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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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앤Me Art Place

[연재:시리즈7 완결편]
강요된 헌신

기울어진 만큼 기울어져 보이고 뒤틀린 만큼 뒤틀어져 보이는것은 당연하다.
색안경도 그중의 하나이다.
오만함도 편견도 때론 바로잡기 어렵다.
누구나 바로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인정하기 힘든 몇가지 사실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시작된 일들과 경험들이 만들어낸 박제된 인식은 우리를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굳어지고 굳어진 의식들이며 그것이 나를 위한 착각의 보호막일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며 선택한 생각들이 끝까지 마지막까지 오래 갈수는 없다.

상처받는것이 두려워서 숨어버린 자아는 진실을 외면할 때마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려운 숙제처럼 찝찝하게 가슴 한복판에 남아서 꿈으로든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에서든 부딪혀 드러나기도 할것이다.

진실을 대면하고 바로 보기는 어려운 것일까.
진실은 항상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곡된 진실이 상처와 연관되어 생존의 위험을 느끼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한참이 지난 오래 전 일도 그날의 순간으로 순식간에 돌아가게 만드는 습성이 있는것은 아닌지.

얼음땡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아무리 까불고 장난치고 술래를 약올리며 이리저리 호기롭게 도망치다가도 막상 술래가 잽싸게 잡을라 치면 깜짝 놀라 급히 얼음을 외친 뒤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 짜릿함이 즐거워 또 까불고 도망다니고 다시 놀라 얼음을 외치고.
우리가 겪는 일들 속에서 당황하고 놀라 살기위해 얼음 해버리면 굳어져 버린 몸과 마음은 살기 위해 움직일줄 모른 채 그대로 굳어져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것이 마치 얼음 땡 놀이 같다.

수치심도 한 몫 한다. 내 잘못도 아닌데 수치심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수치심이 뇌리에 박혀 떨쳐낼 수 없을때도 도망다니는 술래처럼 살기위해 얼음을 외치고 잠시 쉬는 듯 하지만 따시 또 술래를 피해 달아나야한다. 언제까지 달아날 것인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언제까지 모른체 할 것인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상처와 수치심의 딱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일 것이다.

어떤 일들은 나의 선택과 의지와 상관없이 겪기도한다.
그러나 그런일을 겪을때 바로보기는 쉽지 않다.
가끔 합리적 자아는 가짜 진실을 만들어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그편이 쉬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진실이 합리적 판단으로 왜곡된채 편협함으로 남기도 한다.불편한 마음은 석연찮은 포기로 남기도 할 것이고 한편으론 풀리는 않는 억울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낄 것이다.

이렇게 수동적인 상황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우리는 슬프고 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고,당당하고 싶어도 진실앞에 서지 못한채 보여지는것들과 판단받는 것들로 부터 교묘하게 가리워져 그런대로 만족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 왔다면 더더욱 익숙해져 무덤덤해져도 다른 한쪽 가슴 속에는 뭔가 얹힌것처럼 답답하고 갈수록 '이게 아닌데...'하는 마음을 미뤄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서 수동적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어쩔수 없다는 것으로 덮어버리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잘 이해하고 수용할 선택을 하도록 격려하면 좋겠다.


불가항력으로 주어진 압박이든 강압이든 원치않는 상황이든 형편이든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엇이든지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기에 나의 잘못이 아니며 나의 선택이 아니기에 자랑할것도 부끄러워 할것도 떳떳할것도 떳떳하지 못할것도 아니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주어진 것일뿐,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선택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수동적 자아에서 적극적 자아로서 선택 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질수 있다.
성장의 기회로 삼을수 있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게도 한다.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좀더 진실해지거나 솔직하고 공감력을 갖게되기도 한다.
강요된 상황속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두는 법을 배울수도 있을것이다.

그 여정을 한번 탐험해 보시길.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