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추억
나의 사랑하는 스코틀랜드
그곳에 가면 나는 등대가 있는 언덕에 올라간다. 거기 서서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면서 백파이프 소리를 듣고 싶다.
스코티쉬 멜로디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한국의 애달픈 정서처럼 그 어떤 스피릿이 느껴진다.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선명하고도 용감한 사랑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등대를 내려와 바닷바람 불어오는 곳에서 사랑하는 친구와 휘시 앤 칩스를 먹을 때면 나도 그곳에서 오래 살아온 이웃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차분해진다.
스코틀랜드의 백조들은 참 사랑스럽다.
호숫가에 서 있으면 어느새 떼 지어 몰려와 금세 내게 특별함을 안겨주고 간다.
그 희고 멋진 자태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나는 찬 겨울에도 백조를 자주 보았다.
친구 집 외벽에 페인트 칠을 도와주다가 발이 거의 얼 지경이 된 적이 있는데, 백조들은 어떻게 얼음장 같은 찬 물속에 발을 담그고서도 그 발이 얼지 않고 동상에 안 걸리는지 우아하기만 할 뿐 아니라 참 강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골길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양탄자를 길게 깔아 놓은 듯한 좁은 시골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차를 달릴 때면 길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이 두루뭉수리 아무렇게나 뻗어 아치를 이루는데 그 사이를 지나갈 때면 나무들이"어서 오세요"하며 나를 환대해주는 것 같다.
영국에서는 왕실 행사나 국빈을 모실 때, "Sword arch(소드 아치, 검의 아치)"라고 해서 근위병들이 칼(세이버)을 높이 치켜들어 양쪽으로 늘어서서 귀빈들이 지나가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데 마치 그런 장면중 하나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해안가 도로를 따라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내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해가며 가고 싶은 만큼 갔다가 언제든 되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면 된다.
친구가 준 기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친구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속으로 감탄하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글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우리 동네의 작은 갤러리에서 지역 작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명작을 남긴 작가들은 멀리 남의 이야기 같은데 동네 작가들의 그림에선 나의 일상과 정서가 보이고 친근함이 느껴진다.
내 그림도 그들에게 소개해주고 싶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이웃이 될 것 같다.
가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주민잔치 같은 데를 가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티켓을 사서 텐트 아래에서 비 오는 날 이른바 통돼지 바비큐를 먹은 적이 있는데 돼지고기를 통째로 구워서 돌리는 여인을 보고 충격을 먹은 우리 아이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Did you kill this?"(이거 당신이 죽인 건가요?)하고 묻는 바람에 민망함은 둘째치고 배꼽을 잡은 적이 있다.
"No, I didn't kill it"(아니. 내가 죽인 게 아니란다) 하고 태평스러운 표정으로 성실히 통돼지를 돌려가며 대답하는 그녀 때문에 더 블랙코미디 같기도 했다.
나는 우체통을 지날 때면 언제나 사진을 찍곤 했다.
유난히도 Carmin(카민) 색에 가까운 산뜻한 빨간 우체통이 따로 설치되어 있기도 하지만
더러는 길가 벽에 박혀있거나 심지어는 주택 담벼락에 박혀있는 경우까지 있어 얼마나 재밌고 신선하던지. 처음에 봤을 때는 그 이색적인 우체통에 끌려가는 곳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살피고 다니기도 했는데
집에 돌아와 엽서크기 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우체통 그림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짙은 빨간색의 그 매력적인 영국의 전통적인 공중전화박스가 참 좋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상징적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공중전화박스.
직사각형 형태의 철제 구조물에 네 면이 작은 사각형 격자로 나뉜 클래식한 유리창. 그리고 곡선으로 된 천장과 위쪽에 왕관 문양과 함께 "TELEPHONE"이라는 글자가 멋지게 새겨져 있는 분위기 있는 이 전화박스는 로맨틱한 청춘 영화와도 잘 어울린다.
붉은 부스 안에는 옛날식 다이얼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고, 좁지만 아늑한 공간은 외부 소음을 차단해주기도 해서 손잡이를. 당겨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집에 방문했다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전화부스를 만났다.
주변에는 아주 예쁜 꽃들이 여러 개의 화분에 가득 담겨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당겨 그 유리문을 열었을 때 마법의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작은 의자가 있고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그 공간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비 오는 날이라면 더더욱 찾아 들어가 그 안에서 책을 읽고 동전을 넣어 전화도 일부러 걸어보고 싶은 꿈같은 곳이었다. 얼마나 예쁘던지. 우리 집 정원에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 많고 바람 세고 비가 많은 스코틀랜드.
그래서 오래 버티기 위해 커다란 돌들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많은 곳. 육백 년 된 교회 삼백 년 된 교회들이 보통인 그곳.
내가 사랑하는 스코틀랜드.
나의 사랑하는 생활들이 가득한 곳.
My Bonnie Scotland.
*위의 게재된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린 것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