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스토리4) 한 달만에 퇴사하고 싶어 졌다.
회사 밖에서 이직 준비하기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 취업했다. 그곳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내 최고 대기업이다. 그런 곳에 원하는 직군이었던 SW 개발 직군으로 입사하였다. 입사하였을 때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연봉과 복지도 궁금했지만, 어떤 곳에 배치될지와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가 가장 궁금했다. 배치받기 전에, 어떤 파트들이 있고 어떠한 업무를 하고 있는지 파트 소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가고 싶은 파트가 있으면 열심히 필기를 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상상을 했다. 파트 소개 교육이 끝나고 어떤 곳을 가고 싶은지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사유와 함께 지망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해왔던 프로젝트 경험, 취득한 자격증, 그리고 가고 싶은 사유까지 빽빽하게 작성했다.
파트를 배치받기 전에 약 3개월 동안 회사에서 지원하는 SW교육을 받았다. SW 개발을 위해 필요한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언어, 리눅스, 데이터베이스, 웹 개발 등을 배웠다. 교육을 받으면서 실제로 업무에 어떻게 쓰게 될지 궁금했고, 업무에 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다. 아직 배치를 받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교육 성적이 좋으면 내가 지망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변에서 말해주었다.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썼던 곳에 꼭 가고 싶은 생각에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고, 반에서 2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
원하는 파트로 배치받기 위해 회사의 SW 개발 직군을 위한 SW 자격시험을 합격했다. 회사의 SW 자격시험은 알고리즘 시험인데, 통계적으로 7번 만에 합격하는 시험인 만큼 난이도가 꽤 있는 시험이다. 단순히 구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메모리와 시간 최적화가 중요하고, 문제를 많이 풀어보아야 실력이 늘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가서 알고리즘 문제를 풀며 공부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구현을 하지 못해 떨어졌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구현은 하였으나 메모리 최적화를 하지 못해 떨어졌다. 드디어 세 번째 시험에서 구현과 최적화까지 모두 하여 합격했다. 그 어렵다는 시험을 교육 기간 동안, 3번 만에 합격했다.
SW교육을 2등이라는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SW 자격시험까지 합격하였다. 내가 지망했던 파트 중 한 곳에 당연히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망의 파트 배치 결과 날이 왔다. 인사팀이 동기들에게 한 명씩 어디로 배치되었는지 알려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결과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가 지망하지도 않았던 곳에 배치되었다. 그곳은 파트 소개 교육을 받을 때 SW 개발 직군이 없는 곳이라고 했던 곳이다. 왜 그곳에 배치되었는지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당황한 상태로 배치된 파트로 가서 인사를 했다. 파트 사람들에게 SW 개발 직군이라고 소개하자, 여기에 왜 SW 개발 직군이 왔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인사팀에서 나를 지망하지도 않았던 이곳으로 보냈는데.
파트 소개 자료 문서를 보며 어떤 파트인지 탐색을 시작했다. 문서에 SW 개발 직군은 필요가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1차 멘붕이 왔다. 같이 일하게 된 선배에게 SW 개발을 하고 싶어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돌아온 선배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여기는 개발하는 곳이 아니야." 2차 멘붕이 왔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나는 SW 개발 직군인데, 왜 SW 개발 직군이 필요 없고 SW 개발을 하지 않는 파트로 배치되었는지 의문이었다. SW 개발을 하면서 나의 커리어를 쌓고 싶었는데, 첫 단추부터 끼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를 배치받은 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퇴사하고 싶었다.
직군과 업무에 대한 괴리감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결국 6개월 만에 인사팀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SW 개발 직군인데 왜 이곳으로 배정받았는지 궁금하고 SW 개발 직군으로서 이 파트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사팀의 답변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버텨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 사람과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겠다 싶었다. 실망만 가득 남긴 채 면담이 끝났다. 나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회사가 싫어져 버렸다. 회사로부터 버려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회사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마침 취업 준비를 위한 죽음의 스케줄을 최근에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공모전, 프로젝트와 자격증 준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회는 또 찾아왔고 나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당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로부터 코로나 데이터베이스를 함께 구축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고, 당연히 수락했다. 또, 공모전 사이트에서 오픈소스 컨트리뷰톤이라는 공모전을 발견해서 바로 지원하였다. 오픈소스 컨트리뷰트는 개발자에게 중요한 커리어 중 하나였으므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지원서가 통과하여, 텐서플로우와 관련된 오픈소스 공모전을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최고로 인정해주는 ADP라는 데이터 분석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합격률이 1% 미만으로 극악의 난이도라고는 하지만, 나는 이직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 자격증이 너무 탐났다.
퇴근을 하면 취준생 때의 나로 돌아갔다. 어떤 날에는 코로나 데이터를 수집해서 정제하는 작업을 했다. 또 다른 날에는 오픈소스 컨트리뷰톤 회의에 참석한 뒤에, 기존의 텐서플로우 모델을 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에 맞게 수정하기 위해, 코드를 분석하고 에러를 잡아내며 모델을 돌렸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 책을 펼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고 나면 졸음이 몰려왔다. 아쉬워서 잠을 깨고 더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일하면서 졸 수는 없으니 자야 했다. 새벽 6시 반에 기상하고 출근했다. 회사에서는 아직 흥미를 붙이지 못한 SW 개발이 아닌 일들을 하며 또다시 이직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집에 가서는 다시 공모전과 프로젝트를 하거나 공부를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우리가 구축한 코로나 데이터베이스(DS4C)는 Kaggle이라는 곳으로 배포하였고, 곧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곳곳에서 연구자료로 사용하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우리의 데이터를 사용한 논문이 발표되었고, 데이터 바우처 사업도 통과하여 더 정밀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할 수 있었다. 오픈소스 컨트리뷰톤 공모전도 잘 마무리되었다. 텐서플로우 라이트 모델을 사용하여 시각장애인을 위한 알람 앱 데모를 개발하여 유즈케이스를 git에 올림으로써 오픈소스에 기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ADP 자격증도 실기까지 최종 합격하여 데이터 분석 전문가 자격을 보유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1년간 나름의 스펙을 쌓은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러한 것들을 할 의지가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회사에 대한 실망감이다. 회사로부터 버려졌다는 실망감이 나를 끊임없이 공부하도록 부채질해주었다. 덕분에 대기업에 다닌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또 다른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아직 이직을 하지는 못했지만, 회사에 대한 실망감을 원유로 삼아 올해에도 이직을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