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그녀들 시리즈 3.
한국에 급히 다녀오던 길, 열일곱 시간의 비행 끝에 비행기가 영국공항에 착륙하기가 무섭게 남편의 전화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은행일을 도와달라는 어떤 분의 전화.
북한여성이다.
바로 다음날, 비 오는 아침 그녀를 만나러 나가기 위해 남편은 채비 중이었다.
몇 달 전 거리전도에서 만난 난민출신의 외국여성을 통해 그녀의 전화번호를 소개받았는데 이번에 서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장시간 비행으로 몸이 무거워 전날 잠들면서 '나는 내일 나가지 않고 쉬리라'했다.
비 오는 그날아침 나는 침대에 붙어있었다.
그러다가 함께 그녀를 만나러 나갔다.
봉지 가득든 사과와 바나나를, 직접 건네주지 않고 태워 드렸던 차 의자 위에 올려두며 미안하다 고맙다 하시는 연세가 좀 있으신 여성분.
어쩌다 영국까지 오게 되셨을까.
언어도 그렇고 의료혜택 받기도 쉽지 않으며 함께하는 이들도 없어 외로울 텐데...
가끔 나에게 North인지 South인지 남한과 북한중 어디 출신인지 묻는 외국인들이 의아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그분들은 내 삶에 가까이에 있다.
어디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녀가 영국에 온 지는 십 년이 넘었다.
그 오랫동안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무비자로 지내다가 바로 얼마 전 인도적 차원에서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비자도 없이 어떻게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살아오셨을까. 물론 영국정부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고 있다지만 대게 이런 애매한 경우는 정착에의 불안정 때문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지낸 경험도 있지만 정착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영국에 입국하는 순간 속이 뻥 뚫린 것처럼 마음이 시원해지고 활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영국에 도착하자 비로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그 말이 정말 신기하게 들렸다.
나고 자란 곳이든 살았던 곳이든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조금이라도 마음 둘 곳이라고 느낄 텐데 생면부지의 언어와 문화가 다른 땅에서 숨이 쉬어지고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니.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픈 젊은 층이라면 또 모를까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그녀 정도의 나이에 남은 생을 살아갈 곳을 영국으로 택하다니.
여러 가지로 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한국보다는 북한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나라에 왔을 때 그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느껴져 좀 더 자유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있는 곳이 나를 이끌어 나에게 특별한 애정과 시원한 마음을 준다면 그곳이 나의 나라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북한만 아니라면, 그 끔찍한 지옥 같은 곳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웬만하면 족하게 여길 것 같지만.
특별한 장소. 특정한 사람. 특별한 분위기. 공기.향... 연관된 어떤 기억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특별함은 각각 사람에게 다르게 스며들 것이다.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다.
얼마나 어떤 이유로 어떤 고생을 얼만큼 했느냐보다 한 사람의 특별함을 더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탈북한 뒤 중국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생명을 걸고 거짓말쟁이 독재자로부터 탈출한 만큼 어떤 것에도 더 이상 속지 않으리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를 그녀가 믿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통해 진정한 PEACE, 평화를 느꼈다는 것.
불안하고 두렵고 항상 움츠러들던 그녀의 삶이 탈북 후에도 여전했으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한다.
자동차가 몇 바퀴나 전복되는 심각한 교통사고 속에서도 차가 크게 손상되고 동승한 자들이 모두 다치고 중상을 입었음에도 그녀만큼은 자신이 앉은 그 자동차 좌석에 그대로 앉아있는 채로 아무 이상이 없었고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느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다치거나 질병으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경험한 특별한 일들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게 했다.
초면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실례일까 봐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하는 말들이 진지하고 진실되게 느껴져 왠지 그냥 잠잠히 듣게 되었다.
만나서 돕겠다고 나선일들이 잘되진 않아 다른날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그녀를 만난 일이 우연이 아님을 안다.
그날아침 내가 읽은 성경의 한 구절.
[이사야 1장 17절]
"선을 행하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매일아침 받아보는 묵상말씀대신 그날은 SNS에 "3년 전 오늘"의 나의 일기가 업데이트되어 올라오는 바람에 우연히 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기엔 내가 3년 전 써놓았던 이 말씀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침대에 붙어있던 몸을 일으켜 옷을 차려입고 그녀를 기꺼이 만나러 갔던 것이다.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듯 그날 나는 그러했다.
내가 만난 세 번째 북한여성, 그녀에 대한 그날의 이야기다.
[그날 밤비행기에서 찍은 풍경과 다음날 아침에 읽게 된 성경구절]
*위에 게재된 그림과 사진은 제가 그리고 찍은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