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 가더라도 잠깐 뚝딱이는 건 괜찮잖아
나: 영어 유치원 열풍에 대해 얘기하면서 수학이나 코딩 유치원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했잖아. 이과의 나라인데!
너: 응응, 다른 과목들은 못해도 일상생활에서 티가 안나지만 영어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티가 나게 마련이고 그 순간 스스로가 촌스럽다고 느끼는 건가 싶다, 고 했지. 그래서 수학과 영어는 그 교육열의 성격이 다른 것 같다고 했어.
나: 그 얘기 후 촌스러움에 꽂혔어.
너: 썰을 풀거라.
나: 우리는 뭐.. 매우 뚝딱 거리잖아. 관계에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정말 작은 것들에서도 매 순간 뚝딱이지, 말해 뭐 해.
너: 커피 맨날 주문하면서도 맨날 뚝딱여 진짜. 잘 못 알아듣고 막! 모.
나: 바로 그거. 우리가 지짜 야 얼마나 어? 얼마나 뚝딱이니. 근데 그걸 또 얼마나 안 들키고 싶니.
너: 내가 뚝딱이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면 괜히 겸연쩍지.
나: 응 순간 모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인 거니까 그렇게 되지. 하지만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뚝딱일 거 아냐.
너: 매우 철학적이지 뚝딱임이라는 건. 시작도 끝도 없고 내가 죽어도 남을걸.
나: ‘뚝딱이던 오월 잠들다..’, ‘걔는 참 잘도 뚝딱였어.’ 모.
너: 뚝딱이는 건 진짜 촌스러운 걸까. 그런 얘기 자주 하잖아 '야 너는 아직도 그걸 못하냐, 그 나이 되도록 그걸 모르냐' 뭐 그런? 근데 우린 항상 모르지.
나: 얼마 전 인터넷에서 회의 준비로 커피 5잔을 사는데 어떻게 사야 센스 있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런 논쟁을 하더라고.
너: 논쟁?
나: 댓글 읽어보면 진짜 논쟁이야. 그 얘기가 진지하게 오가는 걸 보면서 커피 사는 센스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화를 해서 답을 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싶어 피곤하더라. 그냥 커피 사는 데에는 센스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받으면 큰일이 나는 건가.
너: 너는 네가 센스 있는 편인 것 같아?
나: 센스 있는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센스가 없는 걸 자주 들키지는 않았던 거 같아.
너: 나도 그랬어. 세상엔 센스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은데 또또 우린 그걸로 잣대를 세웠네.
나: 실체도 없는 센스. 그러게나 말이야.
너: 대리 수치 알지?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저러면 창피한 거다’ 이런 학습을 하는 건지 그런 거 정말 불편해서 잘 못 봐.
나: 오 맞아 그런 짤 많지. 그러고 보면 내가 뚝딱이는 걸 들키는 것도 불편하고 남이 뚝딱이는 상황에서도 내가 불편하게 학습하나 보다 우리.
너: 요즘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뚝딱임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그렇고.
지난 대화 때 선긋기 얘기를 하면서 그만하라고 선을 긋는 그 몇 초의 겸연쩍음을 피하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한 시간에 흐린 눈 하는 걸 선택한다는 얘기를 했잖아. 그것도 그렇네.
나: 맞아. 우리는 분명 뚝딱이고 그게 당연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숨기는데 급급하네. 창피보다는 멋쩍음 정도인 거 아닌가.
너: 그중 과한 것들이 있는 거 같아. 영어가 그중 하나고.
나: 일상생활에서 영어 때문에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거든. 사회에는 영어를 잘한다는 이미지로 만들어진 세련됨이 있는 거 같아. 그 배경에는 돈이 잔뜩 관여하고. 또 돈이 세련된 거네 결국, 이런..
너: 그걸 세련이라고 세팅하는 것도, 세련됨의 반대가 촌스러움이라고 하는 것도 다 문제네. 이 흑백사회!
나: 어쩌면 우린 뚝딱임을 숨기느라 수다도 잘 못 떠는 게 아닐까? 내가 모르는 걸 들키느니 말을 않겠다, 내가 없는 걸 들키느니 그것도 말을 않겠다 그런.
너: 오, 그럴 수도 있겠어. 나도 맥락에 안 맞는 얘기인가 싶을 땐 아예 말을 안 하거든. 나를 대화의 소재로 얹는 것도 뭔가 해체되는 것 같아 불편하고 말이야.
나: 움.. 그러게. 갑자기 뚝딱 범위가 넓어지긴 했다만.. 모든 뚝딱임을 촌스러움이나 창피함이 아니라 원래 그런, 나도 그런 상황으로 넘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