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헌신

나로부터 시작된 강요

by You앤Me Art Place

[연재 시리즈3]

강요된 헌신

압박 강압 억압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단어들.
우리가 느끼는 압제가 나 자신으로 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분명 외부에서 시작된 것 같은데.
나만이 열 수 있는 나의 문 앞에서 똑똑똑 하는 노크 소리에서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고 그 사나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두렵기도 할것이다.
무심한 듯 "뭐지?"하며 멀찍이서 "누구세요?"라고 의아해 해야 하는데 덜컥 놀라 문 자체를 아예 열어 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처음엔 두드려지던 그 문이 두려움으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부서질 것만 같은 공포가 덮치면 도저히 견디지 못해 문을 열어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문이 이제는 자동문처럼 아무나 들락 날락 할 수있는 열린 문이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가진 트라우마는 우릴 마비 시키고 문 앞에 서있는 파수꾼을 얼려 버리고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 되는 순간 그 문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고 우리는 열쇠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게 된다.
내 열쇠인데 내것인데 내 열쇠를 넘겨주었다는 허탈함과 찬탈당한 주권은 처절하게 억울해진다.
왜 이런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걸까.

헌신 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어떤것의 지배를 받아온 것은 아닐까.
강압에 못이겨셔 혹은 죄책감에 사로 잡혀서 아니면 나만 느끼는 그 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참다운 헌신은 자신의 내면에서 부터 참다운 자기다운 면모로 드러난다.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나타날 수 없다.
그것은 자기확신이라기 보다는 건강하고 온전한 느낌으로 선택할수도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는 상태에서 기꺼이 결정하게 되는 어떤 담담함이다.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드러난 헌신은 피할수도 거부할수도 기꺼이 수용할수도 없는 애매하고도 혼돈스런 상태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찝찝한 마음으로 남기도 한다.

도망칠수도 받아 들일수도 없는 안타깝고 상한 마음은 강요된 헌신을 만들어낸다.
아니면 극단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기도 한다. 왜냐면 조율할 능력도 힘도 기술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피하고 싶어하는 자신안에 드리워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서기 시작할 때 우리의 헌신은 강요된 헌신이 아닌 원하는 만큼의 헌신이 될 수 있다.

조율은 불협화음 같은 불편한 상황에서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정확한 방향과 원치 않는 방향 사이에 주파수를 맞추고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때까지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면서 찾아 나가는 라디오 주파수 맞추기와도 같다.
또는 악기를 다루는 자들이 연주 전에 점검 차원에서 하는 피아노 조율이나 기타의 줄을 조율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떻게든 소리는 나겠지만 원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조율이 필요하듯이 내면의 조율도 필요하다.

우선 나의 의식과 나의 존귀한 자아가 목소리를 낼 때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정작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는 요구 되어지는 행동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상반된 두가지 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두가지 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갈등을 느끼거나 한쪽을 포기 시키거나 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그 소리들에 두려움 없이 진실된 만음으로 다가가 귀 기울여 들으려 한다면 좋은 시도이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강요하지 않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들으려는 시도 말이다.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 된 강요가 아닌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자 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다시 생각해 보고 고민해보라.
분명한 이유를 대보라. 그 이유들이 내게서 왔는지 외부에서 왔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두려움 없이 진실앞에 서보라.
그러면 더 선명한 쪽이 보일것이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