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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29. 2023

고립되고 싶지 않고 고립하지 않았으면

고립, 하는 걸까 되는 걸까

나: 수다로 해결하고 싶은 걸 하나 찾았어.


너: 오.. 한동안 조용하더니-


나: 내가 하고 싶은 건 수다 능력 향상이 아니라 관계 개선(?)이라고 계속 말해왔잖아?


너: 그랬지.


나: 사람들이 고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고립한다고? 마치 선택인 것처럼 들리는데?


나: 그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외로워서 앞으로 다들 어쩌지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나, 오월은 지금껏 외로움 자체에 문제를 삼아본 적이 거의 단 한 번도 없거든, 그건 확실해. 해결하고 싶은 게 외로움이라면, 나는 애초에 그걸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면서 꼬인 거지.


너: 나는 타인을 통해 내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다거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외로움, 고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지도 오래됐거든. 그래서 네 얘기를 들을 때 한편으로 부담스러웠다고!


나: 야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설명을 깔끔하게 못하고 있잖아, 어떤 걸 문제라고 인지는 하는데 '왜'가 계속 안 풀리는 거지. 그래도 여전히 그 상황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 외로움, 고독만 떠오르니 고민의 대상이 아닌 걸 고민해야 한다고 여겨서 거리가 생겼던 거 같더라고.


아무래도 나는, 고립되고 싶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음.. 음..?! 그래서 네가 계속 물리적인 조건을 빼놓지 못하나 보다. 이제 이해가 되네.


나: 나야말로. 내가 해결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고립이야.


너: 그래서 지금의 관계들이 더 가까워졌으면 싶으면서도 물리적 기반이 없는 관계에 한계를 느낀 거구나. 자꾸 어머님 얘기를 한 것도 그렇고.


나: 응 맞아. 엄마의 관계들을 바라진 않지만 물리적 환경이 충족되어야만 나오는 부분을 버릴 수 없어.


너: 그 멀리서... 아무것도 해결 못하겠는데?


나: 주말에 우연과 상상을 봤어. 인물들이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예상치 못한 경험들을 하게 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과거를 새롭게 받아들이기도 해. 그 영화에 아주아 어퍼컷을 맞았어. 지금의 관계와 더 가까워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고립하지, 고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 더 큰 목표인 것 같아.


너: 친한 친구가, '어느 날 네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없던 사람이 돼버리는 거지, 자연스럽게.'라고 한 적이 있어.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얘 왜 이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너무 그럴 것 같은 거야.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매일 보다가 이제는 점점 더 작정해야 만날 수 있잖아. 관계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라지는데, 그 친구에게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달까.


나: 물리적 거리가 이렇게 위험하다니까!


너: 어쩔 수 없지, 꼭 붙어 있을 수도 없고.


나: 영화를 보면 우연 역시도 물리적 충돌로 만들어져.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서 타인이 들어올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나를 생각하게 됐고, 나에게 우연이 다가왔을 때 내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더라. 그리고, 나는 매우 누군가의 우연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 네가 요즘 오빠랑 같이 일하는 얘기를 해줬잖아. 일로써 오빠를 대하다 보니 정말 신선했다며. 그 얘기가 인상적이었어. 우리가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환경 때문이기도 하겠다 싶더라. 아무래도 우리는 정말 한정적인 모습만 보이고 보게 되니까.


나: 맞아. 오빠를 감정에서 자유롭게 대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진짜 업무 얘기만 하니까 그 건조함이 좋더라. 오빠가 가족 밖에서도 존재한다는 걸 처음 체감했어. 그래가녀장의 시대에서 역할을 비튼 게 인기가 많았나 봐.


너: 그랬을 수도. 우리는 서로를 관찰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 단편적 이미지 고착화에 조심해야 할 것 같아. 관찰자로서 말이야.


나: 이건 상황이 다르지만, 몇 년 전에 시댁 조카 결혼식이 있었는데 시어머님이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거야. 거동이 불편하셔서 못 나가기 작하면서 사람들을 오래 못 봤거든. 어머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늙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가' 깰 것 같다고 생각하셨나 봐. 남편이 어머님 말씀을 듣고 이해한다며 원치 않으시면 집에 계시라고 했어.


너: 아이고, 이해는 되지만 그때 아니면 다들 언제 보나 싶기도 하네.


나: 그 나이 든 여인을 보면서 '좋은 시절 다 갔네, 망했어' 그러겠어? 나는 다들 어머님을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도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하니까 집에 계시기로 했어.


너: 그래서 결국 안 가셨어?


나: 우리는 먼저 나갔고, 다른 친척분이 어머님을 설득해서 모시고 식장에 왔어. 우려와는 완전히 다르게 다들 무지무지 반가워했고 사람들 만나는 걸 엄청 좋아하는 어머님도 오랜만에 신나셨지.


너: 잘됐네!


나: 고립하기 시작하는 건 그런 작지만 큰 순간들인 것 같아. 대답을 안 하기로, 전화를 안 받기로, 내 얘기를 안 하기로, 모임에 안 나가기로, 더 이상 사람들을 안 만나기로 결정하는 순간들. 그러다가 정말 고립 돼버리는 거지. 모두에게 이 순간은 오겠지. 누군가에게남들보다 일찍 다가올 테고.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면 그 순간을 좀 더 지연시킬 수 있으려나? 그런 순간들만 쌓이지 말고, 어떤 우연으로 예상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들도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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