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May 23. 2023

슬램덩크를 2번 본 이유

나의 영광의 순간은 현재진행형

 올해 슬램덩크 극장판이 개봉했다. 90년대 남학생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만화 슬램덩크의 유명한 산왕전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현된 것이다. 추억의 작품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작품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결국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타게 되어 슬램덩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친구가 보자고 해서 별생각 없이 보러 갔다. 사실 슬램덩크에 강백호라는 인물이 나온다는 사실과 농구 만화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 외 정보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 영화를 볼 때 송태섭의 어린 시절을 보며 '뭐지?' 싶었다. 송태섭이 누군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북산의 선수들이 한 명씩 스케치되며 살아 움직이는 장면이 오프닝으로 나왔다. 베이스로 시작해 드럼, 기타, 그리고 보컬까지 순서대로 나오는 OST와 오프닝 장면은 찰떡이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두근거림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케치된 빡빡이들(그때는 산왕 선수들인 줄 몰랐다. 악당인 줄 알았다.)이 나와 상대편 선수들을 마주 보고 있을 때, 깨달았다. 저 두 팀이 경기하는 거구나!


 영화는 송태섭의 어린 시절과 북산-산왕의 경기가 교차되며 진행되었다. 송태섭은 사랑하는 형을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집단 구타를 받기도 하고, 농구부 선배들한테 문제아 취급을 받기도 하며, 헬멧도 제대로 안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해 장기 입원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농구부에 복귀를 했고, 포인트가드로서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다. 형에게 받았던 가르침인 '쫄지 말기'를 톡톡히 써먹으며 무시무시한 빡빡이 선수들을 제치고 뚫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인공 버프를 제대로 받은 송태섭을 보며 나의 원픽은 송태섭이 되었다.


 영화의 명장면을 꼽자면, 마지막에 숨 막히는 정적의 순간과 정적을 깨는 하이파이브 소리가 나아닐까 싶다. 처음 영화를 관람했을 때, 영화관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적의 순간은 꽤 길었고 잡음이 들릴 법도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모두 팝콘도 씹지 않고 있었다. 나에게 들리는 소리는 내가 삼키는 침 소리뿐이었다. 사실 나는 북산-산왕 경기의 결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 마지막 공이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요새 하도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는 영화가 많아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에 땀이 나는 채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정적의 순간을 지켜보았고, 마지막에 하이파이브를 칠 때 깨달았다. 아, 내가 인터넷에서 짤로 보았던 장면이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영화에 대해서 아쉬운 건 없었고, 나 자신에게 아쉬운 것들이었다. 1. 농구 게임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었다. 몇 명의 선수가 뛰는지, 어떤 상황에 파울이 일어나는지, 포인트 가드는 무슨 포지션인지 등 기초적인 것들도 몰랐다. 2. 슬램덩크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다. 각 선수들의 포지션이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또, 빡빡이들의 얼굴이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무서운 빡빡이들이었다. 정우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기억나는 산왕 인물은 하루종일 한쪽 무릎 꿇고 앉아있던 도감독이었다.


 물론 좋은 점도 하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영화를 보게 되어서, 북산의 승리를 나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영화 관람객이 아닌, 북산-산왕 경기의 관객이었다. (물론 북산을 응원하는 팬 포지션이다.) 하지만, 놓친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무작정 다시 보면 도움이 안 될 테니, 공부를 하고 보기로 했다. 농구의 기본적인 지식과 슬램덩크의 스토리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주일 동안 나만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1. 포지션 공부를 하였다. 1번은 포인트가드, 2번은 스윙가드, 3번은 스몰포워드, 4번은 파워포워드, 5번은 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 포지션의 주요 역할과 필요한 능력도 알게 되었다. 요새 농구 선수들은 여러 포지션을 섞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2. 농구 코트 용어를 공부하였다. 링이 아니라 림이라는 사실도 부끄럽지만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라인의 의미와 페인트 존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3. 파울의 종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백호가 받았던 워킹 파울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았다. N초 룰, 블로킹할 때 주의 사항, 드리블할 때의 주의사항, 경기장 밖을 나간 공의 소유권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4. 매일 퇴근 후 만화카페로 달려가 슬램덩크 책을 읽으며, 스토리를 공부하였다. 농구부 최후의 날을 보며 정대만이 그 유명한 '농구가 하고 싶어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달재, 준호선배, 능남선수들, 해남부속선수들, 풍전선수들도 알게 되었다. 5. 산왕의 선수들을 공부하였다. 이제 나는 그들을 빡빡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6. 영화 관람 포인트를 공부하였다. 채치수와 하이파이브하고 손에서 불이나고 있는 강백호의 손, 정대만이 농구부에 복귀하는 장면에서 한나 옆에서 드리블 연습하고 있는 강백호, 관객석에서 구경하고 있는 다른 학교 선수들의 유니폼 등을 확인하였다. 7. 마지막으로, 영화의 OST를 공부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일주일 내내 들었다. 10 Feet의 노래들과 LOVE ROCKETS을 계속 들었고, 어떤 장면을 위한 노래인지 공부하였다. 일본어도 모르면서 가사 해석 본을 보며, 영화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알게 되었다.


 특훈이 끝나고 2차 관람을 하였다. 어린 시절의 태섭이는 역시나 너무 안타까웠다. 오프닝은 다시 봐도 폭풍간지였다. LOVE ROCKETS의 리듬에 맞추어 한 명씩 완성되어 걸어가는 선수들을 보며 심장이 '바크바크'거렸다. 좀비가 된 대만이가 본능적인 폼으로 3점 슛을 넣는 장면, 치수가 (변덕규는 나오지 않았지만) 각성하는 장면, 본인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며 소리 지르는 백호, 허를 찌르는 패스로 산왕을 당황시킨 태웅이, 그리고 주장대신 파이팅을 외치는 태섭이까지 장면 장면이 모두 감동적이었다. 이 외에도 태섭이에게 용기를 준 한나,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주는 안감독님, 불꽃남자를 외치는 영걸이와 진심으로 응원하는 소연이, 그리고 자신의 기를 백호에게 나누어주며 끝까지 응원해 주는 대기 선수들까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 관심이 없었던 우리의 빡빡이들도 응원하였다. 마지막에 오열하는 우성이를 보며,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경기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우리의 선수들이 너무 멋있었다. 두 번째 관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못 본 장면들과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며 1차 관람 때보다 몰입하며 보았다.


 요새 나는 지쳐있었다. 꿈도 없어진 지 오래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이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고통과 성장의 계단은 무한히 있었다. 도전해야 하는 순간은 무수히 많이 만났고, 그 과정에서 실패의 쓴 맛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안주하고 있으면, 도태될 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도전하고 공부하기에는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슬램덩크를 보며, 없어진 줄 알았던 고등학생 때 가지고 있었던 나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항상 도전했었고, 그 과정이 힘들고 무섭고 긴장되었지만 일단은 해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이다.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슬램덩크를 통해 나는 '용기'와 '열정'을 다시 느꼈다. 백호가 맞았다. 영광의 순간은 지금이다. 나의 영광의 순간은 현재진행형일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역행자"를 읽고, 나도 역행자가 되기로 했다.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