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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구생활

움직임과 멈춤이 힘든 건, 어쩔 수가 없다

질량과 관성, 그리고 나의 중심

by 오월

세상 모든 것은 움직입니다. 멈춘 듯 보이는 돌멩이조차 미세한 진동으로 흔들리고 있어요. 정지란 관찰자의 시선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 온전한 멈춤이란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서 있다고 느낄 때조차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아주 작은 방향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니까요.


물리에서는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질량을 꼽습니다. 질량은 단순히 무게를 뜻하는 게 아니라, 변화에 얼마나 저항하는지를 나타내는 양이에요. 질량이 크면 움직이기 어렵고 멈추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는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은 작은 계기로 변화를 시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은 각자가 지닌 존재의 질량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생각의 질량이 크면 쉽게 바뀌지 않고, 감정의 질량이 크면 오래 남게 됩니다. 결국 질량은 존재의 관성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너의 잦은 변화나 나의 오랜 머무름을 더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관성은 움직임과 멈춤의 지속입니다.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듯, 인간도 익숙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요. 우리는 습관과 생각의 궤도 속을 반복해서 돌며 살아갑니다. 그 궤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만하기로 결정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듭니다. 각각 결정에서 어려움의 정도가 각자가 가진 질량의 증거일 거예요.


질량이 있다면 그 질량이 모이는 중심도 있습니다. 복잡한 형태의 물체라도 모든 무게가 모인 하나의 점이 존재하고 그 점이 움직임의 균형과 방향을 결정합니다.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중심이 있어요. 관계, 일, 신념,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결국 최종 방향을 결정할 때면 어느 한 곳으로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 중심이 안정될 때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고 어긋날 때 흔들립니다. 중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복되는 행동과 선택의 방향을 통해 각자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면서 드러납니다.


결국 균형이란 중심의 상태입니다. 질량이 한쪽으로 쏠리면 중심이 이동하고 그 이동이 지나치면 불안정해지잖아요, 인간의 균형도 비슷합니다. 일과 관계, 생각과 신념 사이에서 무게가 이동할 때마다 중심은 조금씩 옮겨갑니다. 변화란 결국 중심의 이동이에요. 빠른 변화는 흔들림을 만들고 느린 변화는 형태를 바꿉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에요. 중심을 인식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성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량이 크면 안정적이긴 해도 새로운 궤도를 그리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질량이 작으면 쉽게 움직이지만 금세 방향을 잃어요. 우리 모두는 그 사이 어딘가-쉽게 변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멈춰 있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땐 이동하는 유연한 구조, 이 미묘한 균형이 존재의 조건이자 삶의 기술입니다.


이렇게 물리 법칙은 세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을 비춥니다. 질량은 우리가 가진 생각의 깊이이고, 중심은 그 무게가 향하는 방향이에요. 변화는 그 중심이 옮겨가는 궤적이고, 움직임은 그 힘의 결과입니다. 그 모든 힘이 만나 균형을 이루어요.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의 질량을 인식하고, 중심을 조정하며, 균형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물리적이고 감정과 감성, 신념, 판단의 조합으로 철학적이기도 합니다. 모든 움직임과 멈춤에는 이유가 있어요. 모든 질량이 중심을 향해 질서를 이루듯, 인간의 삶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질량과 중심, 균형과 관성은 존재를 설명하는 철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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