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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2. 2022

오랜 시간 함께인 우리의 얘기에 우리가 등장하나

수다의 분위기

나: 환장할 우리 가족을 읽은 후 계속 덩어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 그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나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에서 확장된 사회 말고, 진짜 우리. 우리는 뭐고 우리의 얘기라는 건 뭘까.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웃음꽃 피우면 우리 얘긴가.


너: 친구들이랑 데이트, 교환학생, 인턴, 가족, 취업, 결혼 준비, 회사 불만에서 지금은 몇몇의 남편과 시댁, 아이 얘기를 주로 하는데 그 주제 안에는 나뿐 아니라 우리도 없어. 우리를 둘러싼 사건들을 나열하고 해결책을 같이 나누지만 그 사건 속에서 내 친구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마음이 어땠는지 막상 몰라.


나: 그룹으로 만나는 친구들이랑은 대부분 비슷해. 저런 고민들이 그 나이 즈음에 '밖으로 공유 가능한' 마지노선 같은 건가 봐.


너: 친구들이 주로 입는 옷이 뭔지는 알지만 그 친구들의 취향은 전혀 몰라. 색이 좋아서, 소재가 좋아서 입는 건지, 가성비를 따져서 샀을건지, 그 옷을 입었을 때 누군가가 '잘 어울린다'라고 하니까 입는 건지 모르겠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영화는 감독을 보고 결정하는지 배우를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그냥 킬링타임으로 아무거나 상관없는지. 음악을 듣는지, 음악을 들을 땐 가사에 심취하는지 멜로디를 타는지.


나: 그때그때 모임에 적합한 장소를 선정해서 가지만 그게 우리 중 누군가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이라기보다 그즈음 인터넷에 검색이 잘 되는 곳 정도라는 것도 알아. 그 길고 비싼 네 시간 동안 우리의 취향에 지불하지도 않고 우리 얘기를 하지도 않아. 가끔은 대화 중 감지되는 복잡한 텐션을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너: 우리라는 덩어리 안에는 너도 나도 없어. 우리도 없어!


나: 20대에 진짜 사춘기를 겪으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나 역시 그런 얘기를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하지 않았어. '그런 얘기'가 어두워서 분위기를 망칠까 싶어 그랬나, 애들이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나.


너: 뭐라고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 '나 우울해!' 다음엔?


나: 그다음이 없으면 얘기하면 안 되나. 모임이 가끔은, 다른 분위기일 수는 없나. 안 그래도 인생 우울한데, 모임은 그러고 싶지 않은가. 어느 정도 관계여야 ‘상대가 듣기 싫을까봐 내가 걸러낸 말’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너: 대화 소재의 분위기는 누가 정하니.


나: 하루는 좋아하는 이태원 타코 집에 들어갔는데 두세 개 테이블에 20대 초반 무리가 앉아서 타코를 먹고 있었어. 그중 한 남자가 '어제 여친이랑 헤어졌다, 내 맘이 지금 말이 아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머 이런 얘기를 했는데 나머지들이 계속 자기네 할 일을 했어. 타코를 먹고 냅킨을 전달하고 등등. '아이고 힘들겠다', '어머 어쩌니', '너 괜찮니'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네가 그렇지'라거나 '세상에 절반은 여자다'라는 농담으로 흐름을 끊거나 무시하지도 않았어. 그 남자는 얘기를 좀 더 하다 마지막엔 '이 새끼들 처먹기만 하고 내 말 안 듣는 거야?'라며 장난으로 버럭 하긴 했지만 확실히 외부에서 바라봤을 땐 분위기가 망가지지 않은 채 그는 말하고 그들은 듣고 있었어. 왠지 그 장면이 계속 기억나.


너: 모이면 대화가 더 길게 이어지는 소재가 있는 거 같아. 우리는 그걸 공통 관심사라고 여기는 거겠지만 어떤 경우 나의 관심사는 아니지ㅎㅎㅎ


나: 난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소재마다 다른 무게가 얹어지는 게 불편해. 어두운 얘기를 했을 때 내가 더 징징대지 않을 정도로 '어머, 그렇구나'정도의 1절만 할 수 있는 관계라면 어두운 부분을 좀 더 부담 없이 전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너: 이건 어때? 만나면 처음에 그냥 대화의 진행 없이 서로 근황을 공유하는 거야. ‘나 승진함’, ‘나 살찜’, ‘나 이혼 생각 중’, ‘엄마 아픔’, ‘샤이니 컴백’ 좀 더 살을 붙여야겠지만 이렇게. 그때는 그냥 다들 1절만. 오, 와, 음? 머 이런 정도?


그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가서 더 길게 얘기할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거지. 그건, 우선 자기가 먼저 제시하고 ‘아무래도 회사를 관둬야겠어’ 그러면 대화를 이어가는 거야.


나: 그거 좋다. 난 가끔 내 근황을 나누는 건 괜찮은데 그 얘기를 굳이 오래 하고 싶지 않을 땐 그 얘기를 아예 안 꺼내거든. 적당한 근황 공유는 친구 사이에 필요한대도.


너: 그렇지. 그러기도 하고 대화하다 보면 막상 대화 주제나 주인공이 편중되더라고. 얘기 잘 안 하는 친구 얘기는 계속 못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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