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의 귀향기

by 원우

50+년만의 귀향이다.


내가 미국에서 20년 만에 돌아와 태어난 곳에 귀향하여 정착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농사를 지을 거냐고 물어서 그냥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친의 직업이 군인이라 임지를 따라다니면서 태어난 곳이 모두 다른 우리 형제들은 (1남 2녀 중 둘째) 태어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해 참 고향을 가지기 어려웠다.


한때는 아버지 고향을 우리 고향으로 하라는 어느 어르신의 가르침대로 몇 번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였으나 단 하루도 살지 않았고 아무런 추억이 없는 지금은 먼 친척만 사는 그곳을 내 고향이라고 몇 번 이야기하다가 그냥 멈춰버렸다. 사실 태어난 oo시가 내 고향이라고 진작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주변어르신의 권유(oo시 출신은 깍쟁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니 절대로 그곳을 고향이라고 이야기하지 말라는 )로 나는 누가 고향을 물으면 어정 쩍 하게 넘기곤 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oo시는 거의 모든 지역이 아파트이고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분들도 많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때엔 그랬다. 이렇게 고향 없이 사는 것이 피곤해서 우리 조상이 한양으로 이사오기 전 오래 살았던 곳(이북의 한 지역)을 내 고향처럼 이야기하다가 친한 친구 하나가(그 친구의 부모님은 함흥 철수 때 처갓집은 대동강 철교를 넘어 6.25 때 남쪽으로 피난 온 분들) 말하기를 " 너처럼 이야기 하면 조선시대 모든 사람의 고향이 이북일 수도 있다"라고 훈계해서 그 다름부터는 그렇게 말하는 것도 멈췄다.


이렇게 한국에서 고향 없이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았던 서울을 고향으로 간직하기 싫어하는 이상한 이유(서울로 국민학교 전학 왔을 때 사투리를 고치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로 그렇게 오랜 기간을 지내다가 고향을 찾아준 것은 학교 친구였다.


그 친구와 오랜 기간 같이 술도 마시고 공부를 하던 중에 그 친구가 태어나 자란 곳이 어디냐고 물어서 있는 그대로 oo시에서 태어나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전근 가셔 서울에 오래 살았다고 이야기하였더니 그 친구왈 네가 oo시에 오래 살았으면 고등학교도 같은 곳을 다녔을 것이니 너는 지금부터 oo시가 네 고향이고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 명예회원으로 넣어준다나—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나온 ##고등학교의 명예회원으로 참가하게 되어 고향을 갖게 되었고 그 친구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 서울 촌놈(생긴건 서울사람 같은데 하는 짓이 시골사람 같아서)이라는 별명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oo시 에서의 추억은 많다. 어려운 박봉에 사립학교에 넣으려고 고군분투하신 어머니---. 2살 위인 누나는 먼저 사립에 보내고 나는 유치원 다닐 돈이 모자라 집 앞에 일반학교를 유치원대신 다니게 하고 1학년을 마친 다음 다시 사립학교에 가서 1학년을 다니게 하였다.


내가 다닌 사립학교는 굉장히 자유롭고 종교적이었던 같다. 내 기억으로는 담임이 신부님이었고 수녀님이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예체능교육도 많이 받고 게다가 영어교육도 받았던 것 같다. 시험 때는 시험 전에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시험 후에 다시 기도를 하는 아주 종교적인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은 역 근처여서 학교까지는 3km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하여야 하는데 어머니는 편도 요금이 5원이었는데 6원을 쥐어주고 학교에 보냈는데 누나는 엄마가 시킨 데로 아버지가 군인이라 돈이 3원밖에 없다고 차장누나에게 사정해서 차를 타는데 그 쪼그만 6살밖에 안 되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나는 그것이 창피해서 갈 때는 5 원주고 버스를 타고 올 때는 걸어온 기억이 씁쓸하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걸어오면서 이곳저곳 구경도 하고 중간지점 근처인 시장 안에서 서점을 하고 계신 작은할아버지집에 들러 보고 싶은 책도 보고 1원 가지고 눈깔사탕 사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도 생생하다.


덕분에 2학년이 되어 육상대표로 뽑혀서 학교를 대표하여 시합에 나가려고 열심히 준비하던 도중에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가 이사를 가게 되어 나는 고향이 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였다.


최근에 나는 그 도시에 다시 돌아와 있다. 커다랗게 보이던 성과 높아 보이던 산은 아담하게 변해 있었고 그리고 어린 나에게 말을 걸곤 했던 나의 자부심이었던 도시곳곳의 유적지는 말없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때 이곳에서 같이 살던 친척도 이제는 아무도 없지만 나는 친구가 지정해 준 이곳 고향에 돌아와 있고 누가 물으면 지금 사는 이곳을 내 고향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좋은 교육과 신앙을 접한 곳 주변에 흔했던 야채를 캐어 반찬을 만들고 국과 면에 넣어 먹고 이곳에서 유명했던 한우로 만든 설렁탕으로 내 몸이 만들어진 곳 즉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모두 이곳에서 얻었으므로 나는 oo시가 내 고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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