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로 준 비밀이야기>

by 로리



얼마 전, 10년을 미뤄온 라식 상담을 위해 안과를 갔다. 출산 후, 라식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10년이나 지난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미뤄온 라식을 지금에서야 마음을 먹은 건, 안경 받침대가 몇십 년을 누르고 있었던 자국은 코 양쪽으로 깊이 각인되었다는 점과 운동을 할 때 안경은 땀에 밀려 내려와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한 채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연예인들도 받는다는 스마일 라식이라는 최신식 시술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안경을 쓴지 31년, 렌즈를 사용한지도 28년이 넘었다.

태어나서 제 눈으로 선명하게 세상을 본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안경이라는 도구에 의지해 살았던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안구건조증이 심해 렌즈 착용도 거의 포기한 채 안경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아마도 안경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나는 안갯속에서 사는 것과 같았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 역시 한 치 앞도 모르는 채 부딪히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발명한 것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현대인들의 도구일 것이다




내가 시력이 나빠진 이유는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의 빨간색 안경테가 너무도 예뻐서 빌려 썼던 것이 화근이었다

심지어 빨간색 안경을 쓴 친구가 너무도 예뻐 보였고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친구의 빨간색 안경을 여러 차례 빌려 썼더니 드디어 눈앞이 희끄무레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의 작전이었다

눈 나빠지기에 성공을 하고 엄마와 안경을 맞추러 갔다. 친구랑 비슷한 빨간색 안경테를 골랐고 안경 알이 끼워지고 안경이 얼굴에 장착되는 순간, 그 기쁨은 나중에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함께 간 남편에게 안과 대기실에서 떨린다는 둥, 당분간 선글라스를 껴야 된다는 둥, 후유증으로 빛 번짐이 있을 수 있다는 둥 귀동냥으로 들은 말들을 죄다 쏟아 내고 있었다




나의 이름이 불리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미리부터 시술 날짜 몇 개를 뽑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담당 원장님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원장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기분이 쎄하게 다가왔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마음이.

그러던중, 원장님은 노안이 진행되고 있다며 시술이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노안이라니....무슨 노안....나 아직 젊은데....’

노안이라는 말이 메아리 바뀌어 고막 끝까지 울려 퍼졌다

노안이라는 두 글자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나이를 실감하게 만든 순간,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 순간, 부정해 봐야 아무 소용 없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30대부터 노안이 많이 온다는 원장님 말도, 사람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기분으로 늙는다는 어떤 이의 말이 하나도 희망적이지 않았다

신발에 껌이 붙었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제 죽을 때까지 안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10년 전에 갈 걸 하며 후회가 되기도 하고, 친구 안경을 빌려 쓴 철딱서니 없던 내게 화가 났다





학교를 마치고 들어오는 아이에게 대뜸 ‘친구 안경 빌려 쓰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얼마 전, 아이가 안경 쓰고 싶다는 말이 기가 막히게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불편한 점, 안 좋은 점만 수십 가지를 나열하며 잔소리를 쏟아내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다

문득, 30년전 나를 떠올리니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엄마를 속인 일을 지금이라도 밝히며 죄송한 마음을전한다

웃지 못할 어느날의 헤프닝이 어쩌면 엄마에게 주는 나의 비밀선물일 것이다



엄마, 그때 친구 안경 빌려써서 눈이 나빠 진거야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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