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세상을 떠났다.(시리즈 5)

남겨진 나로 살아가기

by You앤Me Art Place

죽음. 끝이 아니다.


추운 겨울 아침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눈 쌓인 버스 정류장에 서서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다른 사람 없이 나 홀로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다.

회색 하늘도 올려다봤다가 시린 발 끝을 내려다봤다가 조용한 주변을 둘러보며 차분했던 그날아침, 찬 기운이 참 새롭게 느껴졌었다.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대에 나는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을 보았다.

세상은 조용하고 고요한데 가만히도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죽음. "끝"이 아니다.


나무로 나무를 심은 것도 아니고 식물로 식물을 심은 것도 아닌데 고 작은 씨앗은 나중에 나무가 되고 식물이 되며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씨앗은 한겨울 땅속에서 "휴면기"라고 하는 잠자는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죽음"의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추위로부터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썩어지기 위한"과정을 겪는 것이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그 과정을 겪고 나면 언젠가 때가 되어 드디어 발아할 수 있게 된다.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겨울 땅속에서 씨앗은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 발아를 멈춘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겨울의 낮은 온도와 낮이 짧기 때문에 빛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씨앗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발아할 때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가지고 한동안 그렇게 때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참으로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씨앗이 일정 기간 동안 추위를 겪어야만 발아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도 너무나 놀랍다. 추운 겨울을 지나야 만, 봄의 따뜻한 온도를 “발아 신호”로 제대로 인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겨울 동안에는 수분이 조금씩 씨앗의 껍질 안으로 스며 들어서, 껍질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데, 이때 내부에서는 효소 활동이나 호르몬 균형이 서서히 바뀌면서, 봄에 성장할 준비를 하게 된다.


봄이 되어 온도가 따뜻해지고, 땅속에 수분과 산소가 충분해지면 씨앗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씨앗의 껍질을 뚫고 작은 싹은 쏙 고개 내민다.


씨앗에게 있어 겨울은 “죽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깊이 잠들어 있으면서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씨앗 하나를 눈으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자라나 식물이 되고 나무가 된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씨앗이 썩어지고 죽어져서 전혀 다른 생명으로 변환되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느낀다.


잠잠히 기다리는 시간

숨은 준비의 시간


씨앗이 겨울 동안 “죽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엔 생명이 살아 있어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죽어지는 시간을 지나,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겨울의 씨앗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 침묵이 아니라 싹틀 약속의 시간인 것이다.


잠자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죽음도 "끝"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고 또한 먼저 간 사랑하는 자들을 죽음을 통해 다시 새롭게 만나지고 상상하지 못한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생명력으로 살아있게 될 것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고 "낡음"에서 "새로움"으로 "transformation" 변환되는 그 부활.

나는 부활을 꿈꾼다.

그러니 "남겨진 나"로 살다가 "또 다른 나"로

먼저 간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운 이들 사랑하는 이들 그들을 만나면 또 얼마나 반가울지.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봄이 되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어 계절이 바뀌어 가는 동안 나무도 씨앗도 들풀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우리에게 전해주는 생명과 사랑의 언어가 있다.

자세히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알아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죽음에 대해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발견한다면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금 어떻게 준비기간을 보낼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알아차리게 된 것처럼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깨우쳐 실체로 느껴지는 그런 날이 많기를 바란다.

돌에 새긴 비어있는 시신없는 돌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준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림것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