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 시력을 보호할 거라면 밝은 세상이 왜 필요해

실없자, 시시콜콜하자, 아무 얘기나 하자, 대단하지 말자

by 오월

너: 언제까지 여기에만 수다 떨 거야. 모임에서 무슨 얘기할지 안 알랴줄래?


나: 야야야, 너 딱 기다려. 모.


너: 이 모임을 계속 나가고 있는 이유가 네 말대로 있을 거 같단 말이야!


나: 움. 다시 돌아보자. 우리 그룹은, 적어도 너랑 나는 다른 멤버들이랑 학창 시절에 그렇게 가깝진 않았어. 게다가 너는 상처받기도 했었고.


너: 맞아. 다들 어렸다고 해도 상처 많이 받았지. 내가 그 이후로 여럿이 뭉치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20년이 넘은 기간 동안 꽤 꾸준히 만나고 있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너: 처음에는 계모임이라는 형식으로 매달 회비를 내고, 그 회비로 뭔가를 먹고, 시간을 정할 때 가능여부를 공개하고 그러다 보니 딱히 안 나갈 이유가 없었어.


나: 그래, 그렇게 말하니 그때는 안 나갈 이유보다 나갈 이유가 더 많긴 했네.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난다’는 의식이었던 거 같기도 해. 마치 학창 시절을 잘 지낸 듯 보이는 위장?


너: 잘 지냈잖아.


나: 그러게. 그러지 않아도 됐었는데 굳이 위장막이 필요했나 봐. 그때의 나는 애들이 술 마시다가 밤늦게 전화와도 나가고 그랬어. 친구들이 부르는 나에 취했나? 대부분의 모임이 재미있지도 않았는데!


너: 움.. 그래, 뭔가 친목모임에 대한 강박이 있기도 했어. ’같은 조직‘과 ‘우정’의 의미를 혼용했던 거 같기도 하고.


나: 약속의 개수가 나를 장식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창 어떻게든 주말을 채웠어.


너: 네가 모임에 대한 화두를 꺼냈을 때 좀 놀랐어. 읭, 그렇게 웃고 떠들던 오월이?


나: 1.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은 모든 걸 감출 수 있기도 하고 2. 난 상당한 시간을 진짜 재미있게 웃고 떠들다 왔어. 그런데도 한 켠으로 ‘이번 모임은 스킵해도 상관없겠는데’란 마음이 자꾸 생기고 그 맘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게 이상해진 거지.


너: 만약 그 맘이 생겼을 때마다 모임을 스킵했다면?


나: 훔.. 대부분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겠지.


너: 스킵하고 싶을 때 그러지 않았기에 유지되고 있다..


나: 그 그룹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도 다 아주 친해도 이 그룹이 이렇게 가늘고 길게 유지됐을까? 너랑 나처럼 그 안에서 좀 더 가까운 관계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그룹에 종속된 관계는 아닌 거 같고.


너: 적당히 먼 거리에서 유지되는 그룹.


나: 다들 가까이 살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다 같은 연령대의 아이가 있어서 같은 유치원, 학교를 보내고 그런다면, 즉 물리적으로 가깝고 많이 겹친다면 어땠을까. 아슬아슬했을까.


너: 지금 아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관계는 새로 형성해서 적당히 잘 지내는데 우리가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면 달랐을 거 같긴 하다. 좋았을지 나빴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복잡했을 거야.


나: 온라인 커뮤니티, 단톡방 이런 것들이 적당한 친구 역할을 상당 부분 가져간 거 같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개인적인 고민 토로도, 정보의 수집도 모임 안에서 해결했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이미 답을 어느 정도 찾은 상태로 만나게 돼. 그래서 만나서 수다를 떨어도 새로운 아이템도 신박한 답도 없지.


너: 시간을 잡고 같은 공간에서 직접 만난다는 건 확실히 커뮤니티랑 다른 점이잖아. 난 여전히 관계에서 스킨십이라는 건 중요한 거 같거든. 만났을 때의 에너지가 있어.


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쓸지 모르는 걸까.


너: 얼굴을 보면 진짜 반갑고 잘 지내는 거 보면 마음도 편안해. 근데 대화할 땐 솔직하기도 겸연쩍고, 답 없는 혹은 답 정해진 뻔한 얘기만 하게 돼.


나: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 남편 남자 친구 얘기가 올라올 때 꼭 달리는 얘기가 ‘왜 이런 글을 올려서 제 얼굴에 침 뱉기를 하냐’야. 익명으로 올리는 글에도 그런 피드백을 받으면 대체 어디다 얘기해. 무슨 침인지도 모르겠고.


너: 음.. 그런 속마음 터놓으려고 만든 커뮤니티 아니야?


나: 내 말이. 그런 피드백을 다는 사람도 그 글을 감정적으로 몰입해서 읽다 보니 그런 거겠지. 암튼 이래저래 대부분의 대화 아이템과 감정적 교류는 커뮤니티가 가져갔어.


너: 그럼 물리적인 데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나: 위에서 말한 대로 여전히 ‘교류하는 친구들’이라는 안정감과 그걸 확인하는 단계가 필요한 거 같아. 그러면 수다 말고 다른 걸 해볼까?


너: 점점 복잡하다 복잡해.. 대충 만나고 헤어지면 안 되나.


나: 그게 핵심이야! 사실 대충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 대충 만나고 헤어질 때 ‘역시 오늘 잘 나왔어’, ‘아, 리프레시 잘했다’ 이런 느낌이 있었으면 싶은 거거든. 만나서 실없는 소리만 해도 ‘왜 여기서 시간낭비를 하고 있지’가 아니라 실없어서 더 좋은 그런!


너: 그래서 전에 네가 아이템이 문제가 아닌 거 같다고 말한 거구나.


나: 응.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의 에너지가 모임 내내 유지되진 않더라고. 그렇다고 만나자마자 헤어질 수도 없고.


너: 맛난 것도 먹어보고, 산책도 해보고, 쓸데없는 옛 농담으로 웃어도 보고. 그러고보면 대부분의 시간이 재미있을 때도 있어.


나: 만나서 실질적으로 얻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니고 모름지기 친구 모임이라면 다들 일상 속 긴장이 풀리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 이게 나의 최종 목표야. 재미고 뭐고 현실 속 역할을 잠시 벗고 쉴 수 있는 시간. 그래서 퇴행이 필요한가 그런 얘기도 했었고.


너: 음, 아직 어렵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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