동안 나누고 싶은 걸 공유하고, 거기에서 뻗어 난 생각을 잡아 얘기하며 서로의 생각을 물고 물지. 그러고 보면 각자의 의도는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냐. 각자 준비된 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나: 동아리 친구가 한 번은 동아리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존경한다고 하는 거야. 그때는 그 말이 강한 거 같아서 나도 존경하냐면서 농담했는데 나도 존경한대, 당황. 사람들을 존경한다는 느낌이 들 때 자기 안에서 쫀득해지는 구석이 있다는 거야. 사람들이 다가오든지 말든지 그다지 차이를 두지 않고 관계를 맺던 나에게는 신선했어.


나에게 친하다는 건, 연락 횟수보다는 얼마나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인가 인 것 같아. ‘친한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순간들이 좌악 떠오르거든,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많은 순간 네가 하는 말이나 결정에 영향을 받았고, 네가 추구하는 방향이 나에게 불편하지 않아. 그리고 너와 어떤 시간을 보내도 좋다는 확신이 있어. 그건 너로부터 온다기보다, 우리의 상호작용이겠지.


너: 난 너와 수다 떨기 위해 만나는 건 아니야. 나는 계속 ‘무언가’를 해보고 싶거든. 경제적 이익을 내든, 사회적 영향을 끼치든 그러길 바라. 너와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년 반동안 아무 일도 없었잖아?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근본적으로 우리는 팀이 아닌 것 같아.


나: 아직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이긴 하지.. (음 언제까지!!) 서로가 하고 싶은 걸 희미하게 알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몰라. 이해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그 효과를 예상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뭐라도 해보자, 고 말하지만 우리는 둘 다 뼛속까지 실용적인 사람들이라 뭐라도 해서 성과까지 나길 바라다보니 한걸음 내딛으려 할 때마다 타래가 영 꼬이기만 하고 풀리질 않아.


너: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에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솔직히 그동안은 무언가, 인 줄로만 알았거든. 뭐라도,라고 말을 바꾼 다음에도 뭉그적 대는 것 보니 그냥 나 이렇게 실행력 부족한 사람이었나 싶고 그래.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분명히 있거든, 그래서 더 혼란스러워.


나: 회사에 다니는 것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아이디어라는 건 그저 정리되지 않은 방 같은 건가 봐. 하나하나 발견하는 건 재미있지만 아직은 딱 거기까지. 나에게는 너랑 하는 게 진짜 수다인 것 같아. 내 생각에 수다는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에 좀 더 무게가 실려있는 것 같거든. 지금까지 서로 자기 말을 많이 했으니 이제 대화의 단계로 넘어가 보자.


너: ... 갑자기? 뭘 다르게 해야 하는 거지?


나: 지금까지는 각자 말하고 상대를 지지하고 끝났잖아? 지금부터는 진짜로 진행의 의도를 가져보잘까. 내가 하고 싶은 걸 같이 하자고 너를 설득하는 거지.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을 네가 이해하길 의도하기보다, 적당히 이해한 네가 나를 위해 움직이길 바란달까? 물론 너 역시 마찬가지고. 거기에서 우리가 같은 걸 하고 싶다로 방향이 잡히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리드와 팔로우를 한 번 연습해 보는 거.


너: 와, 매우 낯설다. 새로운 관계를 맺자는 거 아냐. 너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어?


나: 푸하하, 물론이야 못할 거 뭐 있어. 네가 혼자 일을 하는 것과 일을 나에게 시키는 거 사이에는 진짜 큰 차이가 있을 거야, 계속 설득하려고 노력하게 될 테니까. 설득이 될지 말지는 잠시 제쳐두고. 그냥 우리가 친하다, 같이 뭘 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각자의 선을 너무 지켜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던져봐. 친구는 핑퐁만 해도 유지되지만 우리가 같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서로 공격하고 수비하는 연습도 해야 같이 경기를 뛸 수 있지 않을까.


너: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검증을 해보자는 거지? 우리가 친구관계로서는 문제가 없으니 검증에 실패해도 친구로 남는 거 아냐, 손해 볼 장사는 아니네.


나: 검증이 뭔지도, 검증에 실패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다음 스테이지가 필요한 것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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