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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01. 2023

욱하는 감정은 언제부터 최강자가 되었는가

선 긋고 알게 되고 미안하고 고맙자

나: 또 예능 클립에서..


너: 나 혼자 사는 반짝반짝?


나: ㅎㅎㅎㅎㅎ 알면서~ 그 예능에서 한 패널의 에피소드가 나왔어. 음악 하는 사람이 노래를 만들고 있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지.


너: 오 그래, 그 코드 찍는-


나: 응응, 예능에는 나오는 사람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캐릭터에 재미를 더해서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놀리는 게 반복되잖아. 그 장면에서도 여러 멤버들이 슬금슬금 놀리는 멘트를 던졌어. 집중할 때 입술을 꼭 깨물고 해야 하냐, 각도가 좀 꼴 보기 싫다 그런 장난스러운 농담들? 예능프로그램을 자주 보던 사람들이라면 익숙해서 거슬리지도 않는 흔히 나올 법한 장면들이었지.


너: 그래, 오디오가 비면 안 된다더라. 그래서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분위기를 재미있게 끌어가는 게 능력이라대?


나: 그렇지. 그때 나의 연예인이 ‘본업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한마디를 했어.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예능에서 드물게 선 긋는 장면이 나온 거지.


너: 오. 안 그래도 저 사람 나중에 일할 때 괜히 입 한 번 신경 쓰이겠다 싶었어. 농담하던 사람들 반응은?


나: 눈치 빠른 사람들이니 바로 ‘일하는 모습 역시 멋있네 캬’ 머 이렇게 말을 돌리며 넘어갔지.


너: 그랬구나. 가끔은 분위기를 유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농담이라면 내용에 상관없이 너무 큰 점수를 주는 거 같아.


나: 나도 자주 웃기려고 농담을 주도했던 사람이라 내 농담에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아찔해. 웃는 분위기에 기분 나빠도 내색하지 못한 순간들이 분명 있었겠다 싶고. 나는 기억도 안나는 장난들이 누군가에게는 가끔 혹은 자주 갸우뚱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너: 예능인데 선 긋기를 한 것도, 그걸 편집하지 않은 그 프로그램도 인상적이네.


나: 그래서 든 생각이.. 현생에서 여럿이 함께 있을 때 내가 하는 농담에 누군가가 선을 긋는다면 내가 겸연쩍겠지? 속으로는 지가 뭔데 면박을 주나 생각하고 앞으로 그 사람이 신경 쓰일 거야.


너: 그렇지. 그래서 애매한 상황에서 선 넘는 사람을 막기보다 그 소재가 된 사람을 달래며 흐린 눈 하잖아. 선 넘었다는 걸 표현하는 순간까지도 부드러우려고 애쓰고. 꼭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색 자체에 정색하지 다들. 우리는 그걸 또 사회성이라고 부르고 성격이 좋다 나쁘다 단정까지 해.


나: ‘선 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지적한 순간 ‘아슬아슬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면서 미래의 무례를 방지할 수 있게 됐잖아. 근데 발화 순간의 짧은 쪽팔림에 모든 감정이 집중되는 게 아닌가.


너: 새롭게 선을 알게 된 긍정적 효과는 사라지고 부정적인 경험이 돼버리네.


나: 그렇지. 내가 선을 넘어간 그 과정까지가 이미 부정적이었던 건 생각도 안 하고 정색한 순간만 강렬하게 남지. 사실 그런 지적을 받는 순간, 자기도 자기가 선을 넘었다는 걸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내가 해봐서 알아. 모.


너: ‘나의 무례를 공개적으로 확인’한 겸연쩍음, 지적한 상대에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나를 쪽팔리게 하다니’ 서운함,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내가 쪽팔린 장면을 목격한’ 창피함 등등의 감정이 섞이겠지. 딱히 이긴 사람은 없는데 나는 뭔가 진 기분이고.


나: 한 케이팝 그룹에 두 멤버가 있어. 그룹은 회사의 기획이다 보니 멤버들끼리 가깝기만 한 건 아니라더라. 둘 중 연장자 A가 다른 멤버 B랑 친해지고 싶어서 자기 딴에는 스몰톡을 시도한 게 애매하게 선을 넘는 질문을 자꾸 한 거야. 예를 들면 오늘 뭐 했어? 어디 갔다 왔어? 누구 만났어? 이런.


너: 헉, 저렇게 연속으로 질문하진 않았겠지?


나: ㅎㅎㅎㅎ 그랬길.


B는 그게 싫었어. 어느 날 B가 ‘이러는 거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대. A가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난 이게 친해지는 방법인 줄로만 알았어’ 이렇게 인정했대. B는 A가 그 상황에 화를 내지 않고 자기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게 인상적이어서 지금은 그 둘이 친해졌어.


너: k-장유유서를 깬 에피소드인데 훈훈한 결말이네. 내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음 회사에서 후임이.. 음 이건 뭔가 관계가 다른 거 같고.. 친한 동생이 나랑 대화하다가 솔직한 맘을 담아 정색하며 선을 긋는다면.. 확실히 그 순간 많이 당황하겠고 우선은 미안하다고 할 거 같다ㅎㅎㅎ


나: 사과의 민족. 야 그래서 둘째가 자꾸 엄마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하는 거 아냐?


너: 헐.. 오늘 왜 이렇게 헐 많이 나와. 모.


나: 한 예능에서 선 넘는 질문에 ‘상처 주네’ 이렇게 반응해서 뜨거웠던 적이 있잖아? 생각해 보니 그 후 그 상처 준 사람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겸연쩍어하고 말았나? 아니면 미안하다고 했나?


너: 다시 보기를 찾아보니 그 상황이 매우.. 흘렀어. 장난친 사람의 직접적인 반응이 나오진 않았고 자막으로 농담농담 이렇게 달리면서 그 예능인이 괜찮아요 예 예 이러면서 넘어갔다.


나: 이놈의 쿠션들이 온 세상을 정복했구먼.


너: 그러게. 우리는 상처 주네,에 열광하느라 상대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네. 사람들이 무례함은 무례하다고, 미안함은 미안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그렇게 직접 표현하지 않고 에둘러 감정 숨기는 게 진짜 부정적인 거 아니냐고! 이놈의 부정카테!


나: 나부터 정색을 그 내용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인정한다는 걸 표현하는 사람이 되야겠어.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내 감정으로 가져오지 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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