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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과가 소개하는 셰익스피어의 여섯 번째 사랑고백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by River

소네트 18


내 그대를 한여름 날에 비할 수 있을까?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워라.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Rough winds t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여름의 빌려온 기간은 너무 짧아라.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때로 태양은 너무 뜨겁게 내리쬐고 And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그의 금빛 얼굴은 흐려지기도 하여라.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tion dimmed;


어떤 아름다운 것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이 쇠퇴하고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로 고운 치장을 빼앗긴다.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고 But the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그대가 지닌 미는 잃어지지 않으리라.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죽음도 자랑스레 그대를 그늘의 지하세계로 끌어들여 방황하게 하지 못하리.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rest in his hade


불멸의 사구 형태로 시간 속에서 자라나게 되나니.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인간이 살아 숨을 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So long as ma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이 시는 살게 되어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라.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피천득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 하면 셰익스피어가 떠오르듯, "소네트 18" 하면 셰익스피어가 떠오릅니다.


워낙 극작가로서의 삶이 강조된 탓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그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기도 한데요, 그도 그럴 것이,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극들과는 달리 소네트들은 낭독이 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대학교 3학년 전까지는 셰익스피어가 소네트를 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전공을 애정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20세기 문학 쪽을 더 좋아했던 편이었기에 셰익스피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더군다나 모두가 멋있다고 하는 셰익스피어에게 괜히 정이 안 갔다고나 할까요.


"17,18세기 영문학"의 첫 수업에서 소네트 18을 공부했는데, 처음에 받았던 충격은 정말이지 아직도 잊고 싶지 않아요. 현대에 와서는 문학이 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20세기 작품들을 좋아했던 제가 그때까지 즐겼던 문학들은 전부 담백하고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풍겼고 사랑의 속삭임 이런 건 당연히 없었죠. 그 와중에 읽게 된 소네트 18은 사랑의 언어를 넘어서 마법 주문 같았어요. 차원이 다른 사랑 고백이랄까요. 정말이지 눈물이 날뻔했다니까요.



I. 해석

여러분들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간단하게 해석을 좀 해볼게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내 그대를 한여름 날에 비할 수 있을까?"


왜 하필 여름날이라고 한다면, 그건 셰익스피어가 영국 사람이기 때문이죠. 영국은 회색빛이에요. 한여름인 7,8월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해가 잘 뜨지 않고 비도 자주 와요. 그러니까 1년 내내 회색빛에다가 한기가 가득한 나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여름날은 귀하디 귀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그 귀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한 여름날에 "그대"를 비교해 보겠다고 하는 것인데요, 결론은 그 대단한 여름날보다 "그대"가 훨씬 아름답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영원하다는 거예요. 자연보다도 아름답다는 굉장한 찬사죠.




왜 소네트 18이 사랑 고백의 정석이 되었을까요?


1번. 완벽하다고 생각한 "여름날"도 "그대"와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한다는 이 관점의 전환

뭐랄까, 이 당시에는 "당신은 여름날처럼 아름다워" 이런 식의 소네트가 다분했다면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고백을 해버리죠. 여름날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이죠.


2번. "그대"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는 약속을 이루었다는 점

그 당시에는 입발린 소리 정도로 이해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많은 소네트들이 이렇게 마무리를 했거든요. 그렇지만 어찌 됐든 간에 소네트 18은 약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의 아름다움은 소네트 속에 길이길이 보존되고 있죠. 이런 점에서 소네트 18은 시간을 넘나드는 그런 사랑을 뜻하는 소네트의 대명사가 된 것이에요.



II. 시 해설

여름날을 "그대"와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여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봄의 고운 꽃봉오리를 괴롭히는 (어쩌다 한번 부는) 거친 바람의 성정을 가진 여름과 달리 "그대"는 성격이 아주 곱다.
여름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어떨 때는 태양이 너무 강렬하고 또 어떨 때는 너무 흐리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적당하다)
결국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은 시든다- 어떠한 우연 혹은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하지만 당신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는 점에서 자연보다도 우월하다)


이와 같이 여름은 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대"는 완벽하다는 것이죠. 자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보다 사랑스럽고, 곱고, 언제나 적당하고 영원할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영원할 것이냐.

여기에서 바로 미스터 윌리엄의 ☆마법 주문☆이 시작됩니다

: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이 소네트는 영원할 것이니까 그대를 찬양하는 소네트 속 그대의 아름다움도 영원할 것이다,라는 주문이에요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인간이 숨을 쉬고 글을 읽을 수 있다면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이것도 함께 살아 숨 쉬고 그대에게도 생명을 줄 것이다


인류가 멸종하지 않으면 당연히 이 소네트는 계속해서 읽힐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둔 부분이 웃긴데 또 멋있어요. 이런 식의 장대한 끝맺음은 17세기 18세기 당시의 소네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던 굉장히 흔한 것이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이 말을 지킬 능력이 있던 셰익스피어가 하니까 괜히 더 웅장하게 느껴집니다.




III. 셰익스피어 원어

한국어로 의역이 되면서 잃게 된 원어의 아름다운 표현들이 있는데 그것들도 함께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여름의 기간을 Summer's lease라고 표현을 했어요.

이건 아름답다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진 건데요, 보통 "lease"라고 하면 계약기간 정도로 이해를 하잖아요.

17세기 당시에는 time, period 정도의 의미로 쓰였던 건지 아니면 그냥 정말로 계약기간의 의미로 사용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표현을 한 게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문학을 공부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뭔가를 표현하는 데에 단어 쓰임새의 규제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또 태양을 eye of heaven이라고 표현한 부분인데,

사실 이건 문학에서 상당히 흔하게 태양을 빗대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답니다.

천국의 눈? 이렇게 말하면 어색하게 들리기는 하네요.


날이 자주 흐리다는 것을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라고 쓴 것도 좋아요.

번역본은 "금빛 얼굴"이라고 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읽으면 왜인지 크고 검은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닌 넓적한 달덩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림책 속 달님의 얼굴은 언제나 저의 불쾌한 골짜기였죠)

저는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얼굴"을 떠올리거나 태양을 떠올리기보다는 저걸 한 덩어리로 이해를 해서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Cloudy 혹은 hidden behind the clouds 이런 게 아니라 "gold complexion dimmed"라고 표현을 해두니 훨씬 섬세하게 느껴져요.


IV. 소네트 18의 의미

소네트 18은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 클리셰인데,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얼마나 아름다워?"라는 질문에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하면 상대방이 눈을 굴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또, 사랑과는 별개로,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sonnet 18"이라고 하면 문학적이라는 인상보다는 사랑의 꽁무니를 좇기에 바쁜 오글거리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저도 굉장히 애정하는 소네트이지만, 사실 가장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일단 너무 많이 인용이 되다 보니 그 진정성을 잃고 조금은 가벼운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154편의 소네트들을 읽다 보면 18번보다도 훨씬 심오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거든요.


다음에는 소네트 18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소네트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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