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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22. 2023

함께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세대와

앞으로도 함께 하기, 물론 나 포함

나: 네가 우리 세대의 공통 고민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 생각해 봤더니, 정말 공통분모가 많더라고. 그런데 어쩜 이렇게 서로가 머냔 말이지.


너: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공통이었던 걸 찾아보자.


대학 초기에 정치에 관심 없다,는 표현을 자주 썼던 게 나도 생생하게 떠올랐어. 그 말을 굳이 했어야 할 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던 시기였나 봐. 정치라는 표현에 단체, 그룹 이런 것까지 함축되어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세련된 도시 속 외롭고 차가운 개인이 됐어.


나: ‘이기주의 말고 개인주의’ 이 말을 정말 자주 했고 자주 들었어. 그러면서 세대 덩어리가 쪼개져 공통의 특징이라는 게 흐릿해진 경향이 있지. TTL 광고가 기억난다, 감각적 모호함이 또 한 쎄련했네. 이해보다 감각~


너: 우리 고등학교 시절에 IMF를 겪었잖아. 그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없어도 이미 그걸 겪은 사회로 우리가 진입했어. 다 같이 문제를 해결했다, 보다 그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놀란 사회였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많았고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으니.


나: 그래서 경쟁이 더 심화됐을까? 그전에는 상위 어딘가 경쟁이 심한 사회가 있다더라 정도였는데 우리 때쯤 채용인원이 눈에 띄게 줄면서 모두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기 시작. 인문학을 전공하던 친구들이 취업이 안 돼서 실용학 등을 부전공 혹은 복수 전공했어. 우리 때가 최악이다, 고 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악화되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아진 적이 없어. 세상에..


너: 맞아. 별 것 아닌 듯 보이던 것도 가지지 못하는 경험, 내 선택이 내 발목을 잡는 경험, 나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는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얻는 걸 지켜보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했고 그러면서 열등감을 장착했어. 내 열등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게 남을 까내리는 거였네. 친구들끼리도 속으로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어.


나: 개인이 중요하다는 강박을 가진 채로, 내가 별거 아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어. 어려웠네.


너: 그래서 자기 계발이 퍼진 거 같아. 너 별 거 아닌 사람 아냐, 나도 그땐 그랬는데 극복하고 백만장자가 됐어, 너도 할 수 있어 이런 긍정주의가 삽시간에 퍼졌지. 시간 상 전후관계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흐름 속 순서는 꽤 비슷한 거 같아.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기 개발서 계발서 많이 접했고 서점에 크게 코너가 생기고 판매량 상위를 언제나 차지했어.


나: 맞네! 동기부여 된 사람도 많았겠지만 난 그때 이미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이 과거를 반추하는 얘기가 불편했거든. 작가랑 비슷하게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로 경제적 사회적 명성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책도 안 읽을 거고 부지런해지지도 않겠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책이 별로라서다’고 비꼬는 거 같아서 맘이 안좋았어, 모. 아, 그리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망해도 싸다는 건가, 그거도 불편했어.


너: 사람들이 이 자기 계발 책을 열심히 선물하고 막상 아무도 읽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ㅎㅎ


나: 와 진짜 그랬어, 시장이란.. 아, 엄친아 열풍도 있었네.


너: 그건 해도 안된다는 생각이 반영된 거 같아.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어떤 인물에게는 쨉도 안된다. 그러다 안철수가 나타났어 두둥.


나: 갑자기?라고 쓰고 싶지만 진짜 갑자기, 강력하게 나타났지. 나도 그때 막 감동받았던 기억이 나. 저런 어른이 진짜 어른이구나 이러면서. 아마 어른이 이 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랐나 봐, 나도 어른이었으면서. 흑역..


너: 다들 그랬지 모. 서울시장 후보 사임하는 것까지 우리 세대가 혐오하던 정치 자체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였고 그땐 완전체로 보였어. 그래서 대선까지..


나: 그러면서 몇몇 인물들 인기가 급상승했어. 진짜 파괴적 혁신 그 잡채.


너: ㅎㅎ 맞아. 멘토, 힐링.


나: 할 수 있다,는 밑 끝없는 긍정주의에 채찍질당해서 다들 번아웃이 왔지.


너: 끝없는 비교와 비하. 아무리 가족이나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런 거 아냐’라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태도로 더 멀어지기만 했어. 그런데 저 ‘다가갈 수 없는, 다 가진 넥스트 레벨 으른들‘이 이 사회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하며 힘든 걸 이해한다, 절망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하는 게 붐처럼 퍼졌지. 토크콘서트 등 ’힐링 강연‘이 불탔어. TED, 세바시 이런 것도 그즈음 나타나서 아직도 유지되고 있고.


고작 몇몇 어른이 잠깐 말로 토닥여준다고 그 많은 젊은이들이 힐링되는 것 처럼 보인 게 기이해. 하지만 그런 집단 최면(?)이 먹힐 만큼 다들 지쳐있었어.


나: 아우 야 진짜.. 기억난다. 나도 가끔 위로를 받았던 거 같아. 그 즈음에 정의란 무엇인가, 철학, 인문학 또 이런 거에 꽂혔지. 내가 얼마나 지엽적인 사고를 하고 있나 놀랐고 그 이후에도 생각이 넓어지지 않은 것도 코미디야.


너: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해도 행복해지진 않더라는 게 또 퍼졌어. 불확실한 미래 대신 지금의 작은 확실한 행복, 소확행.


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퉁쳐서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던 게 기억나. 한 선배가 대기업 편의점 본사에 취업했고 매장 관리를 했었는데 자기 딴에는 파트타이머들이랑 친해지려고 사다리 타기 해서 과자 쏘기 이런 걸 한다고, 재미있다고 얘길 했어. 그때 그 파트타이머들 시급이 2천 원은 됐을까. 그래서 같이 있던 다른 선배가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당신이 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면 하지 말라고 얘기했어. 그랬더니 그 선배가 ‘나도 돈 없어!’ 그러더라고. ...아마 진짜 돈이 없었을 거야, 아직도 그렇겠지만 대출을 이미 잔뜩 끼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고. 너도 돈 없고 나도 돈 없는데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버는 게 무슨 의미야 싶었겠지. 다들 그 얘기에 찝찝해하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너: 내가 너보다 아무리 더 벌어도 나도 힘들고, 너랑 내 몫을 나눌 정도의 관계도 아니고.. 딱 떨어지는 공식이긴 하네.


나: 자기 연민이 가득하다 보니 ‘나보다 더 불쌍하다’는 건 더 이상 내 행동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기 시작했어. 나 왜 자꾸 시작했대ㅎㅎㅎ 암튼 내 기억에 그런 사례 등장하기 시작!


너: 전 세대랑 달라진 많은 것들이 있었을 텐데 경제적인 부분이 전면에 보였고 생존에 위협인 것으로 일반화됐어.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주지 않고 돈 없으면 망한 거라고 답 없다고 내몰았어.


88만 원 세대여, 바리케이드를 치라! 고 윗세대가 외친 들 우리는 이미 개인이고 세대가 뭉쳐서 뭘 해볼 생각도 해본 경험도 없던 거지. 그래서 그냥 만나면 하하 웃고 집에선 혼자 더 열심히 해보려고 시도했는데 뭐 되나. 안 되는 모든 건 더 열심히 하지 않은 내 탓이라 자책하다가 펑하고 터지면서 메딕 등장. 다시 힐링 얘기를 해보자.


나: 내가 전문가의 강연이나 그런 걸 봐도 결국 움직이질 않더라고 했잖아? 분명 감동하고 나를 건드리는 건 맞거든. 이슈는 오래인데 내 감동은 잠깐이라서 싱크가 영 안 맞고 나는 또 내 탓인가 싶어 혼자 이 수다빌리티에 털어놓아.


그런 힐링은 단편적 이벤트일 뿐이야. 충분히 힘들어해도 괜찮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는 울고 감동받아도, 돌아오면 난 여전히 주변인들과 단절되어 있고 날 이해받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입을 다물어.


... 어라? 가족, 친구들과는 계속 가까워질 계기가 안 생기네?


너: 그 누구보다 멋진 나를 보여주려다 그런 걸까? 아무튼 힐링도 순간의 쾌락이랑 다르지 않아서 또 다음 힐링 세션에 큰돈을 기꺼이 지불하지. 그러다가 결국 패턴과 그 감동에 익숙해지고 멀어져. 그리고 나는 여전히 쟤보다 안 멋지지.


나: 그래도 믿을 건 자신 뿐이라서 자존감이니 자신감이니 이런 말들을 들으면 나는 내 안의 나를 또 더 비대하게 만들어. 나의 멋짐을 남에게도 인정받고 싶어서 자기를 연출하기 시작. 또 시작?


너: ㅎㅎㅎ 시작이라기엔 타임라인이 많이 안 맞지만 그렇게 SNS가 사람을 갉아먹지. 연출이라는 걸 알아도 자꾸 저기는 황새로 나는 영원히 뱁새로 보이니까.


나: 훔..


너: 연출이라는 건 비교가 기반이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티도 안나거든. 자존감 뿜뿜인데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인데 아무도 몰라주면 내가 멋지다는 증명이 안되니까 오히려 자기를 가장하고 과장하는 시대가 됐지. 누군가 좋아요 표시를 하고 좋은 코멘트를 단다? 진짜 증명된 거 같지. 자기에게 호감을 표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비호감 의견에는 무너져. 사람들이 ‘하찮음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잖아.


나: 맞아. 나는 SNS를 하진 않지만 하지 않는 큰 이유가 내가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 비호감을 표시하는 거에도 자유롭지 못할 게 뻔해서 애초에 시작을..


너: 왜 너 일기장에 안 쓰고 여기에 글 공개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아닌데.


나: 야, 내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야. 발행하고 하루에 몇 번을 들어와서 확인하는지. 모.


너: ㅎㅎㅎㅎㅎ 솔직하긴. 전에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가 부담스럽다고 한 적이 있거든. 이제와 보니까 그 부담스러운 맘도 다 맥락이 있는 거였어.


나: 그렇다면 최근은?


너: 음.. 가보자고? 알빠임? 중꺾맘? 여기에 경제적인 폭발을 바라는 마음? 여전히 오박사 콘텐츠가 많은 거 보면 지금은 좀 이것저것 섞인 것 같다. 근데 어그로 인기가 일시적이지 않고 계속되는 게 의아한 부분이기도 해.


나: 오 그러게. 이 맥락 속에서 이제 우리 세대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개인이 해결책도 아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나 말고 해결할 히어로를 바라고 있는 거 같아. 돈이 최고는 아니다, 고 하면서도 돈에 모든 정신이 쏠려 있기도 하고. 여전히 쟤랑 나를 저울질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부으면서 결핍에서 헤어나질 못하네.


너: 우리가 이런 얘기를 이번에만 한 건 아니잖아. 여전히 그다음 단계가 뭔진 모르겠어. 타인과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고, 타인이 곁에 뒤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겠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알겠는데 더글로리 동은이가 될 자신도 없어!


나: 현실에 체념하지 말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 같아. 그리고 결국 ‘당신의 그 고민, 우리 모두의 거다!’라는 걸 투박하고 정제하지 않은 우리 언어로 우리끼리 공유해야만 해.


너: .. 네가 하고 싶은 거 아녀.


나: 기승전 수다빌리티인데 아직도 추상적이야!!! 힐링, 공감 말고 그다음으로 가면서 개인을 조금 더 서로 가까이 끌어내는 거.. 아 놔.


너: 그러고 보니, 오늘도 썼네?


나: 내가 쓸 수 있는 날은 무조건 쓰자는 생각에 무리수를 뒀어. 쓸 게 있는 날에 쓸래 헤헤.


* 이 글은 녹색평론 129화 ‘힐링멘토 열풍에 대하여’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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