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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14. 2023

하지 않았어도 될 무언가를 일부러 결정할 결심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기준이라는 게 있나

나: 너는 네가 어떤 기준으로 네 일들을 결정하는지 알아? 진로를 선택할 때, 회사를 선택할 때, 누군가와 같이 살기로 결정할 때.


너: 네가 언급한 것들은 선택보다 매칭 같아. 상황에 맞는 후보가 있었을 거고, 상대 쪽에서도 의향을 보이면서 성사됐으니까. 하긴, 내가 후보를 선택하긴 했겠네.


나: 움, 그러면 하지 않았어도 될 무언가를 일부러 한 걸 결정이라고 부르자. 가장 처음 무언가를 내 맘대로 결정한 건 동아리였어.


너: 오, 나는 고등학교 때 하고 싶은 서클에 들어갔었는데 그게 시작인가. 그러고 보니 난 자주 내 맘대로 결정을 했어. 다들 고르지 않는 걸 선택하기도 했고, 인기가 많지 않은 언어를 배우기도 했고, 서울 본가를 두고 굳이 멀지 않은 곳에 독립도 해봤어.


나: 꽤 멋대로였는 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너: 나란 녀석, 여전히 멋대로지.


나: 그때의 선택으로 돌아가보자. 그 언어를 배우기로 결정하고, 그 나라들을 여행하기로 결정하고 그런 과정에서 기준이 뭐였어? 왜 그거였어?


너: 음.. 대단한 기준이 있었을까. 그냥 꽂힌 거지. 네 덕통사고처럼 나도 ‘엇 여기다! 앗 이거다!’ 이러면서. 하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러면 당장 검색! 내 니즈와 일정에 적당히 맞는 게 보이면 고!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단순했어. 어디를 가는가도 중요했지만 가는 거 자체가 더 중요했거든.


나: 그래,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싶은데 고민의 순간엔 육감 혼자 일해. 사람들이 왜냐고 질문하면 할 말 딱히 없어.


너: ㅎㅎㅎ 맞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시점의 나에게 쌓여있는 데이터들이 돌아가면서 선택을 만들었을 거야.


그때의 나는 새로운 경험을 매우 갈망하고 있었고, 그 결정들이 내 일상의 큰 줄기를 변화시키는 건 아니라서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 물론 그때는 너무나 큰 고민이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좀 더 풍부하게 즐거워지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걸 한다는 옵션 말고는 없었던 거 같아. 결과적으로도 하고 싶은 걸 했다는 거 자체로 만족스러운 선택들이었고.


네 얘기를 해봐. 너도 큰 결심을 했잖아. 결혼을 하면서 일도 관두고 거주지도 바꾸고.


나: 같은 상황이 와도 같은 결정을 할 거라고 확신하는데, 나 역시 고민의 과정은 오리무중이야. 고민 중이라며 시간을 보냈지만 의식 속에서 특별히 한 일도 없어. 내 무의식이 열일하면서 결심을 강화했지.


너: 그만큼 확신 있던 거 아냐?


나: 그건 맞아. 분명 엄청 심각한데 뭘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어떤 생각을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어. 그래서 결론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끼워 맞췄지 뭐.


너: 그때의 너는 마침 정말 모든 것에서 터닝하길 바랐고, 그 모든 걸 한 방에 터닝할 결정을 한 게 아닐까?


나: 어디든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건데 모르는 길을 가지 않는 선택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한다, 뭐 그런 맘이었던 듯. 내 한 친구가 생각난다. 나보다 훨씬 일찍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결정할 때 든 마음이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니라 ‘안되면 이혼하지 뭐’였대. 너무 큰 일은 오히려 그런 어이없는 결심으로 진행되기도 해.


너: 나 역시 최근 10여 년 사이에 인생에서 여러 가지 터닝을 만들어냈는데 그 방향이 어디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회사를 관두기로 결정했을 때 회사가 지긋지긋해서 그랬던 건 아냐. 그 정도의 임금을 받는 생활에도 익숙했고. 그래도 분명 큰 터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아. 그런데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가지고는 있어.


나: 뭘 증명하고 싶어?


너: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게 나는 확실한데, 내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증거가 필요하달까?


나: 어떤 면에서? 수입?


너: 그때의 임금만큼 수입을 만들 순 없겠지만 적당한 수입을 만들면 좋겠지. 내가 아직 수입이나 명성 이런 걸로 증명하는 방법 밖에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도 좋겠어. 사실 잘 모르겠어.


나: 나는 왜 이렇게 글을 쏟아내는 걸까? 뭘 증명하고 싶을까?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런 방식은 수입도 명성도 얻을 수가 없는 걸.


너: 그래서 너도 다른 콘텐츠를 시도해 보려는 거 아닐까?


나: 나는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찐으로 관심 가졌으면 좋겠어. 그니까 개인인 나를 좀 깨보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게 뭔지, 소중하다는 게 뭔지 내가 좀 알았으면 좋겠어. 지금 그게 가장 큰 목표야.


너:... 그게 너의 아킬레스건이야?


나: 음 사실 그래. 내가 배우를 고민하던 시기에 어떻게 해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 나란 사람이 과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었거든. 그리고 내가 하고 싶다던 시나리오, 스토리 이런 것도 내가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좀 더 나와 사람들을 이해해야 내 상상의 나래가 풍부해지겠다, 싶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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