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꼼꼼한 학생들이 있다. 물론 유난히 덜렁대는 학생들도 있다. 생각해보니 비율은 비슷비슷.
여기는 객관식(multiple choice questions)보다 주관식(free response questions) 문제가 전반적으로 더 많다. 최종 답이 잘못되었더라도 풀이과정(method)이 맞으면 그 부분에 대한 점수를 받는다. 풀이과정에는 꼭 들어가야 하는 스텝들이 있고 그에 따라 점수는 누적된다.
두뇌 회전이 빠른 한국 학생들은 암산도 빠르고 이래저래 빠르게 공부하는 습관 때문에 뻔하다고 생각하는 풀이를 자체 점프하다가 생각보다 점수를 못 받아 오곤 한다. 시험지에는 채점하는 쌤들의 “Why? How? Ummm"이 난무하다. 그러고 나서도 이해를 못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요?’는 단골 질문이다. 아무리 미리 설명해줘도 잔소리로만 받아들이고 소용없다. 꼭 소를 잃어야만 외양간을 고친다니까.
한 문제에 여러 딸림 문제가 있는 경우, (a)에서 답이 틀렸는데 그 잘못된 답을 활용해서 그다음 이어지는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면 (a)에서만 점수를 깎는다. 물론 학교마다 과정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시험에서는 중간에 틀리면 이어지는 문제는 아예 채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 잔인해..
나는 한국에서 수능으로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한국 회사에서 10여 년을 ‘효율화 개선' 부서에 있었다. 정말이지 ‘오류 없이 빨리빨리, 남은 시간 꽉꽉 채워서 일하는 게 최대선‘이라고 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 밖에서 보낸 내 학생들은 나와 많이 다르다. 아니지, 내가 이곳의 교육 철학과 다른 거지. 그런데, 부모님들은 또 나랑 비슷하다. 그렇다, 충돌이다!
대부분 나의 수업시간은 1주일에 한 번 1시간 반. 그 시간 동안 숙제를 검사하고 학교 진도를 복습하고 이후 진도를 예습한다. 짧디 짧은 시간, 내 마음은 조급하다.
학교 진도는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데 어떨 땐 그걸 보정하느라 미친 듯이 빠르다. 여기는 시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학기 내내 과제와 퀴즈, 마이너, 메이저 시험이 몰아친다. 전 과목이 그렇다. 학생들은 이미 에너지를 다 쏟고 있어 학기 중에는 학교 진도에 동떨어진 예습을 원하지 않는다, 당장 성적에 도움이 되질 않잖아.
실제로 내 수업 진도와 학교 진도가 비슷할 때 수업 효과가 가장 좋다. 내가 약간 앞서면 미리 공부해가서 좋고, 학교가 약간 앞서면 나와 복습하면서 확실하게 이해하니 좋다고 한다. 이때의 학생들은 매우 세부적인 것까지 질문한다. 현생과 거리가 생기면 두루뭉슬해도 이해했다며 넘어가곤 하거든, 요놈들.
그래서 아무튼, 나는 적어도 학교 진도를 따라가야 하는데 꼼꼼이들이 제동을 건다.
여기에서는 자를 쓰는 게 매우 필수적이다. 나와 연습할 때만큼은 자 없이 대충 찍찍 그었으면 좋겠는데 어김없이 우리 꼼꼼이들은 열심히 자와 지우개를 쥐고 그렸다 지웠다 다시 그린다. 저 정도는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꼭 한 줄 한 줄 끝까지 풀어서 답을 내고 싶어 한다. 그게 그들의 이해 방식이고 이곳 학교 가이드에 충실한 거다. 가끔은 계획했던 진도를 다 못 나가기도 하지만 수업 중에 문제 푸는 시간을 없앨 수도 없고..
나는 조급해진다.
조급한 맘이란 참 이상하다. 학생들과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라떼와는 많이 다른’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는 나인데, 마음이 조급해질 땐 과거의 나로 회귀한다. 그저 시간을 들여 꼼꼼할 뿐인데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 이러다간 큰일 난다, 는 나쁜 생각에 사로잡힌다.
“다 풀었나요?”
“아직이요, 잠시만요.”
학생들이 다 풀면 엄연히 알아서 말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눈치를 준다. ‘시험 보는데 시간이 모자랐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책상 아래에서 다리를 덜덜 떤다. 속으로는 ‘그것 봐요, 거기는 좀 대충 해도 된다니까’를 외치고 있지만 나는 이성을 붙잡고 ‘속도 내는 연습을 합시다’라며 타이머를 꺼내 든다. 나는 대충이라는 그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안다.
‘왜 그렇게 덜렁대니’라며 부모님께 혼이 나던 꼬마들은 이제 ‘적당히 대충 해라, 상황을 판단해보면 그 정도 알 수 있지 않냐’라는 말을 들을 위기에 놓여있다. 나라도 절대 그 말을 하지 않기로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그날따라 감독관 쌤도 안 들어오고 아무도 저지를 안 해서 반 아이들이 많이 커닝(cheating)을 했단다. 커닝을 하지 않은 결과로 다른 애들은 점수가 잘 나오고 자기는 잘 안 나왔는데 부모님이 ‘애들 다 하는데 그럴 땐 너도 좀 하지’라고 하셨단다. 그 친구는 웃기다며 나에게 그 에피소드를 공유해줬고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농담이었겠지, 라 생각하다가도 다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학생이 어떤 고민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 이상하다.
라떼는 꼼꼼함과 양심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걸 유연함이라고 불렀다. 아직도 누군가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하겠지. 내 꼼꼼이들과 양심이들의 성향이 ‘라떼와 다른 사회에서는’ 인정받길. 이 풍파에서 그 친구들이 그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다고.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