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앞 수업을 마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 내려가 운전해서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뒷 수업을 시작하는 빠듯한 10분의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을 더 넉넉하게 잡으면 집 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렇게 잡아도 시간이 지켜지다 보니(!) 그 패턴을 유지했다.
처음 이 어머님이 따라 나오며 대화를 시도할 때 당황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콘텐츠를 설명하는 게 다가 아닌 걸 알지만, 어쩌면 대화할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쉬는 시간을 길게 잡을 순 없었다. 그때도 다음 수업을 가야 했고 어머님께 정중하게 내일 전화드린다며 떠났다.
남매의 어머님은 고민이 많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응을 딱히 잘하지도 않고(학교에서 그리고 방과 후 친구들과의 교류를 말하는 걸 거다) 못하지도 않아서(학업 성적과 선생님들의 피드백을 말하는 걸 거고) 고민, 한국 스타일로 빡쎄게 공부시키고 싶지 않은데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또 고민.
“한국을 돌아가면 첫째가 바로 고1이 돼요.”
고등학교 1년이 포함된 3년 이상의 해외 학교 경험이 있으면 한국 대학 진학 시 그들 사이의 경쟁인 재외국민 특례 지원이 가능하지만 이 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한국 고등학교의 내신, 그리고 아마도 수능을 거쳐야 한다. 해외에서 중학과정 2년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에서 고등학교 진학 시 국제학교, 특목고 등 정원외 특례 지원이 된다. 이러나저러나 어디에 연착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관건이다.
귀임 시점이 애매한 많은 어머님들은 한국과정을 시키지도 안 시키지도 못하면서 '내가 잘못하고 있나, 내가 아이의 인생을 망치면 어쩌지'란 불안을 가진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몇 년만 해외생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샌드위치 학생들은 정말이지 여기저기서 고생이 많다. 여기 영국식 국제학교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영어가 가장 어려워요!'라고 했다. 그나마 믿었던 영어마저 한국식 시험 영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기 많은 학생 및 학부모는 다른 과목들보다 한국 수학에 대한 공포가 유난히 크다. 한국에 수포자가 그렇게 많다는데 중도에 들어가서 과연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싶은 거다. 여기 수학은 한국과 다르게 꽤 반복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일차방정식, 일차함수, 이차함수를 어느 한 학기 한 단원에서 깊이 있게 배우고 마치는데 여기는 PreAlgebra, Algebra 1, Algebra 2, Precalculus로 넘어가도 같은 제목의 단원이 계속 있다. 반복 순환형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그렇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니 (학생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내가 볼 때는) 이전 과정과 중복되는 게 꽤 많아 작년에 이해 안 됐던 게 올해는 잘 풀리기도 한다. 여기 학생들은 한국 스타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한국 문제집을 풀곤 한다. 소금물 농도, 거리-속력-시간, 시곗바늘 등 수학 포기 고속도로 단골 문제를 한 두 개만 틀리고 다른 건 다 맞아도, '한국 수학 할 만해요'가 아닌 '역시 너무 어려워요'라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한국 공부가 겁나서(특히 수학) 진로 방향을 막 흩트린다. 여기 있는 동안 확신의 이과, 라던 아이들이 한국만 가면 애매한 문과가 된다.
이 학생들은 어머님이 평소에 학생들의 한국 진도를 챙기다 질문이 쌓이면 내가 한두 번씩 방문했다. 나는 이 수업이 좋았다. 시간이 넉넉할 땐 남매를 둘 다 불러 스피드 퀴즈나 두뇌 퍼즐 같은 걸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주 무언가를 번역하거나 영어로 쓰고 있었는데 그건 어머님이 시킨 영어 공부였다. 소설이나 실용서 등 아이들과 같이 고른 책 하나를 챕터별로 돌아가며 한영 영한 번역하는 거. 처음엔 양도 많고 속도가 안 나니 재미없었는데 하다 보니 영어 공부도 되고 한국어에 대한 감도 잃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을 가면 아빠부터 막내까지 가족 멤버들이 하루를 온전히 담당했고 누구도 서로의 준비에 대해 불평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과는 1년에 두세 번 만난 셈인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로 눈이 반짝였고 그 이야기에 따라 하고 싶은 것들도 달라졌다. 어느 날 첫째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단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활약은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쳐서 내 학생들 중에도 몇몇이 영화 관련된 진로를 정했다. 그런 이벤트가 없었다면 그중 대부분이 '문과보다 취업이 더 잘된다는' 이공계로 지원했을 거다. 이 학생은 영화감독 전에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걸로 어떻게 밥 먹고 사니, 그게 뭔지는 알아?'라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교육관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게 마련. 한국 귀임을 앞두고 파도가 친다.
이 어머님에게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맘과 결국 그 체계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는 불편한 맘이 공존하고 있었다. 같은 처지의 어머님들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더 불안해진다고 했다. 이 글의 제목은, 그 어머님의 불안이 가장 높아진 시점에 나왔다. 어머님은 방학 때 한국 들어가서 수학 학원을 보내고 여기 있는 동안도 한국 수학 학원의 매일반에 보내야겠다, 고 결심하고는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의 공부 강도를 볼 수 있으니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것들은 어쩌냐고 묻는다.
”그러다 수학을 잘하면 어쩌죠. 자기 의도랑 상관없이 이과라도 가면 어째요“
아이들은 수학을 잘했지만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수학이라도 준비되면 좋다는 걸 나도 알지만 수학에 모든 리소스가 집중되는 게 걱정이었다. 그러다 수학을 잘하게 돼도 학생들의 적성에 진짜 맞는 걸까 걱정, 그랬는데도 수학을 못했을 때 더 겁먹고 더 많은 리소스를 쓰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탐구를 하는 걸 직접 보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아마 이런 반응을 한 거 같다. 난 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학이 다른 과목들에 비해 더 중요한 것처럼 대접받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너무 큰 역할을 하는 게 의아하다.
다른 과목들보다 수학을 더 잘했던 나는 의심 없이 이과 공부를 했고, 공대 루트를 탔는데 정말이지 재미없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적성검사에서 의학이나 이공계가 나온 적도 없다. 그런데 그놈의 수학 때문에 뭔지도 모르는 공대를 갔고 졸업을 위해 졸업했다. 정말이지 뭔가 싶다. 지금의 내 성향으로 돌아보건대 나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겐 수학이 그랬을 뿐.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다른 과목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공대가 아니면서 수학이 필요한 다른 전공을 같이 얘기해본다. 그렇게 수학을 잘하던 어떤 학생은 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