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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30. 2023

서로의 감정을 떼고 나면 가족은 이제 누구인가

우리 서로에게 역할을 떼고도 존재하자

나: 한 연예인이 엄마랑 여행하는 예능 클립을 봤어.


너: 너 너 너.. 누구였는지 벌써 알겠다.. 만능.. 너!


나: 야, 모. 그걸 보는데 생각이 많아지더라.


너: 어떤 면에서?


나: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 패널들이 반응을 하잖아. 근데 그 연예인이 ‘엄마’말고 ‘어떤 한 사람’을 언급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 어떻게?


나: 자세하게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마가 저런 거 참 좋아하세요, 제가 가진 성향의 많은 부분이 엄마로부터 왔어요 등등 그런. 그 말들에 그가 그 사람을 알고 있구나 싶더라고.


너: 이렇게만 듣기에는 잘 모르겠다. 네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과는 달랐나 봐?


나: 난 엄마를 이미지로 가지고 있는 거 같아. 고생한 엄마, 아팠던 엄마 머 그런?


엄마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 이미 성당을 열심히 다니셨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헤쳐나갔어. 힘든 일이야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게 버거웠겠지만 그걸로 ‘나는 불행하다’이런 태도를 우리에게 보이신 적도 없거든.


너: 그래.


나: 그런데 나, 언니, 오빠는 저 태도를 하나도 물려받지 않았어. 엄마, 하면 떠오르는 건 엄마 혼자 힘들어하고 지치고 그런 모습들이야.


너: 움.. 그 장면들에 너희가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성당의 엄마, 지인들과 웃고 떠드는 엄마 머 그런 걸 직접 자주 보진 않아서 그랬나.


나: 그럴 수도. 엄마가 그 시간들을 한 번도 회피하지 않고 정면승부해서 결국 이겨낸 건데 그런 건 기억에 싹 다 빠졌다니까. 우리는 셋 다 엄마가 살아온 삶을 불행했다며 부정적인 쪽으로 밀어내는 게 아닌가 싶었어.


너: 어떻게?


나: 혼자 셋을 키우셨으니 많이 쪼들리셨겠지? 그래도 엄마는 우리 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시절에 그런 환경이 우리 가족만의 사연도 아니었고, 엄마 인생에는 이렇게 사는 거지, 말고 다른 옵션은 없었던 거 같아. 그런데 마치 우리는 엄마가 불행을 선택이라도 한 것 마냥 엄마의 인생을 결론 내 버렸어.


너: 어머님이 아프셨어서 더 그랬던 거 아냐?


나: 그러기도 했을 거야. 생각해 보면 엄마는 꽤 취향이 확고해. 진짜 속마음보다 멋져 보이는 말 하는 걸 좋아하고, 여전히 집에서도 선크림을 바르고 나갈 땐 풀메이크업을 하셔. 그리고 전에 말한 대로 우리 중 가장 소비형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


너: 그래, 어머님 그 누구보다 사회형 외향형이시지.


나: 그런데 울 셋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그 어떤 취향에 집중하지도 지불하지도 않아. 셋 다 정말이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쪼잔해.


너: 경제 상황이 나아지면 그동안 못했던 걸 해보고 싶잖아,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나: 맞아. 과외를 하면서 돈을 첨 벌기 시작했을 때 건건이 얼마를 쓰는지에 매우 예민했는데 막상 얼마를 벌고 얼마가 남았고 통장 잔액 자체에는 그만큼 예민하질 않더라고. 그러다 회사를 갔고 연봉이 오르기 시작했는데도 내 소비 수준이나 태도가 엄청 달라지지 않았어. 지금 당장 몇 백 원 싼 걸 찾는 게 더 중요했달까.


너: 관성 때문에 그런가? 몸이 기억한다잖아.


나: 엄마의 몸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데 왜 우리 몸은 이렇게 기억하게 됐을까. 쪼들림을 극복한 엄마는 기억에 없고 굳이 쪼잔해지고 말았을까.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불행했다고 기억하는 걸까.


너: 그 연예인은 엄마의 뭘 기억하디?


나: 엄마가 자기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차를 마시고, 일과를 마치면 일기를 쓰고 그런 사소한 거. 엄마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걸 이뤄냈는지 그런 거도 언급하고.


여행 일정 마지막에 선물을 교환하는데 그 엄마가 일기장을 들고 왔어. 팬들 사이에서는 그 연예인 어머님의 일기가 꽤 유명하거든, 그는 여전히 본가에 가면 엄마가 그동안 썼던 일기장을 진짜로 몇 시간씩 열심히 본다고 하더라고. 그 시절의 자기와 엄마에 감동을 받는 거 같아. 그 엄마가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 가끔 너도 일기를 써보라며 새 노트를 건네는데 쟤는 저걸 쓰겠다, 혹은 쟤는 저걸 보면서 엄마의 일기장을 생각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너: 나는 진짜 엄마한테 선물을 성공한 적이 없는데. 엄마한테 받은 선물도 그렇고.


나: 나 역시 그 생각을 했어. 엄마 취향이라고 확신해도 엄마가 별로 안 좋아하시고 몇 번 그러다 이제 선물 자체를 잘 못해. 내 취향을 엄마에게 선물해도 그 역시 엄마가 즐기시지 않아. 엄마랑 나 사이에 교집합이 이렇게나 없어도 되나.


너: 네가 어떤 행동은 도무지 그 안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영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잖아.


나: 언니가 이부자리 산 그 얘기할 때였던가? 불편함이 기반인 소비를 해도 편해지질 않더라는 얘기?


너: 응 그리고 내가 가족여행에서 스위치 켜졌을 때 스위치가 켜지지 않았더라도 여행 내내 나의 긴장 레벨이 낮진 않았을 거라고.


나: 그래 기억나!


너: 내 생각에는 우리가 여전히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 그니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말이야.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해결뿐인 건 아닐 거야.


나: 그러게. 멀리 떨어져 살기도 하고 엄마가 나이 드시고 약해지기도 하시고, 나는 꽤 자주 엄마가 돌아가시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그리고 슬프고야 말지.


너: 생각만으로도 불편하지 그런 건.


나: 맞아. 그 상황이 오면 감정이 매우 복합적일 텐데 슬픔이나 후회, 더 잘 못했다는 죄책감 이런데 사로잡힌다면 그 또한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그건 내 감정이잖아.


너: 그래, 헤어짐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부정적이면 떠나는 사람 맘이 안 좋을 거야.


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편이 어머님에 대해 ‘멋진 여성 사업가였고, 훌륭한 엄마였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그니까 자기감정이 아니라 어머님을 묘사한 거지. 엄마를 역할이 아닌 사람으로서 더 잘 알아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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