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암전 후 서서히 조명이 들어오면
너: 어쩌다 지금 멤버 구성의 그룹 친구들을 만나고 있어?
나: 그러게. 고등학교 때 최측근이었던 건 아니어도 그래도 두루두루 가깝긴 했어.
너: 그룹 수다 고민을 하면서 그 친구들이랑 그시절의 화두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했잖아
나: 난 그때 친했던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진 않았던 거 같다고 했고, 너는 동창이라는 타이틀의 친구들이랑 사회에서 가까워진 친구들이 많이 다른 거 같다는 얘기도 했지.
너: 너네를 만나니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안 날 수는 없는데 그 장면 속에 너희가 있지는 않아서 장면이 오래 지속되질 않아. 요즘은 그때 친했던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 친구들을 떠올려보고 있어. 나는 이렇게 나이 들었는데, 걔넨 아직 학생들이야!
나: 고등학교 때 많이 친했던 친구가 있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을 웃기던 친구- 졸업 후 처음 우리 그룹이 만들어질 때 그 친구도 있었는데 몇 번 나오고는 연락을 두절했지. 못 나간다 그러다가 끊겼던가.. 기억이 잘 안나네.
너: 아, 그래. 그 친구 오랜만이다. 그러네, 소식을 모르겠네.
나: 고2 말 고3 초 때인가.. 멀어진 계기가 있었고 그 이후로 그 친구가 나랑 있는 걸 어색하고 불편해했거든. 뭘 풀어야 할 일도 아니었어서 그렇게 졸업했고 그렇게 관계가 끊겼어.
너: 너는 어땠어? 그 친구랑 멀어졌을 때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서 뭔가를 했어?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그러게, 그러지도 않았어.
가깝다, 친하다는 게 그때의 우리에게 뭐였을까. 감정적으로 잘 맞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필요할 때 곁에 있는 거, 그게 세상의 전부였는데. 그때와 지금 친구들과의 거리가 일관되지 않은 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냥 자연스러운 건가.
너: 나도 그때 친했던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고 깔끔하고 단호하게 멀어졌네. '이제부터 친구'라는 선언도 없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던 거처럼 같이 있지 않고 환경이 바뀌니 관계가 정리됐어.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낼까 싶기도 한데 졸업하고 연락하지 않은지 얼마 안 돼서는 솔직히 별로 궁금하진 않았던 거 같아.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을까. 매일 12시간 이상 씩 붙어있고 수업 중에도 떠들고 싶어서 끊임없이 쪽지를 주고받았던 친구들인데.
나: 같은 학번 동아리 친구도 대학 졸업 후 몇 번 만나고 그러다 그냥 정말 사라졌어, 마치 원래 없던 사람처럼.
너: 그 친구들은 의도를 가지고 연락을 끊었을까, 아니면 그냥 어쩌다 보니 연락이 늦어지고 끊어진 걸까. 나도 누군가에게 사라진 친구일까. 왜 많은 관계는 서서히 정리되질 않고 암전 되어 버리는 걸까.
나: 그때 친했던 친구들이 사라지고, 그렇게 친하진 않았던 친구들이 지금 오래 곁에 있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졸업하고 나서 오히려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 졸업이라는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학교 생활이 급 정리되고 새로운 막이 시작됐고 등장인물이 바뀌었어.
너: 만약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이랑 지금까지 같이 만나고 있었다면 우리 수다가 더 풍부했을까?
나: 그렇지도 않았을 거 같아. 그때 친한 관계로 계속 만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경험과 고민과 인생의 선택과 속도는 비슷한 듯 많이 달랐을 테니까.
너: 그래 그랬을 거 같다. 가볍고 스쳐가는 만남이 편하게 오래가기도 하고, 굵직하고 뜨겁던 관계가 절단되기도 하고..
나: ㅎㅎㅎ 단절도 아니고 절단. 느낌이 팍 오네.
너: 그렇지? 사라진 친구들, 생겨난 친구들. 그동안 전기가 안 들어오던 내 네트워크 망 속 한 마을에 불이 깜빡깜빡하며 켜지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