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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구생활

변화의 시작은 입학이 아니라 졸업일지도

나도 모르게 생기는 공백을 부정하며 살 수는 없어

by 오월

- 너무 갑자기 변하는 거 같아요. 제가 벌써 대학교를 지원하다니 현실감이 없어요.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물었습니다.
- 진짜 변화는.. 대학 입학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아닐까요?
학생이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저 역시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담임도, 보호자도 없는 사회에 진입한다는 게 생각나서요. 그렇다면 대학 입학과 고등학교 졸업 중 진짜 변화는 어느 쪽일까요. 사회의 보호 장치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는 건, 단순한 입학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변화를 앞둔 학생들에게 이제 전공을 정하고, 진로를 구체화하고, 미래를 결정하라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큰 부담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현대 사회는 끊김 없는 인생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학교에서 대학으로, 직장으로, 더 나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정상 경로라고 여겨집니다. 기술에서 유래한 Seamless라는 단어는 이제 사람의 인생 서사에도 적용되고 있어요. 사회는 중단 없는 커리어, 공백 없는 경력, 매끄럽게 이어지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에서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는 방향,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가 다 맞아떨어져야 연속일 텐데요, 실제의 삶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이에요. 불연속적인 삶에 연속인 척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야만 합니다.


불연속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선택이 늘 두렵습니다. 사회는 여전히 모든 변화를 유지의 맥락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에요. 새로 시작하는 일은 더 나은 다음 단계여야 할 것 같고, 멈추거나 그만두는 결정은 실패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이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태를 끝내기 위해 내리는 결정도 많아요.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일들은 새 출발을 핑계 삼아 마침표를 찍는 일입니다. 끝내는 이유만으로는 납득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음 단계를 어떻게든 덧붙이며 안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어가야만 하는 삶의 리듬 속에서 불협화음으로 살아갑니다.


끊김을 받아들인다는 건 공백을 견디는 능력을 갖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시기의 끝과 다음 시기의 시작 사이에는 늘 정체와 혼란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이 시간은 비효율적이고 불확실하지만, 사고가 재정비되는 구간이기도 해요. Seamless 한 인생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시간이 불필요한 낭비로 여겨지지만 이 구간이 없다면 삶은 방향을 잃어요. 멈춤은 낭비가 아니라 재정렬의 과정이고, 불연속은 단절이 아니라 의미의 구조를 다시 짜는 틈입니다.


삶이 끊김 없이 흘러야 한다는 생각은 불안을 만듭니다. 모든 일이 이어져야 한다는 압박은 결국 개인을 경직시키고, 선택의 자유를 좁혀요. 반면 끊김을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람을 유연하게 만듭니다. 완벽하게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기면, 삶은 훨씬 더 다양하게 확장됩니다. 실패한 선택도 새로운 맥락의 전환이 될 수 있고, 멈춤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 됩니다.


불연속을 감내하는 개인이 존재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연속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아요. 경력직 신입을 요구하는 사회에 경력 단절은 위험으로, 공백 기간은 문제로 간주되고, 잠시 쉬는 일조차 무능력의 신호로 읽힙니다. 어쩌다 쉬었음, 한 번 쉬었음 다음 단계가 좌절과 공포, 절망인 사회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개인을 압박하게 됩니다.


끊김을 허용하는 사회는 공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다고 해요. 일정 기간 일을 쉬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없고, 경력 전환이 실패로 해석되지 않으며, 개인의 선택이 방향 상실로 간주되지 않는 사회일 겁니다. 교육 제도 역시 연속적 성취보다 탐색의 과정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의 성숙은 결국 개인의 불연속을 감당할 수 있는 공동체적 여유에서 비롯됩니다. 변화와 멈춤을 제도 속에 포함할 때, 사람은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문화는 사회의 사고방식을 반영합니다. 어딘가에서 갭이어(Gap Year)나 세컨드 커리어(Second Career) 같은 개념이 보편화된 이유는, 공백이 실패가 아니라 재정비의 시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에요.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공백을 불안으로, 무능력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퇴사 후 재교육을 받거나,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방향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어요. 이제 공백이 곧 무능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이런 감각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어요. 음악의 쉼표, 영화의 장면 전환, 문학의 여백은 모두 불연속의 미학입니다. 끊김으로 흐름이 드러나고, 정지로 더 효과적인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불연속은 공백이 아니라 의미의 간격이며, 그 간격 속에서 생각이 깊어집니다.


끊김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겉보기에 효율적이지만 내적으로는 유연성을 잃습니다. Seamless 인생에 대한 강박은 실패의 부정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변화의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불연속을 받아들이는 사회는 느려도 단단하게 성장합니다. 개인이 공백을 감당하고, 사회가 그 공백을 존중할 때, 선택은 불안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조율의 과정이 됩니다.


삶은 완벽하게 이어진 곡선이 아닙니다. 수많은 멈춤과 방향 전환, 단절과 재시작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구조입니다. 성숙한 사회는 그 구조를 숨기지 않습니다. 불연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결국 진정한 연속성을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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