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즈음이 한국에서 해외로의 파견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고 한다. 그때 나온 대다수 학생들은 2, 3년만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국 공부를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초중고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수업이 필요했고 나는 그들에게 한국 과정을 가르쳤다.
나의 첫 세션이 끝나는 시간은 퇴근 시간과 맞물리는 오후 6시. 한인들이 모여사는 지역은 우리 집에서 거리가 있어서 안 막힐 땐 20분이지만 퇴근시간에는 한 시간 이상이 족히 걸린다. 수업이 한 시간 반인데 오가는 시간이 더 걸릴 판. 그럴 바에야 동생이니 앞집이니 같은 아파트니 같은 동네니 이어서 수업을 더 하고 가는 게 낫겠다 등등의 이유로 수업이 점점 늘어난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튜터를 업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사교육을 대놓고 반대해 왔었다. 이 신념과의 괴리 때문에 초반에는 수업 마치고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곤 했다. 어느 날 지인이 '거기서 한국 과정을 가르치는 게 왜 사교육이야. 학교 외 수업을 하는 게 아닌데'라고 나를 달랬고 그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으며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그러다 수업 중 여기 학교 콘텐츠를 곁다리로 조금씩 봐주다가 '오월 쌤이 여기 과정도 가르친다더라'는 소문이 났고 지금은 한국 과정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 그러고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이제 거의 없기도 하다. 그럼 사교육 아니냐고? 그러네, 술... 술!!
사실은 여전히 튜터라는 일이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신경 쓰인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회사를 10여 년 다녔는데 지금은 중고등학생 때 배운 것 위주로 써먹다 보니 그 중간 15년이 날아간 것 같달까. 한 학생의 엄마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대충 과외라도 해서 먹고 살 텐데요'라고 나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대충 과외라도 하고 있던' 당사자인 나는 그 말에 찔린다. 그래도 여기 친구들은 '한국의 공부에 대한 열정 정말 대단해! 그렇게 한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샘숭과 횬다이, 엘지가 나온 거구나.'라며 나의 튜터링을 한국의 현재와 미래로 멋지게 포장해준다.
”선생님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요?“
가끔(생각보다는 자주) 학생들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뭐가 되고 싶었어요?'라는 과거형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네. 나를 '이미 종착지에 있는 사람'이 아닌 '그 길 위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이 열린 학생들. 부모에게도 그런 질문을 하는지 다른 쌤들에게도 으레 하는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질문을 받은 어른 1로써 뭔가 각오를 다지게 된다. 그럴싸한 걸 답할 맘은 없어도 꿈이라는 게 어딘가에 도착하면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나이에도 계속 갱신되는 어떤 거라는 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열심히 생각하고 답한다. 서로의 답에는 서로의 질문이 묻는다.
”달이는, 저번에 말한 그거요?“
그동안 달이가 '쌤한테만 말하는 거'라며 하고 싶다고 했던 건 다양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반복해서 한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해왔다. 달이는 지난 여름방학에 생각하고 있는 분야를 경험해보려고 한국 집 근처 관련 업체들을 찾아 전부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중 딱 한 군데에서 답장이 왔는데 친절하게도 일면식도 없던 이 해외 거주 학생에게 기꺼이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게 달이는 방학 동안의 현장 경험으로 그 분야에 더 강하게 확신을 가진다. 물론 이렇게 자기 꿈을 스스로 정하고 접근하는 학생은 레어템이라 그런 학생을 지켜보는 건 나에게도 행운이다. 우리의 답에는 서로의 생각이 번진다.
한국 외 다른 나라로의 진학은 학생들이 장래를 고민할 여유를 준다. 적당한 성적의 학생이 중고등 시절 언젠가 의사가 되고 싶으면 한국에서는 가뭄에 시든 콩도 안 날 얘기일 텐데 한국 밖에는 그때부터 노력해서 갈 수 있는 괜찮은 대안이 어딘가에는 있다. 물론 많이 노력해야겠지만 '지금까지 네가 해온 걸 봐라.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니?'라며 애초에 꿈도 못 꿀 일은 아니라는 거다. '이 시점에 전교 1등'에 대한 상징성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강하진 않은 거 같달까. 한 한국인이 캠브리지 대학 입학시험에서 1등 하고도 '당신은 우리가 찾는 종류의 천재가 아니다'며 불합격 통보를 받은 에피소드는 많은 걸 시사한다. (물론 학교마다 다를 거다.) 그러고 보면 중고등 시절에 진로가 좀 더 명확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성적에 학교를 또 학교에 전공을 껴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는, 마치 그때의 나처럼 자기가 꿈꾸지 않은 미래를 위해 학생들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안타깝다. 많은 경우 자기가 진짜 원하는 꿈도 아닌데 1. 가끔은 너무 과한 의미부여를 하고, 2. 동기부여가 안되는걸 게으르다고 자책하며 부모에게 미안해하다 대화를 단절하고, 3.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게 인생의 실패인 양 수치를 느끼고, 4. '대학 합격하면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죄송해요 쌤' 이라며 학창 시절 인연과 연락을 끊는 패턴들, 마음이 아프다. 대학 합격 순간의 허무한 눈물로 시작해 20대 내내 찐한 사춘기를 경험한 나로서는 학생들의 대학 그리고 그 이후도 걱정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아니 맘이 더 어렵다. 너무 힘들지는 않게, 그렇지만 충분히 잘 겪어내길.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어느 시점부터는 꿈에 생존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달라붙어 직업으로 변모한다. 여기 나와서 공부하는 건 대부분의 가족이 회사 지원을 받아도 겨우겨우 감당할 만큼 매우 비싸기 때문에 부모가 그 안에서 허덕이는 걸 보며 생활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꿈에는 생존의 의미가 왜곡되어 적당함 보다는 조금 더 과하고 무겁게 자리한다. 그리고 그 직업은 이내 수입으로 가치 매겨진다.
“제 꿈은 돈을 무지 많이 버는 거예요. 학교쌤이 스포츠카 타고 출퇴근하는데 본새 장난 없어요”
훈이는 주식과 코인 등을 잘 이해하려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단다. 나는 '경제와 금융은 같은 게 아니다', '뉴턴이 투자로 얼마나 돈을 많이 잃었는지 아느냐', 고 운을 뗀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는 결국 데이터로 살아남아야 한다며 금융이나 경영 관련 빅데이터, 통계 쪽은 어떠냐고 슬쩍 흘린다. 그렇게 이 학생은 새로운 방향으로 눈을 돌렸고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습자지 같다.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에 약한 그들에게 부자 말고도 더 다양한 것들이 그럴싸해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