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이 싫어하니까요, 제가 숙제 안 하는 거
나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학생들에 대한 내 맘이 아무리 애틋한 들, 나는 숙제를 내고 성적을 관리하는 어른일 뿐이라는 걸 확인하는 건 즐겁지 않다.
어느 날 율희가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어느 날, 은 아니지. 율희는 대체로 숙제를 잘해왔는데 그즈음에 갑자기 여러 번 숙제를 안 해왔다. 왜 숙제를 안 해왔냐고 그날은 묻지 않았다. 둘러댈 이유야 없겠는가.
그때의 내 수업은 정말이지 엑스트라였다. 언제일지도 모르는 귀임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한국 진도였으니 항상 중요도 및 우선순위가 떨어졌고 (부모님들께는 죄송하게도) 나는 그걸 매우 이해했다. 한국 문제를 풀다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문제에 닥쳤을 때 학생들의 흥미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도, 그리고 그게 꽤 자주라는 것도, 그리고 한국 공부의 필요성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퍼진다는 것도 안다.
여기 학생들에게는 해야 하는 학교 외 공부가 정말 많다. 1. (없어지는 추세지만) 한국 대학 지원 시 한국 수학이나 국어 필기시험을 보기도 하기 때문에 혹은 어쩌면 귀임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 과정을 따라가야 하고, 2. 미국에 지원할 게 아니어도(한국이나 다른 몇몇 나라 지원에도 필요) 미국 수능인 SAT를 보기 위해 시험공부를 해야 하고, 3. 영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토플이나 아이엘츠 시험을 봐야 하고, 4. 초중고 12학년 내내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은 한국 대학을 지원하려면 한국어 능력 시험도 봐야 하고, 5. EC(extra curricular)를 준비하려면 또 무언가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과 학교 내신 공부 전부 잘 해내야 한다.
이야기를 이어가자. 율희가 숙제를 해오지 않았고 더 반복되면 안 될 거 같아 나는 침착하게 '이렇게는 수업할 수 없어요. 다음 시간에 올게요'라고 말한 후 집을 나와 어머님께 전화한다.
"어머님, 율희가 숙제를 안 해와서 제가 그냥 나왔어요. 화난 거 아니고 일부러 강하게 해 본 거니까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율희는 어쩌고 있나요?"
"어머나 선생님 죄송해요~ 그래서 쟤가 훌쩍거리고 있구나. 문제 풀고 있네요 선생님."
"아이고, 네 어머님 다음 시간에 봬요"
물론 이런 강력한 대처를 자주 하는 건 아니다. 저런 상황에서는 난 담 수업 때까지 갈 데도 없고 붕 뜬다고! 하지만 강력한 대처는 대체로 효과가 좋다. 그 이후 율희는 숙제를 잘해왔다.
율희와의 대화는 재미있다. (아 나 이런 얘기 너무 매번 쓰는데 급 나만 그런 건가 싶네) 율희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정말 다양하고 흥미로운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과학, 사회, 철학, 역사 등 그 분야도 하나로 정해지지도 않았다. 어느 날도 여느 날처럼 한창 대화 중, '그러고 보니 요즘은 숙제를 잘해오네요?'라고 했더니
"제가 숙제 안 해오면 쌤이 싫어하잖아요"
...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학생들이 숙제를 안 해와도 관대했던 원 앤 온리 이유가 학생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혼나지 않으려고 하는 숙제라니, 살면서 얼마나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데 벌써부터 엑스트라 과외쌤 눈치까지 봐야 하나. 그런데 현실은, 율희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나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수업 통틀어 가장 속상했던 순간이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눈치 보는 건 정말 필요한 걸까. 내 눈치까지 보는 건 '어느 정도'인 걸까. 이걸 사회성 안에 포함시키는 건 구시대적인 거 아닐까. 나 빼고 모든 것에 눈치 보도록, 나 포함 모두에 눈치 주도록 강요하는 교육과정에서 공부한 어른으로써 내 학생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싫은 건 하지 않겠다고 표현하고 살았으면 싶은 건 욕심일까.
진도를 익히려면 혼자서도 연습을 해야지, 수업은 공부가 아니지, 어른들에게는 당연한 '필요를 어필하는' 얘기들 학생들에게 안 먹히는 걸 안다. 요즘은 되도록 숙제를 위한 숙제를 내지 않으려 하고 학생들과 숙제 양도 협상해보지만 그런들 뭐 수업 빨리 마치려고 네네 하는 거지. 눈치 주지 않으면서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여전히 모르겠고 오늘도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