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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21. 2023

수다에 쓰는 에너지가 일상의 자양분이 되어.. 더 보기

밀어서 잠금해제

너: 이 시나리오는 왜 등장인물이 둘 밖에 없냐, 네가 연습하고 싶은 건 더 큰 그룹이잖아.


나: 오메나 그러게? 생각도 안 해봤네.


너: 티격태격을 자주 언급하면서 그런 갈등 상황도 없고.


나: 요기는.. 내가 혼자 두 명을 오가며 의식의 흐름으로 중언부언 대화하는 게 대부분이라 갈등이고 뭐고..


너: 게다가 지금 이 수다.. 단어 위주야, 문장이나 문단이 아니라.


나: 또 스토리 없어? 헐!


너: 등장인물이 너뿐이라 소재나 흐름이 네 입장에선 매우 뻔할 수밖에 없고,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의 잡아당김이 필요해서 쌍방의 콘텐츠를 해보고 싶은 게 아닐까?


나: 맞아. 근데 사람들에게 공동창작을 제안할 매력이 부족해서 why를 이렇게도 잡았다가 저렇게도 잡았다가 해보는데 영 잘 안 풀리네.


너: 음. 분명 사람들이 수다라는 아이템을 재미있어할 거야, 특히 쓰는 거.


처음 수다빌리티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했던 말이 기억나. 원래는 편지 형식으로 썼다가 가독성을 생각해서 줄을 바꾸다가 나 너로 줄에 화자를 달고 반응을 추가하게 되면서 지금 형식이 됐다고 했거든.


나: 맞아. 수다라고 생각하니 일관성, 정확성, 말의 무게에 대한 부담이 덜했어. 글로 쓰니 말보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좋고.


너: 가끔 네가 쓰는 나를 보면 재미있어. 오월이 보는 나는 이런가 싶고.


나: 내 맘대로 각색한 너를 등장시키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볼까 싶어서 한동안 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정리는 커녕 더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거야! 더 우울감이 커졌고 끝도 없고 방향도 없고 의미도 없는 생각의 늪에 빠지는 거 같아서 쓰다 말았네? 모.


너: 그래, 집요하게 자기를 파고들면서 쏟아내는 건 감정 소모가 크지.


나: 이 수다 형식은, 내가 의도적으로 너를 통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달라. 진짜 누군가 말을 한다고 상상하긴 하거든.


.. 그런데 또다시 나의 패턴이 강화되고 있어. 몇 개의 단어에 꽂혀서 감정을 나열하는 패턴.


너: 그 무게 정리가 잘 안돼서 콘텐츠 시작을 못하나 보다. 모두에게 말을 거는 스몰톡이라기엔 무겁고, 헤비톡은 감당이 안되고.


나: 딱 그거야. 난 다들 속마음을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감정의 해소를 바라는 게 아니거든. 쓰다 보니 흐르는 거야 어쩔 수 없어도 그게 내 기획의도는 절대 아냐.


너: 감정으로 흐르는 게 왜?


나: 감정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필요하지만 자기감정으로 계속 흘러가는 건 대화보다 자기 위주의 산문이 되어버려서? 내 주된 의도는 말 그대로 대화 참여자들 사이의 핑퐁! 시간 때우는 거 말고 시간을 채우는 대화를 주고받는 거.


너: 그래, 그렇다고 회화 교재 같은 대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라서 아이템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미리 공부해와서 지적인 대화를 하자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나: 맞아, 그 레벨이 영 정리가 안되고 어렵네. 일상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수다지만 굳이 이 자체에 시간과 노력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걸 왜 해보자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 너와 완전 다른 패턴의 대화를 하는 누군가를 찾아서 네 의도를 설명해 보는 건 어때?


나: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해봐야겠어.


너: 패턴의 강화가 걱정이라면 수다빌리티를 잠시 닫아봐.


나: 그것도 고민해 봤는데.. 다시 고민해 보게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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