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May 12. 2021

(취업스토리3) 지옥의 스케줄을 견뎌내고 얻은 것

운이었다고? 천만에

 데이터 분석으로 진로 방향을 정했다 하더라도, 뽑아주는 곳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회사들이 나를 뽑고 싶게 만들어야 했다. 대학원 진로만 신경 쓰느라, 그동안 내가 쌓은 스펙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스펙이라고는 졸업 점수에 맞춘 토익 점수와 데이터 분석과는 거리가 먼 대외활동과 봉사활동뿐이었다. 스터디를 통해 데이터 분석 공부를 했지만, 성과를 보여줄 것이 없었다. 첫 취업준비 당시 서울시청 프로젝트는 아직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의 원하는 직무로 취업하였다. 운이었다고? 천만에.

 18년, 3월. 상반기 취업 시즌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취업 준비였다. 먼저,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채용 공고를 찾아보았다. 은행의 디지털 직군과 대기업의 IT 직군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해당 직군의 지원자격을 보니 높은 영어점수가 필요했고, 우대사항을 보니 정보처리기사나 ADP, SQLD와 같은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자격증들이 있었다. 그다음엔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았다. 경력, 대외활동 경험, 수상내역 등을 적는 항목이 있었다. 직무를 위해 했던 경험이나 내가 해당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이유를 적는 항목도 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망했다."

 나는 높은 영어점수도 없고, 관련된 자격증도 없고, 관련된 경험도 없었다. 망해도 어쩌겠는가. 일단 지원은 해야 했기에, 지원자격을 맞추어야 했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지원자격을 맞추기 위해 영어시험을 준비했다. 어떤 극한 상황이 생겨도 토익 시험을 잘 보겠다는 의지로, 시끄러운 카페에서 토익 모의시험을 풀며 공부했다. 소음이 가득하던 곳에서 2주 동안 매일 2 회차씩 풀었더니, 원래 가지고 있던 토익 점수보다 150점이 올랐다. 토익스피킹도 준비해야 했다. 유튜브를 보며, 문제 유형을 익히고 여러 가지 꿀팁을 알아냈다. Level 6이라는 처음치고 나쁘지 않은 점수를 얻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지원동기와 앞으로의 포부를 적어야 했다. 천문학 전공자가 데이터 분석가를 꿈꾸게 된 스토리를 작성했다. 지원하는 회사의 인재상과 주요 사업을 분석해서 앞으로의 포부도 작성했다. 큰 문제는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적는 항목이었다. 학부 시절 진행했던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 대학원을 그만두고 수강했던 빅데이터 특강, 그리고 두 달 동안 했던 스터디를 가지고 대단한 경험을 한 것처럼 포장해서 한 편의 소설을 적었다.

 18년, 4월. 서류전형 기간이 끝나고, 줄줄이 탈락 결과 통보를 받았지만, 그중 몇 군데는 합격했다. 이제  인적성 전형을 준비했다. 매일 아침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인적성 문제집을 풀었다. 함께 공부할 사람을 구해서 같이 스터디도 했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도 함께 준비했다. 우대사항에 있던 자격증이기도 했고, 필기시험에 정보처리기사 내용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인적성 전형은 두 곳을 합격했고, 정보처리기사 필기시험도 통과했다. 18년, 5월. 이제 최종 합격까지 남은 것은 면접전형이었다. 취업 카페에서 면접 스터디를 구하는 글을 올렸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의 면접을 진행하며 서로 첨삭해주었다. 18년, 6월 초. 면접관의 질문에 대해 더듬거리며 대답했던 면접이 모두 끝났고, 결과를 기다렸다.

 18년, 6월 말. 취업 준비를 하면서 서울시청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에, 면접을 보았던 두 곳 중 한 곳의 결과가 떴다는 문자를 받았다.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집에서 TV를 보던 중에 등골이 오싹해져서 남은 한 곳의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결과가 나왔다고 하길래 확인해보았다. 또 불합격이었다. 몹시 우울하고 심란해져서,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았다. 왜 불합격했는지 분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하반기 취업 시즌을 바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불합격한 이유에 대해서 고민한 뒤, 수상내역이나 자격증과 같은 스펙이 부족하고 관련된 경험이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음 행동으로 넘어갔다. 정보처리기사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대외활동과 공모전을 검색하고 지원했다. 2개월짜리 빅데이터 국비 교육도 신청했다. 처음부터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면접 스터디를 함께 했던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그 사람도 불합격했다고 하길래, 함께 하반기 취업 준비를 하기로 했다. 하반기 취업을 위한 지옥의 스케줄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18년, 7월. 국비 교육이 시작되었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을 들었다. 교육이 끝나면, 지원했었던 공모전을 준비했다. 당시에 준비했던 공모전은 하나, 두 개가 아닌 다섯 개였다. 웹 제작 공모전, 데이터 분석 시각화 관련 공모전, 서울시청 프로젝트, 그리고 예측 관련 공모전 2개를 준비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공모전 회의를 하고,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그다음 공모전 회의를 하고, 오후 10시부터 12시까지는 그다음 공모전, 다음날 새벽 12시부터 2시까지는 또 다음 공모전 회의를 했다. 어떨 때는 새벽 4시까지 공모전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오전 8시에 다시 국비 교육을 받으러 갔다. 틈틈이 대외활동도 했다. 기자단 활동으로 매월 2개씩 기사를 작성했고, 교육 봉사단을 활동으로 격주로 수업을 하러 서울과 경기도를 누볐다. 인공지능 스타트업의 서포터즈 활동으로 매주 콘텐츠 제작했다.  주말에는 흑석역 근처에서 진행하는 데이터 분석 스터디를 한 다음에, 왕십리역이나 가산디지털역에 가서 취업 스터디를 했다. 또,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정보처리기사 실기를 공부하고 ADsP라는 데이터 분석 자격증을 공부했다.. 지옥의 스케줄 덕에, 잠을 못 자서 내 얼굴은 점점 까매졌고 밥을 못 먹어서 말라갔다.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을 할 때, 딸내미가 극한 스케줄로 인해 피로도가 너무 많이 쌓여 사망해버리는 엔딩을 몸소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18년, 9월. 하반기 취업 시즌이 시작되었다. 두 달 동안의 지옥의 스케줄을 행한 덕에 자소서에 쓸 말이 많아졌다. 자격증 항목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과 ADsP 자격증을 추가했고, 수상내역에 웹 제작 공모전을 추가했다.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적는 항목에 대한 답변도 내용이 풍부해졌다. 그동안 했던 모든 활동들의 진행 과정과 결과물, 그리고 향상된 역량들을 정리하여 작성했다. 18년, 10월. 여러 곳으로부터 서류전형 합격소식을 받아 인적성 전형과 면접전형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도중에, 한 IT 기업에 최종 합격을 해서 입사했다.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었다. 18년, 11월 초. 아프다는 핑계로 연차를 내고,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사실, 상반기 때 면접을 보았던 두 곳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상반기 때와는 다르게 자신 있고 편하게 면접을 보았다. 느낌이 좋았다.

 18년, 11월 말,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최종 합격의 기쁨은 너무 기뻐서 도파민이 솟구쳤다. 다니고 있던 회사를 바로 퇴사하고, 그동안 힘들었던 취업 준비에 대한 보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맥주를 마시며 여행지의 야경을 보던 중, 사색에 잠겼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운이 좋았던 게 아니다. 지옥의 스케줄을 견뎌내고 얻은 결과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천문학 전공인 내가 1년 만에 취업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운만 좋았다면, 내가 원하는 회사의 원하는 직무에 취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답할 수 있다. "운이었다고? 천만에.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거야."

작가의 이전글 (취업스토리2)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찾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