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많은 학생들은 방학 동안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기간 동안 학생들은 종일반 학원에 다니는 등 이때만큼은 한국 시스템 속에서 밀집된 공부를 한다. 여름 방학은 약 두 달이고 겨울 방학은 3주 정도라 한국 방문은 겨울보다 여름이 좀 더 활발하다. 학원의 효과에 대해서는.. 케바케라는 말 뒤로 비밀에 부치기로 하자.
한국에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가 있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 친구가 전혀 없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 그런 학생들은 마찬가지로 방학 동안 자국에 머무르는 여기 학교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게임 등을 하기도 한다. 한국 학원에서 친구를 새로 잔뜩 사귀는 학생들도 많다.
어떤 학생들은 여기 한국 친구들을 한국에서도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만나서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맛집도 같이 가고 사진도 찍고 그러고 나에게도 보여준다. 가끔은 나에게도 “쌤 시간 되면 홍대에 제가 아는 떡볶이 먹으러 같이 가요!”라고 한다. 고맙다 고마워.
학생들은 여름 방학 몇 주 전부터 맛집 리스트, 쇼핑 리스트 등을 진지하게 작성하느라 아주아주 바쁘다. 숙제를 다 안 해온 학생에게 ‘맛집 리스트 작성하느라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알았냐는 듯 안경을 고쳐 쓰며 수줍게 책상에 붙어있는 쪽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아직 20개밖에 못 적었어요’라며 자기가 놓친 것 있으면 언제나 알려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나와보니 더 잘 알겠는데 한국은 정말 빠르게 변하는 나라다. 올해 맛집 리스트는 작년과 완전히 다르다. 맛집 리스트만 다른가, 용어나 테크놀로지도 참 빠르게 변한다. 저번에는 종이 쿠폰에 도장 찍어줬던 거 같은데 이제 다 앱으로 어쩌고다. 결제할 때 카드 관련 질문 듣는 게 어려워, 할인이고 뭐고 현금만 쓴다는 한인들도 많다. 우리는 이 에피소드에 아무도 웃지 않는다고!
나의 한 학생은 한국에 친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친구가 있냐, 고 물었을 때 아마 몇몇 얼굴이 떠오르는데 아직도 친구라고 할만한 관계인가 한번 더 생각했을 땐 갸우뚱하게 되나 보다. 몇 번 만났더니 재미없었던 거지. 재미만 없으면 재미있는 걸 하면 되는데 서로 그것도 안 맞고 얘기가 안 통하니 ‘연락해서 만나는 친구’에서 ‘아는 애’ 카테고리로 넘어간 거지.
여기에서 주로 하는 것을 한국에서 하면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여기 학생들은 머리도 네일도 다 자유라 화려한 학생도 많은데 한국의 네일숍에 방문하면 ‘쪼꼬만 학생이..‘ 이런 시선도 느껴지고 괜히 바가지 쓰는 것 같고 불편하단다. 숫자 쓰는 방식도 달라서 자기가 쓴 숫자를 보고는 움.. 해외에서 왔냐며 당최 못 알아보겠다는 듯 다시 여러 번 물어보기도 한단다. 코인 노래방에 가도 자기가 아는 노래가 많지 않기도 하고 왜 한국이 더 재미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나랑 수업할 땐 한국말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건 또 다른가보다. 자기가 말할 때 ‘발음이 어눌한지 단어 선정이 이상한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주눅 든다’는 학생들이 많다.
그렇게 어떤 학생은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어떤 학생은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또 어떤 학생들은 벌써 다음 방문 리스트를 만들 생각에 또다시 들뜨고, 어떤 학생들은 이제 돌아왔으니 마음이 놓인다. 아니, 놓여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여기에서도 소속된 느낌을 못 받아요. 어디 속한 건지 모르겠어요. ”
라며 잠시 새 학년 우울감을 겪는다. 그 시기에 이방인의 경험을 하지 않은 나는 아마도 계속 모를 감정일 거다.
연설이는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다. 계속 여기에서 지냈고 가끔 방학에 한국을 방문한다. 연설이네 학교에는 한국 학생이 별로 없어서 친구들도 대부분 한국인이 아니다. 그리고 공부를 아주 잘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옥스브리지로의 진학을 생각할 줄 알았는데 대학은 꼭 한국으로 가고 싶단다. 연설이만 그런 건 아니다.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오히려 이런 결정을 하는 걸 많이 봤다. 한국에서만 살았던 내가 왜냐고 물어보면 계속 이방인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이방인이 아닌 곳에서 살아보고 싶단다. 배우 산드라 오가 봉준호 감독에 대해 ‘그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는 소수인종이었던 적이 없었다’며 감탄한 결과 비슷한 걸까. 어디에서도 한국인 연설이가 아닌 자신의 배경에 벗어나서 온전히 연설이 자신으로 해석된 적이 없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겠지. 그래도 요즘 여기 학교에서도 한국인 아닌 학생들이 한국 대학을 꽤 선택한단다. 한국이 여러 면에서 선택되는 걸 보는 것, 재미있다.
곧 있을 월드컵에 한인들 단체 응원전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학생들은, 이런 것에 반응해 아마 빨간 패션과 페이스 페인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거다. ’너무 차려입으면 좀 유치하잖아요 ‘라고 하면서도 엄빠보다 먼저 Be the reds 티셔츠를 꺼내 입을 거다. 평소에 무뚝뚝하던 엄마 아빠가 흥분하면서 소리 지르고 기뻐하는 걸 보면 재미있단다. 심판이 억울할 땐 자기도 큰 소리로 한마디 얹게 된단다. 그러다가 자기도 팬이 되어 올림픽 등 국제 경기 시즌에는 ‘쌤 그거 보셨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한잠도 못 잤어요!’ 그런다.
소속감. 항상 소속되어 있던 나에게는 오히려 더 어려운 단어다. 티브이에 해외 입양된 성인이 부모를 찾으러 나오면, 한국 프로그램에서는 원망과 죄책감이 덕지덕지 붙은 눈물의 쇼를 만들어내는데 막상 그 당사자는 ‘그냥 내가 어디서 온 건지 궁금했어요. 나는 잘 지내고 있고 나 때문에 속상할 이유는 없어요’라고 해서 온도차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은 긍정 부정에 뿌리를 둔 격한 감정이기보다 이해에 바탕을 둔 안정감인 걸까. 나의 고민 많은 학생들이 어디에 서있든 그곳이 어디인지 적당히 의심하되 곧 편안함을 찾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