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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13. 2023

내 공감의 표현이 가끔 너를 방해한다고

그렇지만 공감은 필요하다고

너: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데 한 코미디언이 자기는 자기 얘기를 하려고 그 쇼를 한다는 거야. 그 자리가 아니면 사람들이 자기 말을 끊는대.


나: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맥락 상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는 ‘쇼’라는 플랫폼의 일방향성을 이용한다는 거 같아. 지인들한테 자기 얘기를 하면 그들이 자꾸 공감해서 원하는 대로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달까.


나: 아 그래서 말하는 동안 상대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는 쇼가 편하다?


너: 대충 그런 얘기인 듯.


나: 그동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찾으라고 강요받으며 살았는데 갑자기 확 다른 얘기네.


너: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를 찾아야 하는 건 맞지만, 공감의 방식이라는 걸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


나: 나 역시 말을 끊는 사람 중 하나인데, 나는 그렇게 공감을 표현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고.


너: 모든 공감 표현이 잘못이라기보다 어떤 공감의 표현은 화자가 하려는 말의 방향을 바꾼다는 게 아닐까 싶어.


나: 대화 중에 내가 너한테 ‘그래, 그때 너는 이렇게 느꼈다는 거구나, 정말 놀랐겠다’ 이렇게 했다고 치자.


너: 나는 네가 말한 대로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만 느낀 건 아닐 거야. 그런데 네가 그렇게 언급하는 순간 나 역시도 너에게 반응을 해야 하고 또 그 얘기를 들으면 그 감정이 나에게도 커지기도 하고 그러면 아무래도 그걸 강조해서 말을 하게 되지.


나: 훔, 내 반응이 너를 단편적으로 만들었네.


너: 그 코미디언도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거 같아. 자기 에피소드는 입체적이라 연결된 이야기도 감정도 많은데 상대의 공감이 개입되면 그쪽에 반응해야 해서 흐름이 흐트러지고 이야기를 끝까지 갈 수가 없다고. 그리고 상대의 공감이 자기가 의도하는 맥락이랑 안 맞는 경우도 많고.


나: 나도 대화하는 중간에 ‘그래서 지금 네 말은 이렇다는 거야?‘라고 자꾸 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넘어가거든. 그러면 안 되나 보다.


너: 그런가 봐. 하지만 여전히 공감은 필요한 거 아냐? 그러면 어떻게 하지? 드라마처럼 어떤 순간에 가만히 손을 잡아? 모.


나: 그 방식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모두의 손을 잡을 순 없잖아. 여럿이 모여있는데 한 사람이 얘기할 때 나머지가 공감할 때마다 손을 잡아?


너: 영화 같은 얘기야. 매번 그렇게 하는 건 부담스럽다야.


나: 그럼 상대가 얘기를 충분히 마친 다음에 공감이든 뭐든 표현하는 건 어때?


너: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한 사람이 오래 충분히 말을 하지 않는 거 같아. 짧은 문장으로 끊어서 말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간섭으로 짧게 끊기거나.


나: 트위터 세대라 그런가?


너: 그러는 너나 나는 트위터를 한 적도 없는데? 내 친구들 중에도 트위터를 열심히 하던 친구는 없는 거 같은데..


나: 40글자 문자 세대라서 그런가?


너: 너 자꾸 세대 문제로 연결 지을라고!


나: 나만의 문제인 거 같진 않으니까? 모. ㅎㅎㅎㅎㅎ


너: 나는 여전히 책을 가장 좋아해. 기사나 단행본 이런 것보다 책 한 권을 읽는 그 속도를 좋아하는 거 같아.


나: 나는 반대로 기사 같은 짧은 글을 더 많이 읽어. 더 솔직히 말하면 기사 제목들을 가장 많이 읽는 거 같아. 모.


너: 잡았다 요놈!


나: 나만 그러냐고, 그래서 다들 자극적인 기사제목 뽑는 거 아니냐고.


너: ㅎㅎㅎ 그래, 우린 그런 세대인가 보다. 암튼 우리가 서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


나: 그 정도의 집중력이 안 돼서 그런가?


너: 친구들을 만나면 보통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그렇게 한 서너 시간을 보내거든. 그 시간을 뭘로 채우느라 그렇게 서로의 말을 짧게 끊는 걸까?


나: 나 한동안 모든 콘텐츠를 최고속도로 봤었다고 고백한 거 기억나냐. 그러다가 이제 안 그런다고.


너: 기억나지. 웃을 때도 그 속도 맞춰서 웃는다는 나의 고백도 기억나고.


나: 빠른 속도로 볼 때는 그렇게 빨리 많이 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 안에 빨리 요 시리즈를 끝내고 싶었나 봐. 그러다 보니 내가 본 콘텐츠의 제목은 말하겠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 났고 그게 좀 이상해졌어. 분명 보면서 울고 웃고 했거든, 몇몇 장면은 떠오르는데 전체 내용은 기억이 안 나! 그러다가 제 속도로 보기로 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콘텐츠는 다시 보기도 했고 그랬지.


너: 그랬더니 이제 기억나?


나: 내가 원래 기억을 잘하는 편은 아닌 거 같은데 전보다는 그래도 기억 남.


너: 네가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어. 분명 수다로 꽉꽉 채웠는데 헤어지고 나면 수다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나: 맞아! 그것도 속도가 관여한 걸까?


너: 속도뿐 아니라 깊이도 관여한 것 같아. 속도가 빠르면 깊은 얘기로 흐르기 쉽지 않으니.


나: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내가 말을 꺼낼 때는 상대가 이해하길 기대하기 때문에 나와 상대의 논리에 맞게 말을 쳐내게 돼. 말하다 보면 원래보다 상황이 많이 간단해지지.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근본 없는 무논리인 경우도 많잖아. 그걸 우리의 수다시간이 좀 더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나 크기라는 것도 꽤 정해져 있다 보니 이해 안 되는 상황에서도 곱씹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잖아. 정리 안 되는 어떤 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수다빌리티 쓸 때가 그래, 헤헤.


너: 그래. 내가 네 수다빌리티를 읽으면 많이 곱씹어야 한다고.


나: 나의 이 깔끔하지 못한 맥락을 너는 받아들이라.


너: 야, 모.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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