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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02. 2023

모든 일에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은 과연 언제나 현명한가

지금부터 시작

나: 고백할 게 있어.


너: 이 고백전문가야.


나: 아잉. 그동안 나는 수다가 잘 진행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아. 원인을 찾아서 그걸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봐.


너: 아니야?


나: 그저 서로 물리적 환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겪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아닐까. 우리뿐 아니라 많이들 겪는다고 하기도 하고.


너: 그런가. 그래서 도무지 대책이 나오지 않은 건가.


나: 회사 다닐 때 한창 스터디에 꽂힌 적이 있었어. 그런 모임이라면 목적이 분명하잖아. 만난다-공부한다. 근데 그렇게 만나다 보면 스몰톡이 시작되고 뒤풀이를 하자고 하고 그렇게 흐르지.


너: 그래,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나: '오랜 친구들과의 친목'이나 이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과 '시나브로 만들어진 친목'. 나는 둘 다 비슷한 고민을 했었거든.


너: 그럼 네가 문제인가?라는 결론을 낼 수도 없는 게, 나도 지금 모임들 중에서 꼭 유지하고 싶은 걸 몇 개만 꼽아보라면? 움.. 어렵다.


나: 그래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겪는 단계 같다는 게 현재 결론이야. 만약 진짜 문제의 원인이 있었다면, 그 원인이 있는 모임을 안 나가면 깔끔할 텐데, 그 원인이 대부분의 모임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걸 어쩔 것인가.


너: 그럼 이렇게 살라고? 그냥 인간은 원래 외롭다 그렇게 마무리해?


나: 아니지. 그니까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더 자신 있게 흐름을 끊어보자는 거야.


너: 움. 여둘톡 Ep. 10 좋은 대화란 어떤 것일까?에서 언급된 상황들이 우리 고민이랑 비슷해.


우선 첫 번째, 대여섯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할 때 오디오가 물리는 건 너무 일어나는 일이잖아. 듣지 않고 말하기만 하겠다는 건데 뭘 말하겠다도 아니고 그냥 뭐라도 말하겠다로 시간을 채우는 일.


두 번째, 부동산 얘기, 투자 얘기, 연예인 얘기, 회사 뒷담들이 오가던 중 한 사람이 "우리 이 얘기 그만하고 최근 가장 즐거웠던, 가장 슬펐던 경험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제안했대. 원래 친한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날 모임에서 얘기를 나눈 후 다들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대. 여둘톡 진행자들도 있던 술자리에서 누군가 이 경험을 공유했고 그래서 '우리도 해보자!'이렇게 돼서 거기서도 했고 성공적이었대.


세 번째, 이 진행자들도 한창 사람들이랑 만나고 돌아오면 진이 빠지는 경험을 했대. 모인 멤버들을 싫어하는 건 분명 아닌데 아무것도 안 남는 모임과 관심 없는 얘기를 서로 듣는 피곤함? '이 사람들이랑 훨씬 더 나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다음 모임에 또 그런 얘기가 진행될 때 '이 얘기 그만하자'라고 대놓고 말했대. 그리고 아마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나서 이제는 다른 얘기들을 한대. 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 오 그래. 내가 이걸 굳이 고백이라고 얘기한 이유가, 내가 지적하는 원인 안에 '이 문제제기를 하는 나' 포함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사실은 나는 탓할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거 같아. 나는 준비되어 있는데 다른 상황들 때문에 못한다고 찡얼 대기만 하고 있고, 너도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챘을 거야. 그래서 방향을 한 번 틀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


너: 여전히 지금 사회의 친목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킬링타임일까?


한 책에서 공동체와 사회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공동체에서는 대화의 형식으로 다들 독백을 내뱉는다'는 말을 하더라고. 그 책에서의 공동체가 지금 사회의 친목이랑 좀 비슷할까 싶은데 그 공동체는 물리적인 가까움이 기반인 거 같긴 해.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모임보다는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무언가를 내뱉다 보니 문제의식이 생겨서 독백의 공동체에서 대화가 진행되는 사회로 넘어간단 얘기.


나: 오 그래. 그러면 우리는 좀 더 독백의 시간을 가져야겠어. 그니까 시간을 채우는 말들 말고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간.


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감정을 휘저으면 그것도 또 보통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나: 한 번은 휘저어져야 서로가 섞이지 않을까? 다음 단계로 감정을 섞는 걸 시도해 보자.


너: 음.. 뭐가 있을까. 저렇게 슬픈 일 즐거운 일 이런 거부터 시작해도 될까.


나: 그래. 나처럼 일상에 큰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최근에 경험한 신기한 일이나 인상적인 일 같은 것도 좋고.


너: 서로에게 속마음을 어디까지 보이는 게 혹은 보는 게 편한지 아직 다들 모르잖아. 진짜 얘기 안 해보면 몰라 거 참. 알고 보니 더 잘 통하는 다른 친구들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


나: 헙, 맞아, 그럴 수도 있지. 이 수다빌리티에 몇몇이 더 등장할 수도 있고. 와 상상으로도 신기하네.


너: ㅎㅎㅎ 그러게.


나: 네가 전에 알려준 테드 You Don’t Actually Know What Your Future Self Wants에서 과거-현재-미래의 나를 분리시켜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게 인상적이었거든. 그걸 봤으면서도 나는 현재의 관계를 돌아보는데 무슨 과거를 그렇게 뒤적였나 몰라? 나 왜 배우는 거 없어, 모.


너: 푸하하하. 그래, 미래의 우리가 누구랑 더 친해질지도 모르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더 잘 관계를 맺고 싶을 수도 있으니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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