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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01. 2023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싫은 건 확실해

배제만 하지 말고 포함도 해보자

너: 네 수다 고민에 의문이 생겼어.


나: 뭔데 뭔데?


너: 그동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불편했던 거야?


나: 아! 노노 아니야. 나는 진짜 모범적인 개인주의자로서 전혀 불편하지 않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맺는 관계가 오히려 편하고 이 상태로 몇십 년도 살 수 있어.


너: 그럼 뭐가 문제야?


나: 문제라고 말하니까 그렇지만, 문제라고 인지하기 시작한 건, 내가 지금까지 이런 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


엄마를 멀리서 보니까 1. 그 오래 힘든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은 엄마 주변엔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았고, 2. 모두와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는데도 그 시간을 소소히 보내며 살아가는 힘이 됐고, 3. 엄마도 여전히 그 안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솔직히 이 모든 상황이 ‘그렇구나, 그랬지’ 이상으로 이해가 안 돼. 그러다가 만약 그때 엄마가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면 그 결과가 붕괴였겠다 싶었고, 갑자기 힘든 상황을 혼자 겪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괜찮은 척 웃으면서 농담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됐어. 그리고 이상했지.


그러다 몇십 년을 지나온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져도 될 것 같은데 우리가 가까워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나를 드러내는 걸 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간 거지.


너: 네 개인이 아니라 좀 더 확장한 얘기구나.


나: 응. 개인적으로는 지금 당장 아무 문제없어. 그렇지만 나 같은 개인이 많은 게 진짜 괜찮나, 애초에 우리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다면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방법은 모르겠고 우리는 주로 수다를 떠니 그럼 수다를 한 번.. 그렇게 됐달까.


너: 나 역시 개인주의 대표주자로써 알겠고 모르겠다, 모. 나는 그동안 배제 위주로 살아왔던 거 같아.


나: 배제? 제거? 삭제? 그런 거?


너: 응.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것들을 추가하기보다, 빼내고 있었다?


나: 얘기해봐 봐.


너: 어떤 사람이랑 잘 안 맞는 거 같다? 그럼 맘속에서 높게 벽을 치며 관계 삭제. 그 일은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그동안 즐거웠어, 안녕, 삭제. 시리즈 보다가 재미없어 삭제.


나: 너의 미니멀리즘, 비워내기, 명상 그런 거에 연결되는 건가?


너: 소유한 물건을 비워내는 거랑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럴 수도. 싫어서 하지 않는 건 이제 누구보다 잘하는데 좋아서 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싫은 음식은 있는데 좋은 음식이 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작고 사소해도 좋아하는 걸로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달까. 애들을 보면 싫은 것도 확고하고 좋은 것도 확실한데 나는 싫은 것만 분명한 게 새삼 떠올랐어.


나: 그래, 얼추 알겠다.


너: 이런 거 저런 걸 싫어해,라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내 취향을 형성할 순 없으니까.


나: 그러게. 취향은 좋아하는 걸로 더 확실해지는 것 같네. 그러고 보니 나는 네가 공포영화를 무지 싫어하는 걸 알지만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는 모르는구나! 네가 좋아하는 영화보다 너에게 별로였던 영화를 더 많이 알아. 별로인 것들을 더 많이 얘기해 왔네 진짜. 나도 무지 찔리네, 모.


너: 그래 그런 거, 모.


나: 이번에 브런치북을 공유했을 때, 친구들이 글을 쓴 나 말고 글을 읽은 자기 위주로 코멘트를 해줬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 글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독자라니, 색달랐어!


너: 오, 좋은 경험이다 진짜로.


나: 친구들의 그런 코멘트에 몽글해지는 거 보면.. 나, 개인주의자 코스프레를 무지 잘하고 있는 건 아닌가 봐? 아니지 잘 하는 건가? 모.


너: 너와 대화 스타일이 완전 다른 친구 만난다는 건 어떻게 됐어?


나: 잘 만났어. 친구가 설명을 듣더니 한 번도 수다라는 아이템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대.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도 자기가 만나는 친구들이 떠오르고 지금 서로의 거리로는 서로가 서로를 기대거나 지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한대.


너: 정리 안된다면서 설명을 잘했나 보네.


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처럼 ‘어른 사이 친구의 의미’, ‘가까워지는 방법 혹은 필요성’ 그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거 같대. 그런데 듣고 보니 우리가 친구라는 걸 좀 더 탄탄하게 만드는 게 개인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했어. 그러면서 수다빌리티 쌍방향 뉴스레터를 일단 무조건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더라고. 인트로에서 완벽하게 설명하고 이해하는 게 어차피 쉽지 않을 테니 부딪히면서 나도 구독자도 빌드업해야 할 것 같대.


너: 그래, 인트로에서 진행이 안되고 있다고 했지?


나: 맞아. 그 친구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래. 내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 제약을 설명했더니 애초에 건드릴 수 없는 걸 지금 시점에 고민하는 건 하지 말라고.


너: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채로 과연 진짜 더 엮일 수 있는가 그런 고민?


나: 그런 거지, 지금의 나는 물리적인 조건을 전혀 건드릴 순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인트로 초안_최종_최종_최종_수정_최종 버전이 다시 완성됐어. 아니 앞 버전에서 발전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암튼 조만간 구독링크를 돌리려고 생각 중인데 다시 생각 바뀔 수도.


너: 그만해 생각, 나 역시 그 친구에 동의해. 일단 고고.


나: 그래,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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