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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ug 31. 2023

그래야만 유지되는 ‘완벽한’ 관계

그런 건 없어, 완벽하지 않아도 오히려 좋아

나: 어제 한 학생이 고민을 토로했어. 한창 적분문제를 풀고 있는데 ‘수학 관련 질문은 아닌데요.. 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쩌겠어요? A가 있고 B가 있는데요..’라며 뱅뱅 돌리고 돌렸지만 결국 자기 얘기라고 실토했지.


너: 어떤 고민?


나: 같이 노는 친구 무리 중 한 명과 언제부터인지 거리감을 느낀 것 같아. 자기는 그게 신경 쓰이고, 잘해보려고 하는데 이미 좀 어긋난 상황이라 뭘 해도 삐걱거리는 거 같고 그런가 봐. 상대 친구가 자꾸 자기를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래.


너: 아이고, 자기가 그 친구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는 건가?


나: 움 대충 비슷한 것 같아. 실체 없는 기대라서 문제지. 삐걱대는 자기를 비웃는 거 같고 그러면 더 삐걱거리고 그게 창피하고 반복인 듯.


너: 한 번 신경 쓰이면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에 대한 상상이 너무 과하게 커져서 그 앞에서는 더 뚝딱거리게 되잖아. 인생...


나: 나는 불편한 상황을 견디는 것보다 한 번 짚고 갈 거 같다고, 차라리 거부당하는 게 거부당할까 봐 겁나는 상황보다 더 나을 것 같다고 했지. 그동안 잘 지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되어있었다,는 거 보면 계기가 있을 것 같기도 하거든.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꽤나 그렇지만, 학생 때 나도 그러지 못했어.


너: 그땐 친구가 자기보다 더 큰 시기라 우정이라는 게 세상의 전부인 거 같잖아. 아이고, 친구 사이가 깨질까 겁나겠다.


나: 그게 가장 신경 쓰인대. 자기만 가만히 있으면 그룹이 문제없는데 자기가 이슈제기를 하는 순간 그 분위기를 망칠 것만 같고, 그리고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불만 있냐’ 그렇게 이슈제기를 해도 돌아오는 건 ‘아니?’ 한마디 일 것 같다고..


너: 흠.. 문제제기가 먹힐 거라는 확신이 없구나. 나 너무 여럿 얼굴 떠오르면 이상한 거야? 나 왜 내 얼굴도 떠올라?


나: ㅎㅎㅎㅎㅎ 나도 그래. 아무튼 겉으로 친해 보이는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불편한 혹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 건강하진 않은 것 같다고 했지.


너: 고민이 많겠네.


나: 이번 주에 개학했거든, 그러니까 어제는 3일 차. 그런데 벌써 그런 고민에 사로잡힌 게 영 맘쓰여. 그래서 나라면 일단 그 그룹 사이에 관계 변화가 생겼고 내가 뭔가 이 안에서 불편하다는 걸 에둘러서라도 표현하겠다고 했어.


너: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는 건 좀 그런가? 그 안에서 더 친한 관계가 있을 거 아냐.


나: 뒷말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불편하대. 학생들이 무심한 척 나에게 던진 많은 말들이 사실 많이 고민하다 하다 겨우 드러낸 거 거든, 내가 부모님께 말할지도 모른다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근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친구 꺼정, 인생은 혼자, 럽유어셀프 이러면 다시는 나한테 얘기 안 할 거 같더라? 그래서 그때 잠깐만 얘기하고 다시 수업했어.


너: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근데 나는 나도 좀 정리된 다음에 나중에 장문의 문자 보낼 듯ㅎㅎㅎ.


나: 수업을 마치면서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지는 건 속상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배척하는 느낌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그 상황을 견디면 스스로도 나는 배척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하더라.


솔직히 그 친구가 이 학생을 진짜 무시한 건지는 모르겠어. 누구의 잘잘못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그 학생이 그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게 그 관계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모멸감​이라는 책에서(읽을 때마다 새로워) 작가는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느끼게 되는 자기부정적인 감정이 모멸감이라 하더라고(길을 걸어가다 부딪힌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던지..). 상대가 나를 낮추려고 의도한 건 멸시, 모욕 등이고. 내 학생이 느끼는 감정이 모욕이든 모멸이든 친구와 직접 같이 부딪히고 같이 고민할 수 있길.. 부딪혔더니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좋아!


너: 그래. 누군가가 소외된 플라스틱 세상을 완벽한 바비 월드라고 부를 수 없지.


나: ㅎㅎㅎㅎ 봤구나 바비​? 너무 재미있더라.


너: 메시지가 꽤 직접적인 줄 알았는데 영화관 나온 이후에도 장면장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


나: 맞아. 모두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게 리얼월드지. 필요하고 불필요한 완벽함이라는 망상.


너: 친하다.. 갑자기 낯설어.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얼마나 많은 자기를 지우고 있을 거며, 그걸 누구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렇게 희생하니까 유지되는 것 같다? 바로 잡아야지. 다들 희생만 하면 어째!


나: 그러게, 그게 무슨 관계야 대체. ‘그래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다들 용기 내서 그만 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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