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냄새가 그리워 그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이라는 아득하고도 뭉클한, 달지만 꽉 막힌 듯한 고구마를 먹은 느낌일 것이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
88올림픽이 개최된 그해 나는 입학을 했고 대한민국 곳곳에 호돌이가 메달을 목에 걸고 있었던 그때 부모님은 호돌이의 기운을 등에 업고 호돌이 분식점을 개업했다
3층 건물 중 1층인 분식점은 가게에 딸린 방 한칸에 창고로 쓰는 다락방이 있었다. 화장실은 건물 화장실을 공동 사용했고 샤워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게 안 구석의 시멘트로 된, 문도 없는 키가 작은 수도꼭지 하나뿐이었다
겨울이면 물을 데워 찬물과 섞어 샤워를 하고 나왔고 지금처럼 편하게 샤워기로 머리를 감았던 게 아니라 쪼그려 앉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머리를 감았다
어느 날 아빠가 그곳을 하우스 비닐 같은 것으로 감추긴 했지만 그곳에서 세수를 할 때마다 어느 한구석에서 까만 두 눈동자가 수염을 달달 떨며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는 것 같아 비누 칠도 안 한채 공포의 세수를 하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나 급하게 들어갔으면 신고 있던 슬리퍼는 공중부양을 해서 수돗가에 하나 방안으로 하나가 날아 들어온 적도 여러 번이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분식점을 열고 올림픽이 개최되자 전성기를 맞이하며 불티가 난 호돌이 분식은 핫도그, 국수, 튀김, 만두 그야말로 다양한 메뉴로 올림픽과 함께 매일 매출을 갱신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바쁜 부모님은 동생과 나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분식점의 매출과 나의 받아쓰기 실력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나에겐 한살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다
한 살 차이다 보니 어릴 적부터 전투가 시작되면 몇 시간이고 연장전을 이어갔고 울며 엄마에게 달려가 고자질을 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는, 여덟 살짜리가 할수 있는 가장 논리적인 설명에도 나는 패자였다
동생을 울리는 양보심도 없는 누나로 한번 혼나고 가게 바쁜데 정신없게 한다고 두 번 혼났다
엄마의 허리 뒤에 묶여 있는 앞치마 끈을 잡으며 뒤돌아서서 나의 눈치를 힐끗 보는 남동생은 천하의 못된 놈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동생은 방에서 혼자 딱지를 접어 1인 2역을 하고 있었고 나를 보자 가늘게 실눈을 뜨며 아주 살갑게 대했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친해지자는 방식이었을 테다
자신이 만든 딱지를 줄 테니 같이 놀자며 친근하게 다가와 먼저 골라 보라며 내 마음을 노리고 선수를 친다
유치원도 가지 못하고 혼자 분식점 방에서 놀다 재미가 없어질 때쯤 구원자가 온 것이다
딱지는 쫙쫙 붙는 맛이 있어야 하기에 방바닥에 깔아둔 이불을 다 치우고 양말을 벗고 경기에 임할 준비를 갖춘다
공책의 표지면을 찢어 만든 메칸더V 그림의 딱지, 신문지로 만든 딱지, 어느 한약방의 달력을 찟어 만든 딱지를 우리는 발로 납작하게 밟아 대며 자신의 것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게임의 룰은 5판 3승, 연장전 3판 2승의 룰을 따랐는데 누가 정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첫판부터 질수 없기에 단단하고 얇게 잘 다져진 달력 딱지를 첫 패로 나는 꺼냈고 동생은 신문지로 만든 딱지를 꺼냈다
자 이제 가위바위보로 선을 결정할 차례가 왔다
여기서 이긴 사람은 딱지를 먼저 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고 진 사람이 먼저 바닥에 딱지를 깔아야 한다
가위. 바위. 보
동생에게 선을 넘겨 주었다
잠깐. 나는 딱지를 있는 힘을 다해 납작하게 잘 넘어가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다졌다
자. 이제 시작
그럼 그렇지. 한 번에 넘어갈 일이 없잖아
이제 내 차례. 이겨 보겠다고 쓸데없이 동생에게 멀찍이 서라며 괜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딱지치기는 손의 힘이 아닌 손목 스냅을 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쯤은 동네에서 익히 들어왔다
신문지 딱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달력 딱지는 요란한 소리만 내다 혼자 뒤집힌다
한판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표정으로 신문지 딱지는 달력 딱지의 각도와 몸 상태를 체크한 뒤 순식간에 승부를 내버린다
달력 딱지를 상자 속으로 바로 챙겨 넣는 모습에 오기가 발동이고 초반부터 나의 비위를 거스르며 부화를 돋군다
그것은 동생이 가장 자신 있는 상대의 멘탈을 흔들리게 하는 수법이었다
알면서도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나는 신문지 딱지를, 동생은 메칸더V딱지를 꺼내 들었고 신문지 딱지가 바닥에 깔려야 한다
동생의 딱지가 두꺼워 납작하게 눌러지지 않아 넘어가지 쉽게 보여 이번 판에는 승리의 예감이 들었다
투박한 소리를 내며 메칸더V 딱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떨어졌고 자신 있게 내려쳐진 신문지 딱지는 메칸더V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번을 서로 반복하다 메칸더V 딱지가 신문지 딱지 옆에 신기하게도 세워진 것이다
이것은 동생이 친 것이기에 자살골 같은 것이었다
윷놀이를 해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윷가락이 반만 비스듬히 세워져 어느 면이 맞는지 옥신각신하게 되는 그 장면 말이다
서로 두 눈을 부라리고 홍시처럼 익은 서로의 얼굴에 대고 침을 튀기며 우겨대기를 시작하면 결국 몸싸움으로 이어진다
한 살 아래인 남동생은 덩치나 키나 나보다 더 우월했기엔 나는 결국 나가떨어지고 만다
몸싸움에서 진 것은 결국 승패를 결정짓고 게임은 끝이난다
우리의 놀이의 시작은 서로에게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처참한 전쟁으로 끝을 맺고 원수 같은 존재로 며칠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말이다. 30년도 훨씬 지난 그곳을 몇 주전 지나가게 되었다
호돌이 분식 자리는 미용실이 생겼고 건물의 생김새도 바뀌었지만 그 앞에서 튀김 냄새가 났다. 엄마가, 아빠가 빠른 손놀림으로 튀기던 고추튀김, 오징어튀김 냄새가 머리까지 배겨들어 가물가물 거리던 지난 일들이 선명해진다
남동생이 노상방뇨를 하던 골목은 큰 도로가 생겼고 잡다한 전단지가 붙었던 전봇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전봇대는 우리가 숨바꼭질을 하며 손때가 묻고 씹던 껌을 부쳐둔 거인 같은 것이었는데 어디로 가버린 걸까.
단 5분, 바라본 그곳은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달라진 하나의 흐려진 점 같은 일들도 내면의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잊고 산다
그런 것들은 꼭 갑자기 툭 튀어나와 놀래기도, 헛웃음을 짓기도 아련해지기도 하는 흐릿하지만 아주 강렬하게 작용한다
그 점에 모여 지금이 있는 것을 망각하며 사는 것이
편해서일까.
나이가 들어감에 옛 기억이 하나씩 사라진다. 현재의 기억을 더 기억하고자 지난 것이 흐려지는 것일까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가는 것처럼 옛 기억은 찾아려 애써야 선명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