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랜드의 추억
สวัสดีค่ะ "싸와디-카"
나는 태국을 사랑한다.
두 손 모으고 나긋나긋 인사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바가지를 씌워도 간이 작아서 쪼끔 붙여서 흥정하는 그 착한 소심함을 사랑한다. 땡볕에 3 모작을 해도 꼭두새벽부터 온 동네 사람들이 단합해서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추수를 돕는 부지런함과 합동심에 놀란다.
오토바이 뒤에 앉아 흙먼지를 부웅-날려도 오래전 그 옛날 어린 시절 70년대 배경으로 돌아간 것 같은 그 불편했던 정겨움 같은 것이 있어서 괜히 마음에 여유와 자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편리하고 익숙해도, 알 수 없이 삭막하고 마음의 여유 없는 도시 생활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아침마다 소쿠리 하나를 가지고 나와 마당에 심긴 커다란 망고나무 두 그루 아래 익어서 떨어진 망고를 수북이 담아 아침으로 먹던 그 특별함을 잊을 수가 없다. 지친 더위에 늘어져 헤롱일 때면 맵고 짜고 달고 시고 네 가지 맛을 가진 쏨땀을(그린 파파야 샐러드)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났다. 지금도 파파야 대신 당근으로 혼자 쏨땀을 해 먹는다. 그 중독의 맛이란~.
과자 따먹기 놀이 하나에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대고 빨대로 과자 옮기기 놀이 하나에도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일만큼 호호 깔깔 즐거워하니 순수하고 순박한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교사로 살아오면서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마음을 나누고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런 특혜를 나만 받은 것 같은 기분.
나는 콘까울리(한국인), 그들은 콘타이(태국인).
나는 쏟아붓는 태국의 우기를 사랑한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금세 흙탕물을 만들 때면 나는 비를 때려 맞으며 세차하기를 좋아했다. 물도 귀하고 더워서 엄두 안나는 세차를 장대비가 내릴 때 거품 내어 신나게 하다 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똑똑한 생각 같아서 물도 아끼고 빗물에 수고하지 않고도 저절로 씻겨내는 자동차를 보면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목에 핏발이 서도록 목청 터져라 불러대는 주일학교 찬양을 듣고 있으면 땀에 젖은 옷이 다시 말랐다가 다시 젖어도 힘든 줄 몰랐다.
더워서 음식을 할 수 없고 새벽부터 시장에서 사 먹는 튀긴 바나나와 먹거리들.
게으른 주부가 되어 은근 기분 좋았다.
예쁜 그들만의 춤사위와 전통옷이 예뻤다.
어린 엄마들은 하나같이 예쁘다. 일찍 가정을 꾸린 어린 아빠들도 사랑스럽다.
한참을 기다렸다 타고 나간 버스 안에서 동네 아줌마가 은행을 가야 하는데 깜빡 잊고 도장을 안 가져왔다고 소리치면 그리 많이 달렸어도 오던 길 되돌아가는 대책 없는 버스아저씨와 아무런 불평 없는 사람들.
입이 댓 발 나오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태국인들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쳤다.
더워도 참는 법. 힘들어도 미소 짓는 법.
슬퍼도 조용히 눈물 흘리는 법. 짜증이 나도 말없이 그저 견디는 법. 배가 고파도 서로를 생각해 덜 먹는 법. 속이 상해도 상대가 더 속상할까 봐 괜찮다고 말하는 법. 웬만해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법. 그들이 나의 선생님이었다. 그 멋진 성품을 나는 사랑한다.
대낮에 일을 잠시 쉴 때 그들의 해먹에 누워
그네처럼 흔들거리는 그 여유가 복잡한 나를 맹하게 만들어 그저 생각 없이 쉬게 해 주었다. 작은 것도 서로 나눠 먹느라 욕심쟁이가 없고 가끔 나는 혼자 집에 돌아와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옥수수 열개 사서 모두 같이 나눠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몇 개 더 사서 혼자 먹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인심이 좋았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이 식사 중이면 나에게 식사를 권한다.
신기하기도 하지. 방콕 같은 도시가 아니라서 그랬을 것이다. 예전엔 지도에도 없던 곳.
유배지였던 곳. 외국인이라곤 우리뿐인 그곳. 그들이 나를 신기해하는 것도 때론 좋았다. 조용조용하고 다정한 태국인들이 그립고 또 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태국.
키틍 막 러~~~이 [많이 그리워요]
*게재된 그림은 모두 제가 그린 그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