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긴 하는데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학교

by 오월

해외에서 공부하는 게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거 너무 어렵다, 는 맞지만 해외에서 공부하는 게 쉽다니 말도 안 된다. 자주 말하지만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 둘을 비교대상으로 놓는 건 이상하다. 한국에서 잘하던 학생이 여기 와도 잘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물론 그 반대도 있고. 그렇게 공부머리도 있고 성실한 학생들은 어디에 있었어도 잘했을 거다.


해외에서 적응하는데 1. 공부도 잘하는데 성실하고 공부의 당위성 자체에 별로 의심 없는 학생들과 2.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시행착오는 차이가 크다.


- 연훈이 이야기


중3 2학기, 연훈이는 해외에 나왔다. 늦게 나오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어렸을 때 해외 살던 가족이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연훈이에게 해외생활은 처음이다. 연훈이만 처음이겠나, 부모님도 처음이시지.


아마 부모님과 연훈이는 나오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을 거다. 이미 나와있는 지인들은 '애들은 다 알아서 적응하더라'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을 거고.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그 고민들이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종 결정은 연훈이가 했겠지. '한 번 열심히 해볼게요.' 그러면서.


연훈이는 2. 그렇지 않은 학생이었다. 나는 연훈이와 고2에 만났다.


이곳에 온 지 1여 년 정도밖에 안된 고2,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한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왔으니 그 정도의 공부량을 감당하는 학생이겠군, 이 시기에 나오기로 결정했으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군 등등. 그러나 곧, 나는 당황한다.


고등학교 과정으로 모든 걸 처음 시작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극 EEEE형인 학생이라도 언어도 통하지 않고 어떤 걸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어려울 거다. 그때의 학생들은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친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 새로운 친구 역시 준비가 됐을 때의 얘기이다. 아이스가 브레이킹 돼야 하는데 계속 냉동상태인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는 많지 않다.



- 준성이 이야기


비슷한 시기, 비슷한 학년의 준성이도 이곳에 왔다. 준성이는 아주 어릴 때 해외 체류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여유롭고 좋았는지 그 후 한국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면서도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학교 영어를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 자기가 해외에서 공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 건지 해외에서 학습하는 학생들 수준으로 회화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계속 끌어오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여기 원래 살고 있던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영어로 충격을 줬다니까.


준성이는 욕심이 많고 그 욕심을 노력으로 극복해왔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했는데 여기에서도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가 초반에 스스로의 기대에 배신을 당했다. 당연하다. 한국의 그 학년 수준의 모든 과목을 갑자기 영어로 전환하는데 다른 학생들이 몇 년 동안 쌓아온 모든 단어와 맥락과 디테일이 들어오려면 그리고 그걸 에세이로 표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초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아파서 드러누워 학교 못 가고 그러던 때, 어머님이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내 과목에서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바로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갔는데 수업에서 상세한 내용 하나하나 질문하는 쌤과 0.01초 안에 답변하는 아이들 속에서 겁을 먹었다. 근데 또 그 반을 들어가지 않으면 다음 학년 수업 선택이 제한돼서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이래저래 안타까웠다.


가을에 수업이 세팅되면 고3 학생들이 5, 6월 파이널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시간이 전혀 없다. (가끔 중도 귀임이 있기도 하다. 원래는 거의 없는데 코로나 때 몇 가족이 정말 갑자기 귀임하기로 결심하더라.) 준성이도 이미 세팅이 되어 있는 중에 연락이 온 거라 시간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다 학교를 안 가는 1주일이 생겨서 그 기간 동안 매일 오전에 수업을 했고 그렇게 비는 날에 잠깐이라도 만나면서 고비를 넘겼다.



이 둘에게 닥친 장애물은 얼마나 큰 걸까, 부모 빼고 다 바뀐 상황이지 않은가. 아, 자기 자신도 바뀐 건 아니지. 바로 그 지점에서 연훈이와 준성이는 큰 차이가 있다.


연훈이는 생활이 거의 안됐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뿐 아니라 영어가 안되니 친구들을 사귈 수도 없었다. 그 학교에는 한국 학생들도 거의 없었고, 연훈이는 극 IIII 형이기도 했다. 연훈이는 한국에서도 사교적이지 않았다.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해서 도중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잘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때 연훈이가 한 말이다.


"이제 애들이 하는 말이 이해는 되는데, 그게 왜 웃기는지 모르겠어서 언제 웃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준성이는 생활이 어려웠던 건 아니다. 수업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잘하던 학생이 갑자기 상대적으로 덜 잘하는 환경에 놓였던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하지만 곧 주변 친구들을 확보했고 눈치껏 여기저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극복했다.



인생은 많은 것을 정면 승부로 극복해야 살아가진다. 살아보니 가끔은 회피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도 건강한 대처 방안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되긴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정면 승부가 너무 많다. 극복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다. 애초에 체급이 달라 감당할 수 없는 곳과 싸움이 붙으면 도망가야 한다. 싸우는 걸 보는 사람도 응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 이런 체급 파악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안타까운 건, 많은 경우에 붙어보지 않으면 체급 파악이 안 된다는 거다. 단지 "싸워볼게요"라고 했기 때문에 싸워야 하는 상황. 늦게 처음 나와서도 잘하는 학생도 있었겠지. 그런 예외의 경우에 기대서, 학생 의지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둘은 여기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됐을 맘고생을 한 게 안타깝긴 하지만 언젠가 이 경험들이 다 자양분이 되겠지. 어쩌면 한국에서 자신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졸업한 것일 수도 있고.


......

......

...... 헐!!


생각해보니, 연훈이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맘고생도 안 했고 자기가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친구가 많지 않다고 불편하거나 성적이 생각처럼 안 나온다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는 아닌 거 같다. 부모님도 아이가 어떻게든 스스로 마무리하는데에 의의를 둔다고 했고. 그거 참 다행이네.


이런..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내가 '적응이라는 허상'을 가지고 있는 거 처음 인지했다. 학생이라고 성적이나 친구 수로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닌데. 아우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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