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트 63 | 셰익스피어
Against my love shall be, as I am now,
With Time’s injurious hand crush’d and o’er-worn;
When hours have drain’d his blood and fill’d his brow
With lines and wrinkles; when his youthful morn
언젠가 나의 연인은 지금의 나처럼 되겠지.
시간의 거침없는 손길 아래 파괴되고 볼품 없어진,
세월이 피를 뺏어가고 이마에 흔적을 만들어
주름과 선이 생길 때가 오겠지; 그의 청춘이
Hath travell’d on to age’s steepy night,
And all those beauties whereof now he’s king
Are vanishing or vanish’d out of sight,
Stealing away the treasure of his spring;
세월을 따라 깊은 밤으로 떠날 때에,
지금은 그가 주인인 그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시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그의 봄날의 보물을 앗아가 버린다;
For such a time do I now fortify
Against confounding age’s cruel knife,
That he shall never cut from memory
My sweet love’s beauty, though my lover’s life:
그 순간에 대비해 나는 지금 준비한다
파멸적인 세월의 잔혹한 칼날을,
시간이 나의 연인의 삶은 앗아가더라도 결코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은 뺏어갈 수 없으리.
His beauty shall in these black lines be seen,
And they shall live, and he in them still green.
그의 아름다움은 이 검은 글자들로 기록될 것이며,
그것과 함께 그도 영원히 푸르리라.
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의 많은 소네트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The Fair Youth에 대한 것입니다. 다만 이 소네트는 그의 연인에게 쓴 것이 아닌, 그 연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소네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종종 그러듯, 소네트 63 속의 악역은 바로 시간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시간은 창조자이면서도 파괴자의 역할을 합니다. 소네트 63에서도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는 결국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연인을 상상하며, 주름지는 미래는 막지 못하더라도 연인의 아름다움은 영원토록 남기겠다고 약속합니다.
Against my love shall be, as I am now,
With Time’s injurious hand crush’d and o’er-worn;
When hours have drain’d his blood and fil’d his brow
With lines and wrinkles; when his youthful morn
첫 줄의 Against는 "-에 대비하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연인이 나처럼 될 때에 대비해 "라는 뜻인데요, 여기서 "나처럼" 이란 나처럼 늙었을 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 셰익스피어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충 어림잡아 보면 아마 30대였을 것입니다. 16세기 중후반이라고 하더라도 30대는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들과 소설가들 사이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대한 주제가 인기가 많았답니다.
두 번째 줄에서 With Time’s injurious hand라고 하며 시간을 물리적으로 표현하죠. 시간이라는 존재가 가상의 주먹으로 젊음을 파괴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요? 이렇듯, 1연에서는 시간이 가하는 폭력(?)을 나열하고 있어요. 그다음 줄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낯선 용어들이 나오니 함께 살펴봅시다.
먼저 drain’d his blood 란 말 그대로 몸속의 피를 고갈시키다는 뜻인데요, 그 당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피가 마른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이때 dried his blood 가 아닌 drained his blood라고 하며 "drained"라는 단어를 활용함으로써 노화의 과정이 빠르고 강제적으로 이뤄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fil’d his brow에서 filed는 흔적을 남기다는 뜻이에요. 그 바로 다음 줄에 보면 With lines and wrinkles이라고 되어 있는데 눈썹에 주름으로 흔적을 남겼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Hath travell’d on to age’s steepy night,
And all those beauties whereof now he’s king
Are vanishing or vanish’d out of sight,
Stealing away the treasure of his spring;
2연은 이전 줄에 바로 이어서 진행이 되는데요, 이런 식으로 문장이 끊기지 않고 다음 줄까지 이어지는 형태를 enjambment이라고 해요. 보통은 줄이 끝나면 문장도 그와 함께 끝나거나 쉼표가 있어 쉬어가는데 enjambment는 그러지 않죠.
With lines and wrinkles; when his youthful morn
Hath travell’d on to age’s steepy night,
이런 식으로 줄은 끝났는데 문장이 이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다음 줄로 넘어가야 하는 효과를 만든 거예요. (... when his youthful morn/Hath travell'd on to...)
청춘이 세월에 따라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지 않나요? 이겨낼 수 없는 힘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죠.
Enjambment에 이어서 alliteration이라는 또 다른 기술이 쓰였어요. Aliteration은 두운법으로,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말이에요.
"Are vanishing or vanish’d out of sight, "에서 보면 v로 시작하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리듬감을 더해줘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1연에서도 한 번 나왔었어요.
"When hours have drain’d his blood and fill’d his brow".
마지막 줄에서는 단순히 Stealing이라고 하지 않고 Stealing away라고 함으로써 봄날의 보물인 청춘의 아름다움을 훔쳐가 버린다는 강압적인 느낌이 강조되었어요.
전반적으로 2연에서는 시간의 역할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청춘을 앗아가 버리는 파멸자이자 파수꾼.
For such a time do I now fortify
Against confounding age’s cruel knife,
That he shall never cut from memory
My sweet love’s beauty, though my lover’s life:
fortify라는 단어는 요새화한다는 뜻이에요. 마치 전쟁에 대비하는 느낌을 주지요. 이뿐만 아니라 그다음 줄에서도 confounding (파멸적인), cruel knife (잔혹한 칼날)이라는 단어들을 통해서 시간과의 전쟁에 대비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시간과의 이 전쟁에서 셰익스피어는 연인의 목숨은 뺏기더라도 연인의 존재에 대한 기억만큼은 무조건 지키겠다고 선언하죠.
His beauty shall in these black lines be seen,
And they shall live, and he in them still green.
대망의 마지막 행인데요,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킥은 마지막 couplet에 있는 것 같아요.
3연에서의 선언에 이어서 마지막 행에서는 그 선언에 대한 증거로 이 소네트를 내세우겠다고 하고 있어요. 이 소네트를 통해서 그의 연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만큼은 지키겠다고 말하죠; 그의 아름다움은 이 검은 글씨 속에서 간직될 것이고, 이 글들은 영원할 것이며, 그의 아름다움도 이 글 속에서만큼은 영원히 푸를 것이다-라고요.
사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하기는 한데요, 사랑에 대한 소네트들은 젊음 (혹은 아름다움)은 물리적으로 영원하지 않아도 그것에 대한 전설 (혹은 기억)은 길이 남게 하겠다-라고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자연의 섭리에 맞설 수 없더라도 인간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소네트 63의 마지막 행을 보니 그 유명한 소네트 18이 떠오르기도 해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당신을 봄날과 비교해도 좋을까요?)라고 시작하는 소네트이며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인간이 숨을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다면/이 소네트 또한 존재할 것이며 그대에게 영생을 주리라)로 끝나요. 어때요? 소네트를 통한 영생을 약속하는 것이 비슷하지 않나요?
시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이겨낸다는 발상 자체가 대담하면서 낭만적인 것 같아요. 물론 16세기-17세기 소네트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극적으로 끝나고는 했지만 보통은 맹세라기보다는 낭만의 도구로 쓰였을 것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쓰인 소네트들 중에서 셰익스피어는 그 말을 지켰다는 게 이 소네트를 완성시켜 주는 것 같아요.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사랑했던 The Fair Youth의 외모는 전혀 모르지만 거의 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아름다웠다는 것만큼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잖아요?
시간의 흐름을 막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죠. 셰익스피어는 시간을 멈추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대신 그는 되려 시간을 이용하여 그의 연인의 아름다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죠. 이 소네트가 존재하는 한, 셰익스피어가 사랑한 연인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에 멈춰있어요. 그런데 멈춰있어서 점점 오래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읽을수록 그 아름다움은 커지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역사적인 가치가 더해지면서 이 Fair Youth의 아름다움은 더욱 강렬해지죠. 마치 세계를 상대로 마법의 주문을 건 것 같기도 해요. 이 소네트가 존재할 때까지는 그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