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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22. 2023

지금 스테이지는 다음 스테이지의 추진력일 뿐인가

넘어져도 쓰리-고

나: 어떤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 마무리 의식을 하잖아. 학생 때는 졸업식이었고 그다음엔 송별회? 잘 안 하나 요즘에는..


너: 나한테는 졸업은 중요했지만 졸업식이라는 건 큰 의미 없었어. 끝날 때 되서 끝나나 보다 그런 태도로 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지.


나: 당사자들도 그렇지만 거기 참여하는 부모들, 선생들, 학교 관계자들 등등 맘도 많이 뭉클할 거야. 관찰자 입장에서는 애들 참 고생했다 싶고 말이야.


너: 그렇지. 아이의 시간이 가는 걸 내가 체감하게 될 때마다 참 신비롭고 놀라워.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시간은 잘 안 가는 거 같은데. 아이도 자기 시간이 흐르는 걸 잘 체감하진 못하겠지.


나: 나는 그동안 스테이지를 마무리하는 데에 너무 무심했던 거 같아.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거 자체에 너무 큰 비중을 둬서 기존 스테이지는 늘 흐지부지 내버려 뒀어.


너: 마무리를 잘하는 건 뭘까? 내 아이들도 곧 크고 작은 마무리를 겪게 될 텐데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새로운 학년이 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테니 지금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걸 슬퍼하지 말아라? 음, 이상해 이상해. 그럼 충분히 슬퍼하라? 음, 나 왜 슬퍼하거나 슬퍼하지 말거나 두 옵션 중에서 자꾸 고르냐. 게다가 또 감정에 명령하는 표현을 썼네.


나: 초등학교 때 학년을 넘어갈 때마다 공일오비 ’이젠 안녕‘을 다 같이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거든. 노래에 심취해서인지 아니면 친구들과 헤어짐이 아쉬운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암튼 그런 감정적인 순간을 겪었어.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우는 친구를 놀리고, 또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거나 속 시원한 그런 순간들. 아,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롤링페이퍼.


너: 유치원 때는 졸업이 뭔지 잘 몰랐던 거 같아. 그때는 슬펐다는 기억이 딱히 없어.


나: 그 기억이 나?


너: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때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는 거 보면 강렬하진 않았던 거 같아. 초등학교 때는 나도 너랑 비슷한 장면들이 떠올라. 학년말로 갈수록 수업 분위기가 안 잡혔고 선생님이 자유시간을 주거나 몇몇 나오라 그래서 노래를 시켰어. 그러면 꼭 끝나기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군가가 이젠 안녕 류의 노래를 부르더라고! 그러면 다 같이 부르면서 강제로 수도꼭지 열림.


나: 그러니까. 슬퍼서만 우는 건 아닌데 우리는 그 순간들을 왜 슬프다고 표현할까. 생뚱맞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 쭈그려 앉아서 모래에 그림 그리고 놀다가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을 흥얼거리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나거든. 결혼식이나 몇 번 가봤겠어? 너의 결혼식이 의미하는 게 뭔지도 잘 몰랐을 텐데 그렇게 울컥울컥 했다니까. 슬픔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뭔진 모르겠네.


너: 이질감 어쩔. 모래에 그림이나 그리는 초등학생에게 너의 결혼식이 슬프다니. 하지만 그때의 나도 그랬지. 내 감성을 살짝만 자극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나: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잘한다는 건 뭘까. 중고등학교 과정이 대학 진학에 직접적인 매개가 되는 건 맞지만 그것 만을 위한 건 아니잖아. 만약 원하는 진학에 실패했다면, 새로운 스테이지 진입하는 데 초반에 삐걱거리겠지만 그걸 기존 스테이지 자체에 대한 실패라고 보는 게 맞는가, 그런 의문이 들어.


너: 졌잘싸, 중꺾맘 그런 거냐.


나: 연결고리의 문제인거지 해당 스테이지 자체를 뭉뚱그려 너무 쉽게 단정하는 거 아닌가. 원하는 길로 가면 지나온 스테이지가 미화되고 말이야.


너: 가시적인 성과로 판단하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나: 그렇겠지. ‘모두가 말하는’ 성공이라는 건 언제나 매우 좁잖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실패라고 단정 짓는 건 너무 실패자를 대거 양성하는 거 아니냐.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한 아쉬움을 인생에 대한 실패로 확대해도 괜찮나.


너: 스테이지 마무리를 그럼 어떻게 해. 다음 스테이지를 신경 쓰지 마?


나: 다음에 원하는 스테이지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언제나 큰 목표가 될 수는 있겠지. 근데 내가 지금 서있는 스테이지의 성공 여부를 반드시 '더 멋진 다음 스테이지로의 진입'으로 삼는 게 맞나.


너: 이 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에게 다른 방식이라는 게 있을까?


나: 예를 들어 해당 스테이지를 평가하는 기준을 ‘후련함’으로 잡는 건 어때? 다음 스테이지를 넘어갈 압박에 다들 얼마나 고생이야. 그래서 이번 스테이지를 마무리한다는 건 뭐 그 준비가 잘 됐든 못 됐든 압박을 벗는 거니까.


너: 그게 뭐야, 너무 이상적이야.


나: 전에 네가 애매하게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나쁜 결정이라도 결정이 된 상태 자체를 선호한다고 했던 거 기억나? 우리는 이제 결정의 성공과 실패뿐 아니라 결정 자체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내 인생을 뒤흔들 정도의 나쁜 결정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어떤 나쁜 결정은 되도록 빨리 보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


너: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네 말대로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어떤 스테이지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


나: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인생의 대부분은 깔끔한 끝맺음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한국 전통음악에도 열심히 놀고 끝맺은 다음에 풀어주는 가락이 반드시 있었대. 신명 나게 놀았으니 이제 돌아가자,는 걸 가락으로 굳이 연주했다는 거지. 기승전결 끝, 이 아니라 결 다음에 해 가 있어.


그 책에서는 후련함을 ‘맺혔던 것이 풀리고, 나를 답답하고 언짢게 하는 것들이 풀릴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설명해. 그 부분을 읽다 보니 경기의 승패에서 느끼는 감정만 들여다보다가, 어쨌든 경기를 마쳤다는 자체로 느끼는 후련함은 들여다보지 않았구나 싶더라. 그걸 들여다보는 걸 실패자의 자기 합리화라며 비하했던 것 같기도 하고. 성패에 독립적인 감정인데 말이야.


너: 그러게. 다음에는 이기리라 네 녀석들, 항상 이런 독기 어린 마음만 품고 있을 수도 없고, 경기라는 건 좋든 싫든 다가오게 마련이고. 후련함이 없다면 다음 경기 준비를 할 때 마음이 어떻겠어.


나: 그 후련함이라는 게 경기에서 대충 뛰었을 때 나오는 감정은 아니라는 게 재미있어.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느낄 수 있대.


너: 스테이지 마무리에서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 그걸 스테이지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나: 응. 경기를 이기는 것,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 이건 현 스테이지의 동기부여가 될 순 있겠지만 승패와 합격이라는 결과는 내 재량을 벗어나니까.


후련함은 개운하고, 상쾌하고, 시원한 감정이야. 우리도 무언가를 마무리할 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어? 근데 너무 성패에 집중하다가 그 감정을 못 본 거지. 그렇다고 성공이 무지 달콤하지도 않았는데 거기 중독됐어.


너: 중독보다는 성공 외 다른 걸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지 뭐.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제쳐두고 마무리는 후련함으로 하면 좋긴 하겠다. 실질적으로 지금과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무언가를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마음에 지배당하는 건 확실히 좋지 않은 것 같아.


나: 응. 사람들이 모두 입체적이라 여러 감정을 느끼는데 성패가 혼자 독식하는 거 같아서 해본 말이야.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며 과한 체중 감량을 목표로 삼는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 체중감량을 못해냈을 때 나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기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를 기억하며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에 또 과한 목표를 삼기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너: 어쩌면 성패에 집중하다 보니 더 실패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사실 ‘음.. 안 되겠는데’ 확신이 드는 순간이 생기고 중도에 이미 포기하고 방치해, 내 안팎으로 인정은 안 하지만. 그러면서 움직이지 않을 걸 알고 있는 내가 움직이지도 않는 나를 채찍질하면서 비난하며 내내 불편하고 짜증이 짜증이. 모든 사람에게 최선이라는 퀄리티가 같은 건 아니라는 걸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그거랑 비슷한 거 같아. 실패할 걸 알아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걸 진짜 중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은 거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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