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마음 쓰이는 나의 학생, 차윤. 초등 5학년 때부터 약 4, 5년을 함께 해왔다.
초딩 차윤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어제 방 구조를 바꿨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자기는 인테리어 그런 거 할까 싶다고 하고, 언니(또 다른 나의 학생)는 패션 테러리스트라며 말 그대로 까르르 웃으며 흉을 보기도 하고, 쌤 이거 먹어봤냐며 새로 나온 하리보를 건네기도 하고, 몰래 언니 옷 입고 나갔다가 걸렸는데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면서 적반하장을 보이기도 하고.
이곳에 있는 많은 초중 한국 학생들은 한글학교라는 주말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 프로그램은 국어 및 역사, 사회 등등 여러 과정을 제공하는데 특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그 외에도 한국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 학생들도 한국이 궁금해 참여한다.
차윤이 부모님은 이곳에서 사업을 한다. 그래서 차윤이도 언니도 아마도 초중고 과정 중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어서 그랬는지 한글학교에 등록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한글학교 타령이냐고?
차윤이는 한국 친구가 없다.
학교에도 차윤이 학년에는 유독 한국 학생이 없다. 학교에서 차윤이와 친한 친구들은 여기 로컬 그리고 스페인 국적이 가장 많다. 친구들과는 물론 영어로 대화하는데 다들 순간순간 자국어 몇 마디가 튀어나오곤 한단다. 그때 어떤 친구들은 그걸 알아듣고 자기들끼리 빵 터지니, 순간 내 흉보나? 싶고 소외감을 느낀단다. 혼자 한국인이라 한국말하면 이상하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더 신경 쓴다고 했다.
여기는 가을부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서 한국서 학교를 다니다 전학을 오게 되면 학년이 애매하다. 기본적으로는 나이에 따라 결정하는데 영어 준비 여부에 따라 6개월을 잃기도 얻기도 한다. 차윤이는 4학년 여름에 전학을 오면서 4학년으로 들어갔고 6개월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차윤이는 학교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다.
초반에는 말을 잘 못 알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들리는 것도 좋았고 학교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모든 게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중학교 입학.
언제부터인지 자기가 친구들보다 언니인 게 신경 쓰인다고 했다. 자기가 다 이해해야 할 거 같고 친구들보다 더 잘해야 할 것 같다고. 힘들게 해내도 그건 당연한 거고 못할 땐 너무 튀는 거 같다고 했다. 부모님도 나도 그런 거 아닐 거다, 신경 쓰지 마라 등 열심히 설명했지만 뭐 먹히나 그게. 그리고 그 마음은 친구들이 유치해 보이는 걸로 왜곡되어 친구들과 감정적 거리를 둔다.
"애들이 너무 어려요! 진짜 유치한 거 있죠. 한 살 차이가 이렇게 큰 지 몰랐다니까요."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학교가 불만이라며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불만이 교우 관계인지, 진짜 학교 얘기인 건지, 커리큘럼 콘셉트인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전학 간 학교에서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았고 차윤이는 불만이 생겨도 전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막연해했다.
"너무 피곤해요. 재미도 없는데 주말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녀요. 가끔은 엄마한테 전화 온 척 집에 돌아와요"
친구들과의 플레이 데이트. 한동안 차윤이는 친구들과 노는 걸 정말 좋아했다. 나갈 때마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하고 옷 입고, 옷도 저번에 입은 거는 안 입어야 하니 이래저래 고민하다가도, 친구들은 언제나 서로 이쁘다, 네가 더 이쁘다며 즉각 반응하니까 신나지.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이번 주말에도 계속 약속이에요. 티 안 나게 안 나갈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그냥 안 나가면 안 되냐, 는 나의 되물음에 나중에 자기가 놀고 싶을 때 아무도 안 나오면 어쩌냔다. 자기한테 친구는 학교 친구뿐이라 옵션이 없다고. 내향성인 나는 말만 들어도 다크서클이 내려온다.
대망의 중3. 문제의 전학생 등장.
여기는 보통 초중고를 다 같은 학교에서 지내기 때문에 친구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전학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 전학생은 키 크고 이쁘단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중3 첫 등교 전날, 차윤이는 나에게 머리를 풀고 갈까요, 묶고 갈까요, 신발은 둘 중에 뭐가 더 나을까요, 교복 상의는 티셔츠로 입을까요 블라우스로 입을까요 등등 많은 걸 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정해놓은 옵션들로 세팅하고 내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 머리를 풀고 뒤로 넘길지 앞으로 보낼지 반만 넘기고 반은 보낼지도 물었다.
그렇게 두근두근 학교를 갔는데 아뿔싸, 이쁜 전학생이라니. 모두의 관심은 그녀에게 쏠린다. 그녀의 인스타 정보는 삽시간에 퍼졌고 사진 속 아이템들은 이미 다 파악이 됐다. 사진이 그녀의 실물을 못 담는다며 빛이 난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새 학년 기대에 전날 잠도 푹 못 잤을 텐데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그 전에도 자기보다 더 이쁜 학생이야 많았겠지. 그즈음의 아이들은 자기가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오히려 많은 학생들의 외모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지.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머리로는 알아도 이쁜 사람을 볼 때마다 주눅 들고 움츠려 든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좀 슬프지 않아요?"
차윤이는 친구를 만들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단다. 그런데 그 전학생은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그녀와 친구 되고 싶은 아이들이 줄을 선다고 했다. 차윤이는 그걸 '슬프다'라고 표현했고 나와 수업하는 중에 울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지금 차윤이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친구들 정말 많을 거예요. 다들 그럴걸요? 지금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인 거 같아요. 나였어도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집에 와서 일기 쓰며 울었을 거예요.' 머 그런 얘기나 했다.
"쌤 말이 맞았어요! 애들이랑 모여서 그 친구 얘기하다가 전부 울었어요."
다음 시간 차윤이는, 친구들도 다 같이 느끼는 감정인 거 알게 되니 한결 맘이 편해졌다고 했다. 전학생을 미워하는 건 아니라며 자기도 기회 되면 그 친구랑 가까워지고 싶지만 순서가 많이 밀려있어서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렇게 자기한테 다가오는 친구가 많은 사람은, 또 그 나름의 불안과 불편함이 있을 거예요. 그중에서 누가 진짜인지, 자기의 어떤 모습까지 보여도 괜찮은 건지도 모를 거고요. 그 친구도 외로울 거예요."
라는 나의 말에 차윤이는 그럴 수도 있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갸우뚱한다. 친구들보다 사춘기가 조금 더 일찍 온 차윤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내내 붙어있는 게 피곤할 때는 화장실에 앉아있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텅 빈 화장실에서 전학생을 만났다. 차윤이는 상상도 못 했다, 고 했다.
"그 친구가 정말 외로워 보였어요. 밖에서는 맨날 웃고 있는데 그날 화장실 난간에 걸터앉아서 얼굴을 감싸고 있더라고요."
괜찮냐, 고 묻는 차윤이에게 그 친구는 고맙다고 했고 오가며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그 전학생은 차윤이에게 더 이상 인기 많은 아이돌이 아니라 가끔은 외로운 또래의 친구로 살아있게 되었다.
절친 땅땅은 아니지만 차윤이에게 이 에피소드만큼은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차윤이는 이제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걸 머리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거든. 우리 차윤이, 남은 사춘기도 무탈하게 겪어내고 다른 에피소드들도 마무리 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