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저랑 콘서트 가실래요?"
중1 가연이가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기획사 중 하나의 월드 투어 콘서트가 여기서도 열린다는 소식에 한인 학생들이 들썩들썩하다.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가수 하나쯤 있겠지'가 전략인건지 많은 아이돌 그룹이 나온다며 한인뿐 아니라 다른 국적의 케이팝 팬들도 신났다. 여기도 케이팝이 대세 오브 대세다.
가연이는 나에게 매우 살갑고 활발하다. 평소에 친구들 얘기도 자주 하고 사진도 많이 보여줬었기에 크게 의심하지 않고 '친구들은 안 가냐'라고 물었다.
"그게.. 제 주위도 다 가는데 다들 짝이 있어서 저도 파트너를 찾는 중이에요. 셋이 가도 되긴 하지만 둘이 좀 더 안정감 있으니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가연이는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한 편이라 이렇게 둘둘 짝짓는 상황에서는 애매해질 때가 있다며 자기만 그런 건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애매해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아마도 단짝 얘기인가 보다.
"저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얼마 전에 다른 나라로 떠났거든요.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저도 조만간 도시를 이동해야 할지도 모른대요."
자주 겪어서 그런지 체념한 건지 쓸쓸함조차 묻어나지 않는다. 나는 파견 가족으로 나온 게 아니라 (아마도) 오래 있을 거고 (아마도) 학생들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이 졸업하거나 때가 되어 떠나는 거지. 그래서 그런가, 뜬금포로 학생은 내게 '쌤이 좋아요, 과외로 만난 게 아니면 좋았을 텐데요' 란다. 귀엽다.
후인이는 샤이보이다. 지난 학기 내내 웃고 떠들며 수업을 하고도 방학 후 다시 새 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 초반에 데면데면하는 게 보일 정도?
후인이는 지금 몇몇 친구들과 수년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후인이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영향력이 크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 분쟁이 있어도 그 친구가 현명하게 해결하고 어떤 상황이든 기꺼이 양보하거나 깍두기가 돼서 조율하는 등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한 친구. 그 친구는 뭐든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잘해서 아무도 그 친구를 질투하지도 않는단다.
후인이는 심리적으로 그 친구에게 많이 기댔다. 친한 친구 무리 얘기를 할 때도 항상 그 친구 위주로 얘기를 했고 정말로 좋아하는, 어쩌면 존경하는 친구인 게 느껴졌다.
어느 여름 방학, 그 친구가 말도 없이 떠났다.
"그냥 증발했어요, 어디 갔는지는 선생님도 모른대요"
학교도 급하게 처리했나 보다. 그 친구가 살던 아파트에는 금방 다른 가족이 들어왔다. 요즘 시대에 그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메일도 전화도 안되고 흔적도 없이 마치 원래 없던 거처럼 사라졌고 그 후로 후인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가끔 후인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수업 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와야 했다. 수업 한 번만 빼 달라고 엄마와 투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중간에 혼자 집에 오게 되면 입이 잔뜩 나와 울면서 수업을 했고 그럴때는 나도 너무 안타까워 어머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로 정말 가끔 노는 거였거든. 하지만 그 친구가 떠나고 나서는 친구들과 그런 친목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거 같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을랑가는 모르겠지만 후인이는 정말 변했다. 수업 정보 주고받는 친구면 충분하다 했고 학교에서는 거의 말없이 지낸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맘을 여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맘을 열어야 한단 말인가. 어떨 땐 너무 활짝 어떨 땐 덜 열기도 하는데 이래도 저래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힘들게 연 그 마음에 상대도 반응하는 경험, 남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끼리는 배꼽 빠지는 경험, 가족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받는 경험을 하고,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가까워지는 경험, 나만 맘을 열었나 싶은 경험, 상대가 나를 온전히 받아주길 구걸하는 경험도 한다. 애정과 질투가 섞여 복잡 미묘한 이 감정들. 그러다 이 모든 게, 갑자기 중단된다.
"어차피 쟤가 가든 제가 가든 금방 헤어질 건데요 뭐."
학생들이 말미에 '뭐'를 붙이면 뭔가 속상한 구석이 있는 거더라. 보통 2, 3년은 머물게 마련인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면 헤어질 결심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다른 친구와 다시 관계 맺기도 하고 아니면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한다. 가끔은 온라인에 집착하거나 '모든 관계는 허무하다'는 강박을 가지기도 한다.
반면에 한국을 떠난 지 몇 년인데도 인스타 등으로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댓으로는 신나서 '한국 오면 연락해', '만나자 만나자' 그렇게 되거든요. 막상 만나면 별로 할 얘기는 없어요"
흠.. 그건 나도 내 친구들과 그렇다며 그만 만날 신호는 아닐 거다, 고 말해준다.
수업 기간 동안의 내 학생들은 나에게 베프다. 그들의 상처가 마음 쓰이고 그들이 좋은 일이 생기면 누워서도 생각나 미소 짓고는 한다. 그리고 나는 매년 베프들과 이별을 한다.
가끔 졸업한 학생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어떠냐, 는 갠찮. 연애 중이냐, 는 안갠찮. 친구들은 잘 지내냐, 갠찮. 나도 잘 지낸다, 여긴 똑같다 머 그 정도 갠찮. 그 담엔 무슨 대화를 이어야 이 관계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게 될까. 너무 개인적이지도 너무 공적이지도 않은 공통 관심사, 어른인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수업 중 나누는 스몰 톡에는 오디오가 한 번도 비지 않았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