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와 다르게 집단 속에서 자꾸 이탈하는 내 무게 중심
저는 오픈채팅을 좋아합니다. 완전한 익명 속에서 만들어지는 질서를 보는 게 흥미로워요. 방에 들어가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이 보입니다. 누가 더 길고 유려하게 말하는지, 누가 찬사의 반응을 하는지, 몇 명 정도가 방을 이끌어가는지 금세 알 수 있어요. 저 역시 몇몇의 말에 더 주목하고, 때로는 그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말을 얹습니다. 연령도, 성별도, 성향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그 관계는 이미 익숙한 위계를 닮아 있습니다.
집단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균형은 미묘하게 기울어집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목소리의 크기와 말의 리듬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갖게 되고, 그 자신감은 확신으로 번역됩니다. 말의 크기가 진실의 크기로 인식되면서 집단의 방향은 조용히 정해집니다. 이런 건 눈에 띄는 압력이라기보다 분위기에 스며있는 밀도 같은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구나 그 흐름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선을 지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익명 속의 자유는 서서히 쪼그라들어요. 명확한 규칙이 없어도 분위기와 시선이 암묵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질서를 적극적으로 수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불균형을 알지만 모른 척합니다. 나만 이질적인가 싶어 침묵하고, 그 침묵은 곧 동의의 형태로 해석됩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선이 생기고,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조화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 조화는 자주 착각 위에 세워져 있어요. 서로 믿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믿는 척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집단 착각(collective illusion)입니다.
이 과정에서 힘의 비대칭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누군가는 말을 선점하고, 누군가는 그 말의 리듬에 끌려가죠. 빅마우스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영향을 끼친다는 자각 없이도 집단의 톤을 결정합니다. 그저 단호하게, 조금 더 빨리, 확신에 차서 말할 뿐인데도 말이에요. 우리는 자주 자신감과 신뢰를 헷갈리는 거 같아요. 그렇게 누군가의 강하면서 단정한 말투가 전체의 판단을 이끌어버리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누군가의 의도적 지배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마이크가 자연스럽게 건네지는 방향, 말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방향이 중심을 형성하게 마련이에요.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소리가 모이는 구조가 권력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 흐름을 따라갑니다.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중심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균열은 무조건! 생깁니다. 외부의 개입이든, 내부 누군가의 짧은 질문 하나,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같은 한마디가 공기를 흔듭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잠재된 압력을 드러내는 균열이에요. 그 틈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믿어온 것이 사실 공유한 믿음이 아니라 공유된 침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집단의 리듬이 잠시 흐트러질 때, 비로소 각자의 생각이 되살아나요. 혼란스럽지만 필요한 과정이에요. 완벽하게 맞춰진 조화는 편안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불균형이 잠복해 있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어긋남이야말로 집단을 살아 있게 하는 진짜 균형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모두 이런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중심을 지키려는 시선과 바깥을 바라보는 마음, 확신과 망설임이 부딪히는 경계 위에서요. 진짜 안정은 완전한 합의가 아닌, 완전한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서로의 불일치를 받아들이는 상태일 겁니다. 지금도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누군가는 살짝 고개를 돌립니다. 어쩌면 그 미세한 갸우뚱 이야말로 집단이 다시 숨 쉴 수 있게 하는 첫 움직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