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그녀들. 시리즈1
살면서 딱 세번 북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1992년.
일본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일한적이 있다.
대략 내또래 20대 초반의 그녀는 통통한 얼굴과 작은키에 함경도 말투가 강했는데, 내게는 매우 재밌고 새롭게 들렸다.
지금도 감히 소화할수 없는 나름 비싸게 보이는 무늬가 새겨진 정말 새빨간 색깔의 스타킹!!!
살색 아니고 커피색 아니고 진짜 빨간색 스타킹! 그녀가 아무렇지도않게 예쁜 스타킹이라며 내게 준 선물이었다.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걸 신고 거릴 활보했다간, 아니 그냥 호기심에 집에서 조차 선뜻 신어봐지지 않는 그 스타킹을 딱 한번 종아리까지 올려 신어봤다가 뻘건 무우를 보는것 같아 벗어버렸다.
그녀가 그것을 신고 다니는 상상을 하면 웃음이 났다.
맙소사! 그후로 초록색에 무슨 땡땡인가가 들어간 스타킹을 두번째 선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누구나 안기부에 가서 조총련 관련 반공 교육영상을 하루, 꽤 오랜 시간 받아야만 출국허가가 떨어졌다.
Korea 라는 단어 앞에 South를 안붙인채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이 북한 대사관인줄 모르고 덥썩 들어가, 자진 월북한 꼴이 되는 앗차! 하는 등골 오싹한 순간등의 상황설정 교육영상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면 어쩌나 갑자기 겁이 나면서도, 나는 늘 전철 안에서 가끔 마주하던 검정 치마에 흰저고리의 일본내 조선학교를 다니는 조총련 여학생들이 궁금해서 힐끗거렸었다.
일본인들 등살에 가끔 힘들었던 소수민족의 설움도 겪었던 터라, 시대에 맞지 않는 흰저고리 짧은 검정치마를 입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녀들이 무언지 모르게 신기했지만 늘 멀찍이서 지켜볼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북한 사투리의 함경도 말을 하는 그녀를 눈앞에서 만나다니!
그녀에 대한 진한 기억은 색깔 스타킹 때문만은아니다.
스타킹은 웃어보자고 꺼낸 얘기이고.
더욱 기억되는것은 그녀가 중국에서 살때 겪었던 일들 때문이다.
그녀의 말의 시작은 언제나 "고져"로 시작해서 "고져"로 끝나는것 같았다.
"고져 고져, 눈 앞에 쫘악 하고 환하게 빛이 내리 비치드란 말입니다"
이런식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부엌에 쪼그려 앉아 일평생을 몰래 몰래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하다가 어느때는 깊이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고 깨어나면 그녀에게 조심스레 들려주곤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공안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숨어서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걸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평생을 기도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다.
주변에서는 조심스럽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생겨났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얼어붙은 공산치하의 분위기에서 비밀리에 조용히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게 일하고 계셨다.
쉽지않은 환경속에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견디고 인내하며 신앙을 지키던 중 그녀의 아버지는 소천하셨고 그때 조용한 장례를 치루기 위해 몇몇 성도들이 관을 들고 친척들과 이웃들이 그뒤를 따랐다. 그들의 장례행렬은 마을을 지나 한참을 걷고 또 걸어 언덕을 넘어갈때까지 이어졌는데 그날은 날이 어둡고 매우 차분한 날씨였다고 한다.
처음 그녀의 집앞을 나와 장지에 이르기까지 그 긴 시간동안 하늘끝에서부터 한줄기의 빛이 길게 뻗어 자신의 아버지의 관위에 머물러 내리비취고 사라지지 않았고, 유독 어두웠던 날씨 때문에 한줄기의 그 빛이 누가봐도 거부할수 없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빛이란걸 느꼈다고한다.
그것을 목격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을 비롯해 믿는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전해졌다고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탈북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중국에서 살았던 조선족인지 분명하게 물은적도 없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탈북한 북한 사람이구나 하고 믿어졌던것같다.
얘기를 듣다보면 경이로워서 말을 끊고 물어볼 엄두가 나질않았다. 아니, 물어볼 생각조차 나지 않을만큼 빠져들어 들었다.
같은 일터에서 바쁘게 일하면서 짬내어 잠시 잠깐 나누던 그녀와의 대화속에서 나는 내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이 이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기도했고, 북한에서도 이런일이 일어날거라는 상상을 하기도했다.
그녀의 이름과 인상착의는 희미하여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 그녀가 해주었던 놀라운 얘기들을 들을때, 머릿속에 그려지던 장면들은 지금도 남아있다.
중국이라는 넓은 땅덩어리. 그리고 한참 시골이었던 그곳에 닦여지지 않은 먼지나는 외길을 따라 옮겨지던 소박한 관하나. 비오는 날처럼 어두웠던 그날의 하늘. 그럼에도 높디높은 하늘에서부터 조명처럼 그위에 비추는 외줄기 빛.
상여를 맨 자들과 따르는 자들이 그 빛을 보며 느꼈을 차분한 감동과 강한 메세지.
본적도 없는 그때의 분위기는 지금도 내 이미지 속에 나의 글처럼 선명하다.
*위에 게재된 그림과 사진은 제가 직접 그리고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