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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27. 2023

수다랑 친구는 정말 원래 모두에게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럽고 멀다면, 부자연스럽고 가깝게 만드는 게 가능한가

* 이 매거진은 맨 앞​부터 읽기를 권장합니다.


나: 주말에 친구들에게 나의 브런치북을 공유했어.


너: 오, 작년에 쓴 거?


나: 응. 수다니 관계니 뭐니 그런 고민을 여기에 몇 달을 쏟아내기만 하고 막상 나는 암 것도 안 하고 있는 게 급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해봤지.


너: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그렇지? 글 쓰는 오월이 친구인 오월과 싱크가 맞는 건 아니라서 발가벗는 기분일 거 같아.


나: 그렇긴 해. 익명의 사람들은 많이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몰랐으면 좋겠다..? 그걸 바랐던 건 아닌데 그렇게 하고 있었어!


너: 친구들 반응은 어때?


나: 문체가 나랑 닮아서 내가 말하는 거 같대.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자기를 대입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어. 그렇게 나도 생각지 않은 친구들 모습을 알게 됐지. 새로운 자극이었어.


너: 잘 됐네. 넌 이제 까발려졌어! 모.


나: 어쩌면 당분간 자체 검열을 할 수도 있어, 안 하려고 노력해 보긴 할 거야. 전에 가족에 첨 오픈했을 때 그랬었거든, 곧 말았지만.


너: 그래.


나: 내가 어떤 친구인지 잘 모르겠어.


너: 갑자기?


나: 음.. 내가 오랫동안 자주 듣는 피드백이 속을 잘 모르겠다, 거든. 말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도무지 속마음을 얘기하진 않아서.


너: 그래, 너 그렇지.


나: 여기저기서 들었던 얘기인 거 보면 남들은 더 속마음을 얘기하나 봐. 어제 친구가 자기는 1, 2 정도의 레벨이어도 고민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9, 10에서도 아무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인 거 같다고 하더라. 내가 내 얘기를 잘 안 하는 건 익숙해졌는데 혹시 자기 말고 다른 친구한테는 말하나 싶어서 가끔 섭섭했대. 그래서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해줌, 모.


너: 너는 표현하면서 푸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 아냐?


나: 표현하면서 푸는 스타일이 아니면 어떻게 푸는 스타일인가 헷갈렸어. 표현하면서 푸는 스타일의 반대가 뭔지 모르겠더라? 속으로 삭이는 타입? 그건 뭔가 푸는 느낌이 아니잖아, 그치.


너: 네가 평소에 스트레스 레벨이 높아?


나: 확실히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럼 나는 단순히 나의 역치에 잘 도달하지 않아서 그런가.


너: 풀 게 없거나 아니면 너도 모르는 방식으로 풀고 있나 봐. 아니면 누적될 텐데 그건 아니잖아.


나: 음 그런가. 여전히 나를 보인다는 게 어떻게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암튼 나는 나를 잘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잘하지 않는데도 나를 여전히 친구라고 생각하는 내 친구들에게 급 고마웠음.


너: 사람은 다양하니까. 그런 너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어떤 부분을 채우고 있나 보네.


나:  그래. 그러면서 남편이랑 친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


너: 또 갑자기?


나: 물리적인 조건에 또 꽂혀가지고..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에 큰 비중을 두는 게 물리적인 조건인 거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 혈육 가족 이후 어떤 소속을 거치면서 나의 일상에 물리적으로 누가 같이 있는가?


너: 그렇지, 다들 그러지.


나: 처음 결혼하고 이사를 고민할 때 가족과 멀어지고, 친구들과 원할 때 못 만난다는 의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아. 여전히 모르겠긴 해.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물리적으로 남편이랑‘만’ 가까운 일상을 산다는 게 이렇게 문제가 없어도 되나 싶더라?


너: 음?


나: 지금 나는 남편과 정말 잘 맞고 관계가 매우 원활해서 남편 외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 않고 그건 확실해.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가까운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았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겠어, 좀 아찔해.


너: 네가 학생 에피소드 중 하나로, 학생과 어머님의 갈등에서 학생이 갈 곳이 없다는 걸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던 게 기억난다. 너도 다를 바 없는 입장이구나.


나: 그런 거지, 격하게 다툰다면 집 나가서 호텔이나 가겠지.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어떨까 생각해 봤을 때 그 친구들은 갈등 상황에서 다른 갈 곳이 있을까 싶었어. 나보다 익숙한 곳에 살지만 자기의 약한 부분을 내 보일 곳이 있을까. 거기는 정말 나랑 다른가.


너: 그것도 그러네?


나: 전에 친구가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고 건너 들어 그 상황을 알게 됐어. 놀란 맘에 친구에게 두세 번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더라고. 친구가 곧 다시 전화를 해서는 잔뜩 지친 목소리로 ‘오월아, 전화했어? 잘 지내지? 엄마는 안녕하시고?‘ 그러는 거야. ’오월아, 내가 지금 맘이 안 좋아서 통화가 힘드니 나중에 전화하자‘도 아니고 아무 일 없는 척 힘들지 않은 척한 거잖아. 나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는데 나에게 조차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못한 그 친구 맘이 속상해.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게 어려워.


너: 친구가 감정을 다스리는 걸 기다리는 것도 친구의 역할이잖아.


나: 그래. 그래서 그동안은 내가 친한 친구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게 안 이상했어, 친구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할 수 있는 속 깊은 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요즘은.. 이 정도가 가장 친한 관계여도 괜찮은가 생각이 들어.


너: 한 번도 친구가 뭔지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네? 모. 각자 필요한 수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기대하는 게 뭔지, 상대가 기대하는 걸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 생각해 보면 그동안 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던 거 같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만들었으니까. 지금은 공간이라는 조건이 사라진 관계 위주로 남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 듯. 공간이 사라지면서 끝날 수 있는 관계는 끝났고, 남은 관계는 여전히 소중한데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 음 그래. 근데.. 너 맨날 이런 생각하냐?


나: ㅎㅎㅎ 아니라고! 글로 쓰고 남고 이전 글들이랑 엮이니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너: 그래도 자꾸 이런 글 쓰잖아.


나: 자주 생각하는 건 맞긴 해. 전에도 말했지만 글 쓰는 건 자가발전이라 쓰는 데서 끝나진 않아. 그리고 시간이 많다 내가.


너: 그래. 그래도 좀 쉬어라 야.


나: 모, ㅎㅎㅎ. 콘텐츠 시작이 풀려야 쉴 수 있을 듯. 수다 콘텐츠 장벽 중 하나가, 사람들이 수다를 전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야. 친구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너: 친구가 중요하지 않다고?


나: 그게 아니고, 친구라는 관계 자체를 고민하는 게 어른이 된 우리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거지. 맞으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일상은 더 중요한 일들로 돌아가고.


너: 하지만 너는 그것들이 마이너 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려는 거고, 설득은 안되고.


나: 맞아. 1. 수다는 피할 수 없는, 관계를 시작하는, 관계를 이어가는 큰 액티비티인데 그렇다고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2. 친구라는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는 건 결국 물리적인 조건에 다시 종속되는 건 아닌가..


너: 무슨 얘기인진 알겠는데 여전히 나는 남편이랑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어디서 풀지 상상이 잘 안돼. 지금은 대부분.. 자체해결이지. 남편과 같이 해결도 아니고 나, 남편 각자.


나: 그렇지 모. 혈육이랑도 별로 안 친하고, 연인이나 배우자 등과도 거리가 있고, 친구와도 가깝지 않다면 다들 누구랑 가까운 거야. 아니면 우린 그냥 다 적당한 채로 이렇게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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